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제비꽃에 대하여

노현 기자(ocarina@mk.co.kr) 2024. 4. 1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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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길, 어느새 다 져버린 벚꽃을 바라보다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제비꽃을 본 기억이 없다.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 삼짇날 즈음 핀다고 해서 제비꽃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들꽃을 보면 비로소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관심 대상이 꼭 제비꽃일 필요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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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안도현·'제비꽃에 대하여' 중에서)

총선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길, 어느새 다 져버린 벚꽃을 바라보다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제비꽃을 본 기억이 없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봐도 예전과 달리 감흥이 없었던 까닭을 비로소 알게 됐다.

봄은 제비꽃과 함께 온다.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 삼짇날 즈음 핀다고 해서 제비꽃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들꽃을 보면 비로소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보도블록 갈라진 틈이나 어느 집 담벼락 아래에서, 혹은 생각지도 못한 어떤 곳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민 보랏빛 꽃망울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순간이면 어찌나 반가운지. "올해도 어김없이 와주었구나!"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요즘 사람들은 주위 풍경 대신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다. 그 안에는 재미도, 정보도, 세상 모든 게 다 있지만 봄은 없다. 한번쯤은 허리를 낮추고, 오매불망 자신을 바라봐주길 기다리고 있는 봄꽃과 눈을 마주쳐보는 것은 어떨까.

관심 대상이 꼭 제비꽃일 필요는없다. 벚꽃은 졌지만 봄꽃의 향연은 끝나지 않았다. 진달래가 지면 철쭉이 온 산야를 붉게 물들이고, 수수꽃다리(라일락)가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청춘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것이다. 고궁과 공원 정원에는 황매화니 매발톱꽃이니 하는 꽃들이 앞다퉈 핀다. 산에 가면 형형색색의 현호색이 반겨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야생화의 여왕'으로 불리는 얼레지의 황홀한 자태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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