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15] 낭만적 얼간이의 시대는 갔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2024. 4.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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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누구에게나 청춘의 영화는 있다. 50대 이상 독자에게는 ‘졸업’(1967)이나 ‘사랑의 스잔나’(1976)가 그런 영화일 것이다. 나 같은 엑스세대에는 ‘청춘 스케치’(1994)가 있다. 영어 제목은 ‘Reality Bites’다. 의역하자면 ‘아프니까 청춘이다’ 정도 될 것이다.

‘청춘 스케치’가 재개봉했다. 1990년대 비디오로 직행했던 영화니 엄밀히는 첫 개봉이다. 청춘의 기억을 안고 다시 봤다. 갓 대학을 졸업한 레이나(위노나 라이더)는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한다. 하나는 취업도 거부한 채 안 팔리는 밴드나 하는 남자(이선 호크)다. 다른 하나는 능력 있고 성격 좋은 방송국 부사장(벤 스틸러)이다. 당연히 레이나는 전자를 선택한다. 응?

불현듯 깨달았다. 2024년의 청춘은 이 결말을 비웃을 것이다. 좋은 직업을 가진 배려남을 두고 미래도 안 보이는 놈팡이를 선택하다니. 이선 호크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담배 한 모금, 커피 한 잔, 너와 나, 그리고 5달러”라고 말할 때 90년대의 나는 감동에 넋을 잃었다. 지금 극장은 소리 없는 조소로 넘쳤을 것이다. 흡연자는 연애도 힘든 시대 아닌가.

척 클로스터만의 책 ‘90년대’에는 ‘청춘 스케치’로 90년대를 짚는 대목이 나온다. 90년대 청년들은 결말에 열광했다. 기성세대는 비현실적이라며 짜증을 냈다. 저자는 지금 MZ세대는 그 시절 기성세대 의견에 동의할 거라며 결론 내린다. “90년대는 이런 낭만적 결말이 청년 사이 타당하게 받아들여진 유일한 시기였다. 호감형 속물보다 진실한 얼간이가 더 나았다.”

아니다. 나는 내 시대가 더 낭만적이었다며 잘난 척할 생각은 없다. 엑스세대가 스스로를 ‘영포티’라 부르며 젊은 척하는 거 다들 싫어한다. 잘해 봐야 비호감형 속물이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진실한 얼간이를 선택하는 청춘이 여전히 있을 것이다. 나는 여러분을 낭만적으로 지지하겠다. 다만, 주택청약통장은 미리 가입해 두시길 권한다. 실비 보험도 드는 게 좋다. 요즘은 결혼 준비 때 발생하는 위험을 최대 보장 한도액 내에서 보상해 주는 웨딩 보험도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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