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서라도…” 을사늑약 반대 민영환 유서 국가문화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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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다그러나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지하에서라도 여러분을 기어이 도울 것이다. 동포 형제들은 천만 배나 마음과 기운을 더하여 지기(志氣)를 굳게 하고, 학문에 힘쓰며, 한마음으로 서로 돕고 힘을 모아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라."
1905년 11월17일 일제에게 대한제국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자결한 황실 시종무관 민영환(1861∼1905)이 남긴 유서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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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의 앞뒤 여백에 한자로 빼곡히 적어
“오호!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다…그러나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지하에서라도 여러분을 기어이 도울 것이다. 동포 형제들은 천만 배나 마음과 기운을 더하여 지기(志氣)를 굳게 하고, 학문에 힘쓰며, 한마음으로 서로 돕고 힘을 모아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라….”
1905년 11월17일 일제에게 대한제국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자결한 황실 시종무관 민영환(1861∼1905)이 남긴 유서의 일부다. 이 글을 빽빽하게 적은 그의 명함이 공식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민영환 유서(명함)’와 전남 여수시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한다고 11일 예고했다.
이 명함은 1905년 11월30일 자결 직전 남긴 것으로, 가로 6㎝, 세로 9.2㎝ 크기다. 앞면에 ‘陸軍副將正一品大勳位 閔泳煥(육군 부장 정일품 대훈위 민영환)’이란 한자명 직위가, 뒷면에는 ‘Min Young Hwan’과 ‘민영환’이란 알파벳·한글 인명 표기가 각각 인쇄되어 있다. 민영환은 명함의 앞·뒤면 여백에 한문 유서를 적었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死而不死)’고 절규하는 내용은 이천만 동포에게 이별을 고한다는 ‘訣告我大韓帝國二千萬同胞(결고아대한제국이천만동포)’ 문장으로 끝난다. 민영환 유족은 봉투에 담긴 이 명함을 소장하다가 1958년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했다. 문화재청 쪽은 “자결 순국한 민충정공의 정신을 후세에게 알릴 수 있는 뛰어난 사료적 가치를 지녔다”고 설명했다.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은 1885년 영국 군대의 거문도 불법 점령 사건으로 알려진 곳이다. 등록 예고된 구역(26,610㎡)에는 해방 이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됐던 모습을 볼 수 있는 ‘구 삼산면 의사당’과 19세기 말 이후 동아시아 근대산업유산으로서 상하이와 거문도를 이었던 해저통신시설 등 문화유산들이 곳곳에 분포돼 있다.
국가등록문화재는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유산들 가운데 제작·형성된 지 50년 이상 지난 역사문화 유산을 가리킨다. 다음달 17일부터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바뀌면서 국가등록문화재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명칭이 바뀐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도판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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