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지능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김민형의 여담]

한겨레 2024. 4. 1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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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일반 지능이 가능한가?’는 계산과학과 뇌과학, 철학의 경계에서 자주 대두되는 핵심 질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을 모두 할 수 있는 기계의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건 당연히 어렵다. 생명미래연구소(FLI) 제공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위키 백과에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온다: ‘인공 일반 지능(人工一般知能)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떠한 지적인 업무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가상) 기계의 지능을 말한다.’ 바둑 천재 이세돌을 이겨낸 알파고처럼 언론에 보도되는 놀라운 혁신은 다 특화된 기술만 지닌 인공지능에 관한 것들이다. 근년에 유명해진 챗지피티(GPT)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은 대화나 정보 수집·전달을 인간처럼 또는 인간보다 훨씬 잘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만 해도 초보적인 실수가 잦다. 수학 문제도 어떤 것은 잘 풀다가 비슷한 수준의 다른 문제엔 가끔 기상천외한 오류를 드러낸다. 그 때문에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글과 대화가 혼란스럽고 모호하다.

‘일반’이란 말은 특정한 제약 없이 인간이 할 만한 작업은 모두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공 일반 지능이 가능한가?’는 계산과학과 뇌과학, 철학의 경계에서 자주 대두되는 핵심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의 난해함은 사실 위의 정의가 별로 소용이 없다는 데서 기원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지적인 업무’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을 모두 할 수 있는 기계의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건 당연히 어렵다.

20세기 중반에 그 당시 존재하지도 않던 학문인 계산과학의 근간을 이룬 주요 질문들도 비슷한 부류였다. 1936년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은 ‘계산 가능한 수’라는 논문에서 지금은 ‘튜링 기계’라 불리는 이론적인 컴퓨터의 설계를 제안했다. 현재 사용되는 모든 컴퓨터는 튜링 기계의 구현이라는 점에서 튜링은 현대 컴퓨터의 발명자라 할 수 있다(튜링 기계에 대한 설명은 위키 백과를 참고하기 바란다). 그러나 튜링의 논문은 실제 사용할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 ‘계산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탐구하기 위해서 쓰였다.

계산과 관련된 풍부한 역사는 학자들 사이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요사이 ‘계산한다’는 일종의 단순작업으로 간주돼 교육 과정에서 과소평가되기도 한다. 각종 계산 기법은 태곳적부터 과학-기술을 통한 문명 발전을 촉진해 왔고, 현대에 사용되는 모든 기계 제작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계산과 관련된 심오한 개념적 문제는 세상의 구성과 가능성에 대한 근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상하게도 그 중에는 다양한 종류의 ‘불가능성 정리와 예측’이 많다. 예를 들자면, 클레이 수학 연구소에서 100만 달러의 상금을 내건 ‘밀레니엄 문제’ 중에 특정한 최적화 작업을 실행하는 효율적인 계산법이 없다는 소위 ‘P≠NP 추측’이 그중 하나다(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작업도 기발한 방법론이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명제의 증명은 어렵다).

그런데 짐작할 수 있듯, 이런 결과의 증명을 시도하려면 ‘계산’이 무엇인지를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규명해야 한다. 그런 정의가 바로 튜링의 논문 주제여서 지금은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은 ‘튜링 기계로 실행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튜링과 그의 지도 교수였던 알론조 처치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계산’이라고 느끼는 모든 작업은 튜링 기계로 실행할 수 있다는 ‘처치-튜링 가설’을 제안했고 이 원리는 이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모호한 개념인 ‘계산한다’는 ‘튜링 기계로 실행한다’는 명료한 개념으로 대체됐고, 이를 타당하다고 받아들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공 일반 지능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인간 뇌의 기능이 모두 일종의 계산인가?’라는 질문과 거의 같아지게 된다. 현대 뇌과학자들의 주류는 뇌의 기능을 계산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뇌의 기능을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기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고, 인간 지능이 과연 뇌의 기능만으로 설명되느냐는 더 근본적인 질문도 가능하다(가령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음이 심장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실용적 컴퓨터의 대부로 알려진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은 ‘기계가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작업 하나를 아주 정확하게만 묘사해 주면 그 작업을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지적 능력이 무엇인지를 인간 자신이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나는 꽤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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