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꽃

2024. 4. 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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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라진 보라색 할미꽃, 고개 숙여 들여다보는 아이, 하트 모양이 되었다.

할미꽃 줄기에 솜털, 아이 목덜미엔 보솜.

아이와 할미꽃은 무슨 얘기 하고 있나 검지로 만져보며 보오오 이야기하는 아이.

개나리 진달래 할미꽃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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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라진 보라색 할미꽃, 고개 숙여 들여다보는 아이, 하트 모양이 되었다. 할미꽃 줄기에 솜털, 아이 목덜미엔 보솜. 아이와 할미꽃은 무슨 얘기 하고 있나 검지로 만져보며 보오오 이야기하는 아이.

가로수 아래 보도블록 틈, 노랑 하양 보라 그리고 작은 민들레. 봄은 틈에서 살그머니 올라오다가 터진다. 노랑 초록 분홍빛을 퐁퐁 터뜨린다.

5월, 한울공원 산책한다. 부드러운 햇살 내 어깨를 감싸고 향긋한 꽃향기 머리가 어지럽다. 눈 감고 고개 들고 두 팔 벌리면, 바람이 손가락 사이에 걸려 부드럽게 만져졌다. 눈 감고 바람 만지며 서 있는 내 앞에 심바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강아지 심바가 내 무릎 위를 기어올랐다. 그래 집에 가자 얘야.

4월, 하얀 벚꽃 흩날릴 때 친구와 나는 나뭇가지와 꽃을 꺾어 둥글게 왕관을 만들었다. 친구는 왕비가 되고 나는 친구를 따라가며 떨어진 벚꽃을 주워서 뿌렸다. 소년이 우리를 따라온다. 소년도 수줍어하며 친구에게 꽃을 뿌려준다. 뒤돌아 그때로 달려가고 싶다.

시장바구니 속 배추에 숨어 온 달팽이. 녀석을 접시 위에 놓았다. 배춧잎을 먹고 배춧잎 아래 숨고 똥을 엄청 쌌다. 녀석이 없어졌다. 배춧잎을 들춰보고 접시 주위를 살펴보았다. 없다. 아이는 달팽이 배고플 거라며 배춧잎을 잘게 잘라서 싱크대, 부엌, 식탁, 거실 여기저기 놓았다. 나는 지저분하고 다니기 불편하다고 아이에게 말했다. 어디 간 거야? 팽이 녀석. 며칠 후 달팽이가 나타났다. 움직이지 않는다. 꼬임이 세 개 그대로, 몸통은 바싹 말라 있었다. 아이는 녀석이 죽을까봐 배추로 덮어주고 물을 살짝 뿌려주었다. 팽이 녀석은 살아났다. 눈을 빼꼼 내밀고 주위를 살폈다. 달팽이는 색깔을 소화하지 못해 녹색 잎 먹고 녹색 똥, 초록 잎 먹고 초록 똥, 노랑 꽃잎 먹고 노랑 똥, 흙 먹고 검정 똥. 용수철 모양 몽글하고 긴 달팽이 똥. 등껍질을 만들라고 달걀껍질도 주었다. 따뜻한 봄날 녀석을 풀밭으로 보내줘야지.

바람이 코스모스 꽃잎에 앉았다. 바람은 코스모스 꽃잎을 흔들흔들 춤추게 하고 커다란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 휘리릭 나뭇잎에서 재주를 부려 가지를 힘차게 흔들고 아파트 넘어 훌훌 가버렸다. 코스모스가 같이 가고 싶은가 보다.

아이가 두 손으로 선인장을 감쌌다. 선인장이 아이 손을 깨물었다. 아이는 소리치며 멀리 달아났다. 할머니가 와 그라노? 할머니 거기 가지 마세요, 침 나와요. 벌이 숨어 있나 봐요.

봄이 새싹을 낳고 나비를 낳고 부드러운 바람을 낳고 햇살도 낳고 아기 받으세요. 응애. 개나리 진달래 할미꽃 민들레.

텃밭에 고추 깻잎 상추 심고 작년에 농사지어 봤다며 올해는 자신만만 조롱박도 심었다. 어째 자라지 않는 건가? 힘없이 고개 숙인 아기 잎. 카톡 사진 찍어 묘목 산 곳에 보냈다.

아저씨는 사진을 보시더니, 비료를 너무 많이 주어 어린 뿌리가 아픈 거라 하시고, 나는 묘목을 파내어 뿌리에 묻은 비료를 물로 씻어내고 다시 심었다. 무엇이든 넘치면 안돼. 내가 욕심이 많았네. 빨리 자라라고 너무 많이 줬네. 나는 중얼거렸다.

[권명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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