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1999년과 2024년의 대만 지진

김나영 기자 2024. 4. 1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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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대만 동부 도시 화롄(花蓮)현에 지진으로 인해 철거 작업에 들어간 톈왕싱(天王星) 건물./연합뉴스

지난 3일 대만 동부 화롄에서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 정도면 얼마만큼의 위력을 지닌 걸까. ‘서 있을 수 없고 기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정도였다고 한다. 시민들이 한창 출근이나 등교에 나선 아침 시간대에 발생한 탓에 소셜미디어에선 오토바이 행렬을 이룬 이들이 무너진 건물을 바라보는 모습, 우왕좌왕하며 겁에 질린 모습 등이 퍼졌다. 진앙에서 약 150㎞ 거리인 수도 타이베이에서도 걷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로 흔들림이 관측됐다.

자극적인 사진과 영상만 보면 재난은 공포스럽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지진의 규모 대비 사상자 수다.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현재까지 16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 규모 6.4 지진 당시 116명이 사망한 것과 비교하면 훨씬 적은 숫자다. 인명 피해를 극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이유는 대만의 부단한 노력 덕분이다.

대만 사회에 경종을 울린 건 1999년 중부 난터우현 지지(集集)에서 발생한 지진이었다. 한밤중에 덮친 규모 7.7의 지진은 241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폐허가 된 터전에서도 대만 국민들은 무력해지지 않았다. 이후 대만 당국은 건축법을 개정해 내진 설계 기준을 강화했다. 바닥이나 벽을 보강하려는 개인 건물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철저한 대비에 나섰다. 그해 지진이 발생한 날짜인 9월 21일은 전국 재난 훈련의 날로 지정됐다.

이번 대만 지진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의 피해 여부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TSMC 공장이 타격을 입을 경우 세계 반도체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TSMC는 내진 설계와 신속한 직원 대피 등으로 설비 및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고, 지진 이틀 만에 공장을 재가동했다. 타이베이의 명물인 초고층 복합 쇼핑몰 타이베이101도 내부에 있는 660t 댐퍼(지진 저감 장치) 덕에 지진으로부터 무사했다.

우리나라는 대만처럼 ‘불의 고리’에 속하지 않아 지진이 잦진 않지만, 안전지대도 아니다. 한국은 1999년 이후 규모 2 이상 지진이 연평균 70.6회, 규모 3 이상 지진은 연평균 10.5회 발생했다. 국내 지진 발생 횟수는 2016년 경북 경주시(규모 5.8), 2017년 경북 포항시(규모 5.4)에서 지진이 발생한 뒤 급증했으며, 몇 년간 감소세를 보이다 최근 다시 증가하고 있다. 올해에만 규모 2 이상 지진이 17차례 발생했다.

정부는 포항 지진 이후 내진 설계 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등 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국 내진 설계 대상 건축물 중 내진 설계가 된 건축물은 16.4%에 불과했다. 민간 건축물만 따지면 내진 설계 비율은 더욱 떨어진다. 내진 설계는 가장 기본적인 지진 대비책이다. 언제 또 규모 5 이상의 강진이 한반도를 흔들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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