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꿈에서 깼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곽진산 기자 2024. 4. 1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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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식탁에 앉아 마른반찬을 우걱우걱 씹고 있었다.

'오늘은 어디서 누구랑 술을 먹을까' 하며 멍하니 티브이를 봤던 것 같다.

사실은 그날 아무 일도 없었고 그해 우리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고 지금 그들은 멀쩡한 삶을 보내고 있을 거고, 또 이 참사를 기록한 것들은 모두 공백이었다고 말이다.

꿈이기를 바라며 아마도 앞으로 11번째, 12번째를 자연스럽게 맞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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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8주기를 하루 앞둔 2022년 4월15일 낮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단원고 4·16기억교실 책상에 추모 리본이 놓여 있다. 안산/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곽진산 | 한겨레21부 탐사팀 기자

그날, 식탁에 앉아 마른반찬을 우걱우걱 씹고 있었다. ‘오늘은 어디서 누구랑 술을 먹을까…’ 하며 멍하니 티브이를 봤던 것 같다. 대학교에 복학한 뒤 고등학교 2학년 사촌의 수학 교습 선생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면으로 송출되는 믿기 힘든 장면을 보고선 며칠 전 사촌 동생이 신이 나 한 얘기가 생각났다. ‘오빠, 이번 주는 안 돼. 우리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거든.’ 그 뒤의 말은 희미해 잘 기억은 나지 않았다. 제주도에 배를 타고 간다고 했던가.

급하게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수학여행 일정이 한주 미뤄졌다며 애들은 아직 학교라고 했다. 대신 다른 아이들이 그 배에 탄 것 같다고 했다. 동생이 다니던 학교에서 멀지 않은 학교의 아이들이었다. 어쩌면 스치듯 만났을지도 모른다. 또 다행히, 그 아이들이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이 자막으로 나왔다. 안도하며 티브이를 껐다. 그날 저녁엔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야속하게도 나의 두번째 다행은 거짓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구조되지 않았다. 늘 사실이라고 믿었던 뉴스 화면의 문구가 거짓일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며칠 뒤에도 뉴스 화면은 바다에 머물러 있었다. 생전 본 적이 없는 파란색 배의 아랫부분이 아슬아슬하게 떠올라 있는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완전히 배가 가라앉은 뒤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무관심했다기보다는 전혀 현실 같지 않아서 외면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습은 자연히 중단됐다. 사촌 동생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더는 할 자신도 없었다. 그 뒤론 스스로만 보며 살았다.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꽤 시간이 흐른 뒤 그제야 사촌 동생의 모습을 봤다. 동생은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도 했다. 이젠 술도 많이 먹는다며 쓸데없는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얘들이 이만큼 컸겠구나 싶었다.

끔찍했던 그때의 기억은 꿈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 정말 지금도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날 아무 일도 없었고 그해 우리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고 지금 그들은 멀쩡한 삶을 보내고 있을 거고, 또 이 참사를 기록한 것들은 모두 공백이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다시 4월이 올 때면 어김없이 이 꿈에서 깨어난다. 그사이 뭔가를 기록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10년간의 기록을 통해 그 사고를 복기하는 중이다. 그렇게 올해도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꿈을 꿨다 깨기를 벌써 열번째 반복해, 지금은 10주기를 앞두고 있다. 잊으려 했던 그때의 기억은 이제 더 선명하게 그려졌다. 누군가는 이것을 트라우마라 하기도 했다.

뿌듯한 일도 있었다. 얼마 전엔 생존자분을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은 괜찮냐’고 한 물음에 그는 아직 고통스럽지만, 괜찮아졌다고 웃었다. 인터뷰하면서 짓는 옅은 웃음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누군가 하는 ‘아직도?’라는 질문은 적어도 나에겐 의미가 없다. 잊고 싶지도 않고 잊을 수도 없는 기억이다. 꿈이기를 바라며 아마도 앞으로 11번째, 12번째를 자연스럽게 맞이할 것 같다. 관성적으로 이날이 오면 생전 한번도 보지 못했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그러곤 아이들을 닮은 사촌 동생들의 안부를 계속해서 물을 계획이다. ○○아, 뭐 하고 지내냐고. 별일이 없으면 금요일에 보자고.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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