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푸틴 2024년 푸틴 '비극의 오버랩' [전쟁과 문학]

이정현 평론가 2024. 4. 1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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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전쟁과 문학 15편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기록
러시아의 유명 저널리스트
푸틴의 민주주의 파괴 행위
누구보다 앞장서 비판하고 고발
의문의 총격으로 끝내 사망
최근 정적 나발니 의문의 사망
계속해서 반복되는 비극의 역사

# 1990년대 체첸과 러시아는 전쟁과 테러를 반복했다. 러시아 탐사기자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이때 민간인까지 학살한 푸틴의 만행을 고발했다. 폴릿콥스카야는 2006년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 그로부터 18년이 흐른 2024년. 푸틴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아직도 대통령은 푸틴이다. 러시아는 22년 전 걷던 길을 아직까지 맴돌고 있다.

지금 러시아에선 체첸 전쟁 시절에 있었던 일이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1991년 냉전이 종식되고 소비에트연방의 공화국들은 차례로 독립을 선언했다. 연방의 맹주였던 러시아는 냉전 후 소비에트연방을 유지할 힘을 상실했다. 그나마 옛 소련의 국토와 실권을 대부분 계승했지만, 러시아의 국가적 위신은 크게 훼손됐다.

이때 '연방공화국'이 아닌 '자치공화국' 체첸도 독립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미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를 겪은 러시아는 자치공화국까지 독립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체첸 지역은 카스피해에서 생산하는 원유의 송유관이 지나는 요충지였다. 더구나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에서 체첸이 독립한다면 21개에 이르는 자치공화국들이 동요할 것은 자명했다.

러시아는 1994년 12월 무력 개입을 선택했다. 제1차 체첸 전쟁의 시작이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지닌 러시아군은 신속하게 진군해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 이르렀다. 그러나 러시아군 기갑부대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그로즈니 시가전에서 체첸군에 밀려 패퇴했다.

뜻밖의 피해를 입은 러시아군은 무차별 폭격을 가하면서 여러 마을에서 약탈ㆍ강간ㆍ학살을 자행했다. 체첸군은 게릴라 전술로 끈질기게 맞섰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만 70만명에 달했고, 러시아군은 5000명이 전사했다.

1996년 4월 체첸 독립 지도자 두다예프가 사망했지만 전쟁은 계속됐다. 전쟁이 장기화하자 러시아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의 악몽을 상기하는 여론이 높아졌고, 전쟁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국제적인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러시아군의 철수와 5년 후 자치권 문제를 국민투표로 결정하기로 합의한 '하사뷰르트 협정'을 맺으면서 전쟁은 멈췄다.

이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체첸 전역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운 '와하비트' 운동이 일어났다. 1999년 8월 와하비트 운동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가 이끄는 반군들은 이웃 다게스탄 공화국의 마을 세곳을 점령하고, 이곳을 발판으로 체첸과 다게스탄을 합친 이슬람 공화국을 만들고자 했다.

러시아가 다시 개입하자 반군들은 러시아 본국을 타격했다. 그들은 1999년 9월 러시아 모스크바와 볼고돈스크의 아파트, 쇼핑몰에 테러를 감행했다. 그러자 러시아군은 체첸에 영구주둔을 선언했고, 연일 격전이 벌어졌다.

[그래픽 | 더스쿠프, 사진=뉴시스]

러시아군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 대통령에 오른 블라디미르 푸틴은 전임자인 옐친과는 달리 집요하게 강경책을 펼쳤다. 2002년 체첸 반군은 불리한 전세를 뒤집을 작전을 벌였다. 체첸 반군은 모스크바 국립극장을 점령해 시민 1000여명을 인질로 붙들고 농성을 벌였다.

푸틴은 러시아 수도에서 대규모 인질극을 벌이는 체첸 반군에 맞서 인질 129명을 희생시키는 진압 작전을 승인했다. 푸틴의 강경책에 세계가 경악했지만 연방 해체와 경제위기, 체첸 전쟁으로 의기소침했던 러시아 국민은 열광했다.

무리한 진압작전으로 푸틴이 정치적 위기에 몰릴 것이라는 서방의 예측은 빗나갔다. 진압 작전 후 푸틴의 지지율은 80%에 육박했다. 2004년 푸틴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재선에 성공했다.

푸틴의 강경한 대외 정책은 러시아인들의 자긍심을 일깨웠고 때마침 치솟은 석유 가격은 카스피해에 거대한 유전을 지닌 러시아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송유관이 통과하는 체첸 지역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였다. 체첸 전쟁은 다른 공화국들의 분리 요구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자 푸틴 장기 집권의 디딤돌이 됐다.

당시 러시아 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탐사기자인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체첸에 잠입해 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낱낱이 기록하면서 러시아 정부가 자행한 언론탄압을 고발했다.

그녀는 '러시아 일기' '더러운 전쟁' 등의 르포를 통해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러시아군의 만행을 기록했다. 또한 체첸 반군의 테러 현장을 취재하면서 러시아군의 강경 진압으로 희생된 인질들의 가족을 인터뷰하는 등 러시아 정부의 인권 침해와 정책 실패를 고발했다. 안나의 르포 기사로 러시아 정부는 여러 차례 궁지에 몰렸다.

안나는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2001년 체첸에서 안나는 러시아군에 억류됐고, 2004년에는 독극물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취재를 멈추지 않았다. 체첸 전쟁에서 자행된 러시아군 범죄를 추가로 폭로하려고 준비하던 안나는 2006년 10월 7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해됐다. 국제사회는 러시아 정부를 암살의 배후로 지목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침묵했다.

탐사 기자였던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체첸에 잠입해 푸틴이 저지르는 전쟁의 실태를 고발했다. 사진은 2009년 이뤄진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추모제.[사진=AP 통신]

2011년 러시아는 체첸 반군 지도자 중 한명인 루스탐 마흐무도프를 살해 용의자로 검거했고, 암살 연루를 현재까지 부정하고 있다. 2008년 유럽의회는 브리핑실을 '안나 폴릿콥스카야 룸'으로 명명하고, 분쟁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자에게 주는 상에도 그녀의 이름을 붙였다.

2007년 '안나 폴릿콥스카야상'을 처음으로 수상한 기자 나탈리아 에스테미로바는 2년 후 괴한에게 납치된 뒤 변사체로 발견됐다. 이번에도 러시아 정부가 배후로 지목됐지만, 진실은 미궁에 빠졌다.

올해 2월, 푸틴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가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3월 22일에는 모스크바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벌어진 테러로 143명의 시민이 숨졌다. 푸틴은 테러범들이 우크라이나와 연루됐다고 강조하면서 반전여론을 잠재우고 국가적 단결을 도모하고 있다. 22년 전 과거를 다시 보는 것만 같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21c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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