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정의당 '0석', 20년 진보정치 막내리나

서어리 기자 2024. 4. 1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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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마한 심상정·이낙연, 줄줄이 은퇴 기로에?

"미워도 다시 한번"

녹색정의당의 간절한 호소는 유권자들에게 끝내 가 닿지 않았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6석, 10%에 달하는 수치에도 아쉬워했던 녹색정의당은 4년간 꾸준한 내리막을 탄 끝에 결국 원외 정당으로 밀려났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10석 쾌거를 이뤘던 20년 만의 일이다.

예견된 참패였다. 위기는 지난 2022년 대선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정의당의 대선 후보였던 심상정 의원은 2.37%를 얻었다. 그도 모자라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는 권수정 후보가 1.83%를 얻는 데 그쳤다. 총선을 앞두고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은 늘 3%를 밑돌았다.

녹색정의당은 이같은 하락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4.10 총선에서 원내 진입 조건인 비례 3% 이상, 지역구 1석을 채우지 못했다. 명실공히 지켜왔던 제2야당 입지가 무너진 것은 물론 원외 정당으로 전락했다. 지역구 후보로는 유일하게 기대를 걸었던 경기 고양갑의 심상정 의원도 3위에 그치면서 민주당 후보에 자리를 내줬다. 진보정당 역사상 첫 5선 도전 또한 수포로 돌아갔다.

녹색정의당은 거대 양당이 '검찰 독재 정권 심판', '운동권 심판'을 내세운 것과 달리, 노동·기후·성평등 의제를 강조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거대 양당이 4년 전에 이어 준연동형 비례제의 빈틈을 악용해 위성정당을 만들 때 불이익을 무릅쓰고 '위성정당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에 지식인들은 "녹색정의당이 없는 한국 정치를 상상할 수 없다"며 연달아 지지 선언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유권자들은 등을 돌린 지 오래였다.

당력이 약한 녹색정의당은 언제나 원칙과 실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지난 2019년 '조국 사태' 때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위해 민주당이 원하는 조 전 장관 임명에 동의해줬고, 지난 2022년에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유보 입장을 뒤집고 검찰청법 개정안에 찬성해 보수·중도층으로부터 '민주당 2중대' 비판을 받았다. 반면 지난 대선에서는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와의 단일화를 거부했고, 지난해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국면에서는 원칙론을 내세워 당론 가결 입장을 폈다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었다.

'2중대'와 '배신자' 프레임 사이에서 녹색정의당이 내세우는 노동자·성평등·기후 의제는 희미해져만 갔다. 중대재해처벌법이나 노란봉투법, 전세사기특별법 등 노동·민생 법안 성과도 잊혀졌다. 여러 차례의 지도부 교체도, 광화문에서 다섯 번의 큰 절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노회찬·심상정을 대신할 새 얼굴은 나오지 않는데, 설상가상 탈당자들이 속출했다. 류호정 전 의원과 박원석 전 의원, 조성주 전 정책위부의장, 천호선 전 대표까지 제각각 제3지대로 이탈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약했던 당세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갔다.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를 표방하는 신당 창당이 이어졌고, 특히나 조국 대표가 이끄는 조국혁신당이 등장하며 녹색정의당 일부 지지층을 흡수했다. 생존을 위해 녹색당과 선거 연대를 했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은 과정이었다.

현재 당 체제가 이번 총선을 위해 결성된 선거연합이었던 만큼 녹색당과 정의당은 4월 말을 기해 각자 정당으로 돌아간다. 녹색당과 선거연합을 하기 전 이미 비상대책위 체제였던 정의당은 27일 별도로 전국위원회를 열고 향후 지도체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원내 정당이었던 정의당이 원외로 추락한 후유증을 단기간 내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연이은 참패로 당직자·당원 모두 피로감이 상당한 데다 득표율 2%도 채우지 못해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 또한 박탈당함으로써 향후 정치 활동에도 지장이 생기게 됐기 때문이다. 정의당의 상징과도 같았던 심 의원마저 은퇴를 고려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당 안팎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일 전날인 4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녹색정의당 김준우 대표와 심상정 원내대표 등 당원들이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총선으로 은퇴 수순에 올라선 이는 심 의원만이 아니다. '극한 대립 정치 극복'을 주장하며 새로운미래를 창당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 또한 정치적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 전 총리는 광주 광산을에 출마해 기대에 못 미치는 13.84%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었던 광주 유권자들에게 사실상 외면받은 것이다. 총선 도전이 좌절됨으로써 대권 도전 또한 멀어졌다는 평이 나온다. 박원석 전 의원은 최근 방송에서 이 전 총리와 관련해 "대선 이야기가 나오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 그걸 염두에 두거나 계산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며 "이낙연 대표 처지가 냉정하게 보면 은퇴로 가는 길목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의 구심점이었던 이 전 총리가 정계 은퇴를 할 경우 새로운미래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이 전 총리는 지난 9일 라디오 방송에서 "대선을 향해 간다면 결국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탈당파로 구성된 새로운미래 인사들의 민주당 재입당을 위한 출구를 열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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