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에 대파당한 윤 대통령…김건희 리스크부터 이종섭까지

손현수 기자 2024. 4. 11.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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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윤 정부에 회초리 아닌 쇠몽둥이…정치적 탄핵”
4·10 총선을 관통한 것은 정권심판론, 2년 동안 이뤄진 윤석열 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론이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4·10 총선을 관통한 것은 지난 2년 동안 이뤄진 윤석열 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론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과 이종섭 전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 임명·출국 파문,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비판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 의-정 갈등, 윤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으로 상징되는 고물가 상황은 연초부터 총선까지 정국을 달궜다.

이미 기저엔 △이태원 참사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순직 사고 수사 외압 논란 △연구개발(R&D) 예산 대폭 축소 △2030 세계 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 △제3자 변제를 통한 대일본 저자세 외교 △2023년 13차례에 걸친 국외 순방 등 켜켜이 쌓인 ‘전력’들이 있었다.

2022년 10월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기념행사 경축연에서 이종섭(왼쪽부터) 당시 국방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와 함께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김건희 여사 문제와 윤 대통령의 불통이 가장 크게 민심을 분노하게 했다고 봤다.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김건희 특검법)에 지난 1월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고, 특검법은 재표결 끝에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대로 결국 폐기됐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도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월 “국민이 걱정할 부분이 있다”고 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사퇴를 거론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2월 한국방송(KBS) 대담에서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된다”며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사과 대신 김 여사를 시민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을 선택했다.

김 여사는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과 네덜란드 국빈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지난 5일 총선 사전투표를 한 것도 언론 보도가 나온 9일에야 확인해 줬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10일 한겨레에 “정권 심판론이 통했고, 여러 리스크 중 김 여사 리스크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다”며 “유권자들이 윤 정부에 회초리 수준이 아닌 쇠몽둥이를 들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1월 20일 영국 국빈 방문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오르며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은 언론과의 직접 소통도 중단했다. 그는 ‘바이든-날리면’ 발언 논란 뒤인 2022년 11월 전격적으로 약식 기자회견을 중단했다. 기자회견은 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없는 상태다.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윤 대통령은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사망 사건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갑자기 호주 대사로 임명했다가 정권 심판론을 자초했다. 이 전 대사는 결국 조기 귀국 뒤 자진 사퇴했다. 앞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주식 파킹 의혹으로 지난해 10월 낙마하고, 자녀 학교폭력 논란에 휩싸인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도 지난해 2월 낙마했다. 72억원 재산 형성 과정에 불법 의혹이 제기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지난해 10월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정부 내내 인사 참사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는데, 선거철 이 대사 논란까지 겹쳤다. 윤 대통령이 자기 사람을 감싸는 걸 넘어서, 잘못을 감추려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정치적 탄핵”이라고 평가했다.

2024년 3월18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강남구 양재하나로마트에서 한 단에 875원으로 극히 저렴한 대파를 두고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가 시민들의 엄청난 분노를 일으켰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고물가는 티핑 포인트(급변점)가 됐다.

대파, 사과, 양배추 등 채소·과일 가격이 수직 상승했다. 한국갤럽의 3월 넷째 주(26~28일) 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부정 평가 이유 1위는 경제·민생·물가 대응 미흡(23%)이었다. 지난달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에서 한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 발언과 이수정 국민의힘 경기 수원정 후보가 일주일 뒤 “875원은 한 뿌리 얘기하는 것”이라고 한 발언은 선거 내내 회자됐다.

대파는 심판론의 상징이 되다시피 했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사람들은 자기 삶이 힘들고 어려운 것에 더 크게 반응한다. 오죽하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라며 “물가와 금리가 급격히 올랐음에도, 정부는 잡지 못했다. 여기에 윤 대통령과 이 후보의 ‘대파 발언’까지 겹치면서 정권 심판론은 더욱 공고해졌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도시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주제로 열린 스물한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태 정치를 연상시키는 노골적인 관권선거 논란도 심판론의 원인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부터 총선 직전까지 24차례에 걸쳐 전국에서 민생토론회를 진행하고 지역 개발 정책을 발표했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당장 국민의힘 안에서 대통령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것”이라며 “‘총선 전 민생토론회도 안 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3월 한달 언론에 등장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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