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에 ‘좋은 죽음’을 생각하다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4. 4. 1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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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유지민 | 서울 문정고 2학년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 유성호의 저서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읽고 든 의문이다. 저자는 법의학자와 교수를 겸직하며 경험한 시체, 부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죽음은 시사, 범죄 프로그램 외엔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도 알기도 어려운 소재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20대를 앞둔 시점에서 느끼는 ‘좋은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

‘그레이존’(gray zone)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이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뜻하는 의료 용어다. 과거엔 생과 사의 시점이 명확히 나뉘었다. 하지만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연명치료’가 등장하며 경계가 희미해졌다. 책에 따르면 미국의 보건·의료 예산 중 10~12%가 삶의 마지막 1년간 쓰인다고 한다. 모종의 까닭으로 위독한 상황에 놓인다면 연명치료를 거부할 것이다. 편안한 공간에서 가족들,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떠나가는 것이 좋은 죽음이지 않을까.

가장 가까이서 바라본 죽음은 장례식이다. 그 때문에 종종 미래의 장례식에 대해 상상하곤 한다. 작가는 ‘그레이스 리’라는 인물을 소개한다. 그는 국내 유학파 미용사 1호로 업계에 큰 획을 남겼다. 그의 장례식은 조금 특별했다. 국화꽃 대신 붉은 장미와 와인이 놓이고, 탱고 음악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레이스처럼 장례식을 가족과 친구들, 지인들이 마냥 슬퍼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지 않다. 검은 옷 대신 내가 좋아하는 하늘색 옷을 입고, 케이팝과 동물의 숲 배경음악을 틀고, 상에 샤인머스캣과 초콜릿이 올라가면 좋을 것 같다. 비통함, 슬픔보단 생전의 나를 추억하는 대화로 채워지길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는 죽음, 무엇보다 좋은 죽음일 것이다.

한때 ‘버킷 리스트’ 작성이 유행했다. 이는 죽음을 뜻하는 속어인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죽기 전 꼭 이루고 싶은 일들을 작성한 목록인데, 내겐 세가지 버킷리스트가 있다. 첫번째는 외국 한달 살기다. 이전에는 여행 내내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크게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일상의 연장선 같은 여행을 좋아한다. 점 찍듯 관광지를 쏘다니지 않는, ‘살아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여행을 하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제일 도전하기 좋은 기간은 한달인 것 같다. 공기 좋고, 걷기 좋고, 예술이 있는 도시에서 여유롭게 지내보고 싶다.

두번째는 책 쓰기다. 4년 동안 꽤 많은 칼럼이 쌓였다. 이 글들을 모아 책을 내고 싶다. 유기성이 필요한 작업이기에 각오하고 시작해야 한다. 지금은 고등학생의 신분이기에 꿈만 꾸고 있다. 조금 여유로워지면 꼭 도전하고 싶다. 또한 여태껏 써온 칼럼 이외에도 다양한 장르, 주제의 글을 싣고 싶다. 요즘은 시의 매력을 알아가고 있다. 보다 감성적이고 간결한 문장과 묵직한 울림에 이끌린다. 아직도 시도할 게 무궁무진한 글의 세계가 나를 설레게 한다.

마지막은 장기기증이다. 어릴 적부터 헌혈, 기증에 관심이 많았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름 모를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헌혈은 아쉽게도 체구가 작아 하기 어렵지만, 얼마 전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평생 최대한 건강하게 살아 많은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싶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기기증 대기자 수는 해마다 증가해 2022년 4만명 이상을 기록했다. 이에 반해 장기 이식 건수는 해마다 1500여건에 그친다. 세상을 떠나고서도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의 하나인 장기기증에 많은 이들이 동참했으면 한다.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글을 쓰고 보니 죽음에 대해 또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 놀랐다. 또한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좋은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달았다. 마지막 순간에 돌이켜볼 때 후회하지 않도록 성실, 정직, 행복하게 살기. 무엇보다 중요한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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