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계 2군 취급받던 김사경 작가, 이젠 임성한·김순옥이 부럽지 않다

박생강 칼럼니스트 2024. 4. 1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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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순정남’, 김사경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가 너무 오컬트화 되고, 김순옥 작가의 SBS <7인의 부활>의 시청률이 <7인의 탈출>의 발끝도 못 따라가면서 막장 드라마는 무주공산이 된 느낌이다. 이런 와중에 소소하게 MBC 일일극 <세 번째 결혼> 같은 드라마가 새로운 막장극 톱의 자리를 넘보기도 했다.

나름 흥행에 성공한 MBC <세 번째 결혼>의 경우 우아하게 파격적 설정들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데 성공했다. 친구 아버지를 살해하는 악녀부터 시작해서, 비록 진실을 알지 못해 벌어진 일이지만 친모의 남편을 빼앗아 계약결혼하는 여주인공까지 <세 번째 결혼>에는 불편한 설정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파격적 설정의 매운 맛을 잡아주는 두 남녀 주인공의 우아한 성격이나 악녀의 코믹함 때문에 드라마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불편해지지는 않는다. 단 전형적인 막장극의 익숙한 템포와 캐릭터들이어서 딱히 드라마가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종종 정신세계가 먼 별로 떠나는 것 같은 임성한 월드나, 장르물에 한이 맺혔지만 장르물에 가까워질수록 유치해지는 김순옥 월드보다는 깔끔한 진행이라는 생각은 든다.

KBS 주말극 <미녀와 순정남>으로 돌아온 김사경 월드 역시 <세 번째 결혼>처럼 전형적인 멜로물이나 가족드라마에 사이다와 고구마를 섞는 전통 형식의 막장극을 지향한다.

사실 김사경 작가는 시청률은 높았어도 김순옥이나 임성한, 혹은 문영남에 비해 막장드라마계의 2군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KBS <하나뿐인 내 편>부터 <신사와 아가씨>로 이어지면서 김사경 월드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바로 트렌드와는 상관없이 굉장히 '올드한' 느낌의 드라마를 지향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하나뿐인 내 편>은 부모 자식의 '효도' 코드를 적극 차용했다. 부녀 사이임을 알지 못했던 강수일(최수종)과 김도란(유이)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회복해가는 것이 드라마의 주요줄거리였다. 또한 드라마의 갈등선의 주축은 박금병(정재순)의 치매를 둘러싼 것이었다. 효녀의 정서를 지닌 도란이가 등장할 때마다 박금병의 치매는 씻은 듯이 회복된다. 드라마는 내내 낡은 정서라고 비판받았지만 <하나뿐인 내 편>처럼 높은 시청률을 올린 주말드라마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후속작 <신사와 아가씨>는 클래식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오마주처럼 느껴지는 드라마다. 점잖은 신사와 지혜로운 가정교사 여주인공이라는 구조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물론 중간에 회장 이영국(지현우)이 사고로 기억을 잃었다가 돌아와 22살 철부지가 되면서 드라마는 갑자기 <바보 온달>의 오마주처럼 변해버리긴 했지만. <신사와 아가씨> 역시 낡은 방식의 스토리텔링 안에서 적절히 시청자의 뒤통수를 때려주면서 한국은 물론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처럼 김사경 월드는 익숙하고 정감 있는 스토리와 가족서사의 세계관 속에 과한 막장요소와 캐릭터들의 은근한 '똘끼'를 결합하는 방식을 택한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김사경 작가의 KBS 주말극 3탄은 <미녀와 순정남>이다. 일단 <미녀와 순정남>은 최근 내리 실패한 KBS 주말극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첫 회부터 이제는 사라진 <한지붕 세 가족> 아니, 한지붕 두 가족의 설정을 보여주더니, 어느새 백미자(차화연)와 김준섭(박근형)의 로맨스그레이로 흘러가는 듯 하다가 '꽃뱀과 노인'으로 변주된다.

이 빠른 전개 안에서 등장인물 간의 설명은 물론 주인공 아역 박도라와 고대충(훗날 고필승)의 로맨스 감정선까지 만들어낸다. 출생의 비밀부터 재벌가까지 익숙하지만 그래도 다음 전개가 기다려지는 맛이 있다. 또 이번에는 남녀 주인공 집안을 원수로 만들어놓아 <로미오와 줄리엣>의 오마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녀와 순정남>는 무미한 주말극에 지친 시청자에게 익숙하고 낡은 감성이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인스턴트 드라마의 재미는 충분히 준다.

막장에 장르물의 요소를 섞어 쓸데없이 잔인하거나, 주말극의 대모 김수현 작가의 작품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이유처럼 너무 주입식 교훈을 설파하지 않는 것도 김사경 월드의 장점.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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