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7명, 하버드大서 영어로 ‘北 인권 문제’ 외친다

김병권 기자 2024. 4. 12.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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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열리는 ‘영어말하기대회’ 참가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북한 인권 단체 ‘프리덤 스피커즈 인터내셔널’ 이은구 공동대표와 탈북민 6명이 미 하버드대에서 열릴 영어 말하기 대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왼쪽부터 이 대표, 탈북민 이유미·차위성·맹효심·김지은·김명희·이진씨. 탈북민 한 명은 개인 사정으로 따로 출국했다./장련성 기자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갔는데, 브로커가 알고 보니 인신매매단이었습니다. 중국 남자에게 팔려 강제로 결혼한 뒤 아이가 생긴 저는 마취제도 맞지 못한 채 낙태를 당했습니다.”

김명희(44)씨는 지난 1998년 탈북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그는 ‘고난의 행군’ 시절 배급을 타 오다 아버지가 강도당해 숨진 뒤 북한에 염증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탈북길에 인권은 없었다. 중국인에게 팔려간 그는 2000년 농사일을 하던 중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다. 보위부에 끌려간 김씨는 3~4개월간 수용소 생활도 했다. 낮에는 하루 종일 무릎 꿇고 손을 드는 징벌을 당했고, 밤엔 돌·모래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고 한다. 김씨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비인간적 대우를 당했다”며 “샤워 시설이 없어 한겨울에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물탱크에 여러 명이 들어가 씻었다”고 했다. 그는 또다시 탈북을 시도했고, 그렇게 세 번의 탈북 끝에 지난 2007년 한국에 왔다.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11일 만난 김씨는 이와 같은 북한 인권의 실상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북한 인권 단체 ‘프리덤스피커즈인터내셔널(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FSI)’은 오는 13일 하버드대에서 ‘탈북민 영어 말하기 대회’를 연다. FSI가 미국에서 대회를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버드대 출신인 FSI 케이시 라티그 공동대표가 자리를 마련했고, 하버드대 학생들 앞에서 말하기 대회를 하는 형식으로 꾸려졌다. 라티그 공동대표는 “탈북민의 목소리를 통해 북한 인권 이슈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하버드대 학생들도 지속적으로 사안에 관심을 가지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행사를 준비했다”고 했다. 말하기 대회의 주제는 ‘I am from North Korea(저는 북한에서 왔습니다)’로, 탈북민 7명이 발표에 나선다.

연세대 사회복지학 박사 과정인 김명희씨는 “공부를 하며 인권 문제에 관심이 생겼는데 사람들이 북한 인권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며 “그때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북한 인권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고, 더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하기에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인 영어로 계속 알려야 한다”고 했다.

북한 인권 단체 ‘프리덤스피커즈인터내셔널(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FSI)’ 이은구 대표와 케이시 라티그 공동대표가 탈북민 맹효심씨에게 멘토링을 하고 있다. /FSI 제공

탈북민 맹효심(23)씨는 이번 대회에서 ‘북한 장애인 인권’을 발표할 예정이다. 어릴 적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인이 된 그의 어머니가 겪은 일이 소재다. 맹씨는 “어릴 적 소아마비에 걸려 거동이 불편했던 어머니가 동네 주민에게 쇠막대기로 폭행당해 팔이 골절당한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이 사건이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에 의해 무마되는 걸 보면서 돈이면 다 되는 북한 사회에 환멸을 느껴 탈북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장애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며 “휠체어를 병원에서나 볼 수 있는 북한과는 달리, 한국엔 버스 안에 장애인 전용 좌석이 마련되어 있어 정말 신기했다”고 했다. 맹씨는 “장애인 인권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북한의 실상을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전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세계 최고의 대학교 학생들에게 북한 인권을 알릴 수 있어 정말 설렌다”고 했다. 그는 이번 대회 준비를 위해 지난 2월부터 매일 2시간씩 온라인으로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김지은(20)씨는 탈북민으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털어놓겠다고 했다. 2004년 북한에서 태어난 김씨는 돌도 지나지 않았을 때 어머니 등에 업혀 중국으로 탈북했다. 그는 어릴 적 자신이 중국인인 줄 알았다고 한다. 김씨는 “어머니가 교육을 위해 지난 2016년 한국에 오고 나서야 북한 출신인 줄 알았다”며 “나는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북한 사람도 아니었고, 중국에서 살았지만 중국 사람도 아니었다”고 했다. 국민대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엄마의 낯선 땅’이라는 유튜브용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그는 “탈북민 외에도 한국 사회에는 나와 같이 정체성 혼란을 겪는 사람이 많았다”며 “언어적 어려움과 정체성 혼란을 겪는 나와 그들의 이야기를 이번 대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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