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찍힌 나는 숨었고, 퍼뜨린 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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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처럼 곧고 순하게 살아온 중년의 정순.
더 평범할 수 없을 만큼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녀가 디지털 성범죄를 당하며 겪는 감정의 파도를 그린 영화 '정순'이 17일 개봉한다.
공사판에서 일하다 몸을 다쳐 공장으로 흘러왔다는 영수에게 정순은 눈길이 간다.
출근 전 근처 호숫가로 드라이브를 갈 때 그녀는 이모나 엄마가 아닌 오롯이 '정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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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9개 국제영화제서 초청
女주인공 김금순 연기 돋보여
지방 소도시의 작은 아파트에 사는 정순(김금순)은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 단출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식품공장으로 향한다. 공장에서 그녀의 이름은 ‘이모’다. 누가 누군지 구별되지 않는 하얀 위생복을 입고, 새파랗게 어린 책임자 기분을 하루 종일 살핀다. 결혼을 앞둔 딸이 궁상맞게 허리띠를 졸라매 속이 상하지만 달리 해줄 것이 없어 통 가득히 반찬을 만들어 담는 그녀의 일상은 주변 어디에나 있을 것처럼 평범하다.
그러던 어느 날 단조롭던 정순의 일상에 영수(조현우)라는 ‘돌’이 던져진다. 공사판에서 일하다 몸을 다쳐 공장으로 흘러왔다는 영수에게 정순은 눈길이 간다. 여관 셋방살이를 하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며 점점 가까워진다. 출근 전 근처 호숫가로 드라이브를 갈 때 그녀는 이모나 엄마가 아닌 오롯이 ‘정순’이 된다.
하지만 정순의 작은 행복은 한순간 무너진다. 함께 밤을 보내며 즐겁게 노래 부르는 그녀의 모습을 촬영한 영수가 이를 공장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영상이 시내로 퍼져나간다. 정순은 수치심에 집으로, 방으로 숨어들다가 잠시 숨이 트인 어느 날 웃으며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영수를 목격하곤 그와 대면하기로 결정한다. 영화 ‘울산의 별’(2022년), ‘잠’(2023년)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김금순이 정순 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정말 우리 곁 어디엔가 있을 것 같은 이모이자 엄마의 모습으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정지혜 감독(29)의 장편 데뷔작이다. 동의 없이 사적 영상이 유포되는 악몽을 겪는 중년 여성을 사실적으로 조명했다. 정 감독은 “편견으로 소외되고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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