[향토밥상] 고향의 맛 가득 봄철 건강 듬뿍 ‘뽕잎한상’

김보경 기자 2024. 4.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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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밥상] (50) 경북 상주 ‘뽕잎한상’
단백질·비타민·식이섬유 등 풍부
약재 달인 물로 지은 뽕잎돌솥밥에
장아찌·떡갈비·묵 곁들이면 ‘활력’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경북 상주의 뽕잎한상. 뽕잎돌솥밥에 함께 나온 뽕잎 반찬을 한번씩 곁들여 먹으면 밥 한 공기가 부족하다. 상주=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경북 상주는 기름진 땅에서 재배한 쌀, 하얀 누에고치, 흰 당분 가루가 뒤덮은 곶감이 유명해 ‘삼백(三白)의 고장’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뽕나무를 재배해 누에고치를 생산하는 양잠(養蠶)산업이 최고로 발달했다. 양잠 전성기였던 1970년대엔 집집이 뽕나무를 키웠고, 뽕잎으로 요리를 해 먹는 건 일상이었다. 화학섬유가 등장하고 양잠은 점점 사라져갔지만 뽕잎으로 만든 음식은 아직도 상주의 ‘고향 맛’으로 남아 있다.

뽕잎이 돋아나는 시기는 5월초부터 6월초까지다. 새순이 돋으면 맨 위부터 채취해 바로 먹으면 된다. 봄이 지나가면 구경하기 힘든 뽕잎이지만 제철에 뽕잎을 뜯어 삶은 뒤 하루 동안 꼬박 말려 저온창고에 보관하면 일년 내내 먹을 수 있다. 뽕잎은 콩 다음으로 단백질이 많은데 함량이 30%가 넘어 누에가 뽕잎만 먹고도 비단을 만드는 명주실을 뽑아낼 정도다.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과 비타민 함량이 높고 식이섬유도 녹차보다 5배 많아 장 건강과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 이밖에도 성인병 예방, 항산화 효과 등 연구를 통해 밝혀진 효능이 다양하다. 이렇게 뛰어난 효능을 알아보고 뽕잎을 먹기 시작한 건 아주 오래전부터다. 중국 최초 약물학 서적인 ‘신농본초경’엔 뽕잎과 뽕나무 뿌리를 약재로 쓰면 좋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의학서적 ‘동의보감’엔 뽕나무 잎은 말려 가루로 빻아 먹고, 가지는 볶아서 달여 먹고, 뿌리는 삶은 물을 먹는 등 뽕나무를 섭취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다.

뽕잎은 만병통치약 같은 귀한 약재로 여겨졌지만 상주에선 집 앞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 재료이기도 했다. 뽕잎가루를 넣어 뽕잎칼국수도 해 먹고, 뽕잎장아찌를 담가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이처럼 소소하게 먹는 집밥 요리다보니 외지인이 제대로 뽕잎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상주 시내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식당 ‘두락’은 뽕잎한상을 제대로 차려 내는 뽕잎전문점이다. 식당 주인 남금숙씨(65)는 어릴 때부터 뽕잎 맛을 알고 자란 상주 토박이다.

“옛날 할머니가 가마솥에 덖어준 뽕잎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생뽕잎을 씻어서 가마솥에 들기름이랑 집간장만 조금 넣고 볶으면 고소하고 저절로 입맛이 돌 만큼 감칠맛이 나요. 항상 생각나는 추억의 맛이죠.”

뽕잎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 가운데 뽕잎 향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건 뽕잎돌솥밥이다. 말린 뽕잎을 불려 살짝 삶은 후 들기름에 살살 볶는다. 돌솥에 깨끗이 씻은 쌀을 넣고 그 위에 볶은 뽕잎을 가득 얹어 밥을 짓는다. 17분 정도 기다리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뽕잎밥이 완성된다. 초봄까진 저온창고에 보관한 말린 뽕잎을 넣지만 봄에 갓 따온 뽕잎을 사용하면 훨씬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단다. 15년 넘게 약선요리를 공부한 남씨는 약재 달인 물로 뽕잎돌솥밥을 짓고, 성별에 따라 약재 종류도 달리한다.

“뽕잎은 피를 맑게 하고 몸의 열을 내려주는 찬 성질이 있어요. 그래서 밥을 할 때 따뜻한 성질을 가진 약재 달인 물을 넣어서 중화작용을 해 효능을 올려주는 거죠. 그 효능에 따라 남자 밥과 여자 밥을 다르게 짓는데, 남자 밥엔 삼지구엽초, 여자 밥엔 당귀를 넣어요.”

뽕잎돌솥밥을 비롯해 뽕잎 장아찌·떡갈비·묵·식혜 등 뽕잎한상이 상다리가 휠 정도로 차려진다. 먼저 돌솥밥 뚜껑을 여니 향긋한 뽕잎 내음이 얼굴을 감싼다. 뽕잎을 밥과 살살 섞어 그릇에 옮기고 간장을 조금 넣어 비벼 먹어본다. 쫀득한 밥알과 부드럽게 씹히는 뽕잎이 조화롭다. 곱게 다진 오리고기에 뽕잎가루를 넣어 만든 떡갈비, 약재를 달인 물에 뽕잎가루가 들어간 쫀득한 뽕잎묵 등 밥상에 올라온 여러 반찬을 한입씩 먹다보면 금세 밥 한 공기가 비워진다. 돌솥밥을 먹을 때 빼놓을 수 없는 별미는 누룽지다. 뜨거운 물을 부어 숭늉이 된 누룽지 한술에 뽕잎장아찌와 곶감장아찌를 얹어 먹으니 궁합이 좋다. 살얼음이 낀 달큼한 뽕잎식혜로 마무리까지 하고 나면 뽕잎 효과 때문인지 온몸에 피가 도는 듯하다.

뽕잎한상은 그야말로 보약과 다름없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봄철에 뽕잎한상으로 맛도, 건강도 챙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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