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 불공정 계약 논란… "가이드라인 있어야"

정영희 기자 2024. 4. 12.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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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약정 문제, 사적 거래의 영역에 맡기기에 곤란"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약정의 공정성 제고 위한 제도적 보완방안을 제시했다. 기존 PF약정의 문제 인식을 확산하고, 행정지도 시행과 통합적 분쟁조정 기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사진=뉴시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건설업계 뇌관으로 떠오르며 이른바 '4월 위기설'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PF 대출 약정서 내 불공정 조항이 위기를 유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시공사가 짊어져야 하는 신용보강이나 책임준공 등의 의무가 과도하게 무거운데도 우선 수주를 해야 회사 운영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공정하지 못한 계약을 불가피하게 체결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12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하 '건산연')은 '건설동향브리핑951호'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부동산개발사업은 시행·시공·금융이 서로 협업해 이뤄지는 정교한 협력사업이다. 개발사업이성공적으로 완수되기 위해서는 개발사업 참여자 간 수익과 그에 대응하는 위험이 적절히 분산돼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에서 활용되는 부동산PF는 특정 참여자(시공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익 대비 사업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위험을 지는 구조로 지난 20여년 간 운영돼 왔다. 이러한 특징이 지금의 위기를 발생시킨 요인의 하나로 지목된다.

개발사업에서의 사용되는 주요 약정서는 사업약정서, 대출계약서, 공사도급계약서 등이다. 이들 약정서에는 책임준공과 채무인수(연대보증), 공사비조정 불인정, 대물변제(책임분양), 유치권 포기 등의 조항이 통상 중첩적으로 규정돼 있다. 이 같은 조항이 2022년 하반기 이후 급격히 나빠진 사업여건과 맞물려 시공사들의 부실위험을 가중시키면서 정책 이슈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대출약정서 내에 규정돼 있는 다양한 금융 취급 수수료 역시 PF 조달·차환과정에서 시행사와 시공사의 적지 않은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분양가 인상요인 등으로 작용하면서 개발사업의 여건을 급격히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부동산PF 관련 약정들은 시행사·시공사·금융사 간 사적 계약이므로 '민법'상 사적 자치의 원칙에 따라 그 내용과 효력에 대해서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개발·건설시장은 매우 경쟁적인 수주여건이 조성돼 있기에 사적 자치의 원칙이 전제하는 당사자 간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계약과는 적지않은 괴리가 존재한다는 문제가 있다.

김정주 건산연 연구위원은 "제한적인 수주기회를 기업 생존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다수 중소·중견 건설사와 자본력이 열위한 개발사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불공정한 계약 내용을 감수하고서라도PF를 조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부동산경기 침체기 개발사업들의 수익성 악화가 담보된 약정 내용의 불공정성으로 인해 건설업체들의 대량 도산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로 인해 금융시장과 거시경제 전반의 불안을 초래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 같은 PF약정 내용은 거래 상대방인 건설업체의 현실을 감안할 때 법적으로 불공정한 거래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대다수의 PF 약정에서는 건설업체가 약정된 기간 내 준공을 하지 못했을 때의 책임 면제 사유로 전쟁이나 지진 등만 언급된다. 실제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민원이나 자재수급의 장기간 지연, 노조파업 등의 예외사유를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

분양률 저조 등으로 시행사가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건설업체는 정해진 기한 내에 자기자금투입 등을 통해 준공을 마쳐야 하는 부담을 진다. 하루라도 준공기간 도과 시 시행사와 중첩·병존적으로 PF채무를 상환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견된다. 금융조달 과정에서의 과도한 수수료는 어려운 개발사업 여건 속 신규조달과 차환을 어렵게 만들어 개발사업들의 부실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건산연은 기존 PF 약정 내용의 비합리성과 개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봤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은 시행사가 전북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반환소송에서 금융사의 과도한수수료 책정 관행을 신의성실 원칙 위반으로 판단, 원고인 시행사에 전북은행이 4억여원을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PF 약정 내용의 불공정성 등은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에 비춰 결정해야 한다. 이해당사자가 체결한 약정 내용을 우선으로 하되 사안별로 불공정성의 정도가 매우 현저한 것으로 판단될 때 불공정행위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가 공동으로 부동산 PF 계약의 불공정성 판단을 돕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계약 내용 중 현저하게 공정성을 잃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사례가 포함된 PF 약정 예시를 제작하고, 금융감독원과 국토부가 해당 업권에 행정지도의 형태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김 연구위원은 "구체적인 사례는 최근 확인된 민원사항들을 토대로 체계적으로 정리해 행정지도안에 포함하고, 향후 관련 부처들이 협의를 통해 내용을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며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분쟁조정기구나 사법부 판단 과정에서 유용한 판단준거로 활용됨으로써 건설업체에 전가되는 과도한 부담이 전가되는 부분을 어느 정도 완화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개발사업에서 금융기관·시행사·건설업체 사이 발생하는 협약내용 개정 등을 한번에 다룰 수 있는 분쟁조정기구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최근의 PF 리스크 해소를 위해 당사자들 간 분쟁조정을 유도하는 대주단협의체와 민관합동PF조정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두 기구가 각각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 주도로 운영돼 통합적인 분쟁처리와 해소에 한계를 보였다.

김 연구위원은 "현재 운영되는 민관합동PF조정위원회의 기능을 확대 개편, 민간과 민관합동개발사업에서 발생하는 분쟁조정기능을 일원화해야 한다"며 "새로운 분쟁조정기구에서가이드라인을 활용함으로써 당사자 간 원활한 협의를 이끌어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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