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어요!” 해오라기 부리 끝에 매달린 오리의 몸부림 [수요동물원]

정지섭 기자 2024. 4. 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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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부엉이 못지 않은 사냥꾼 왜가리류
그 중에서 가장 몸집작은 해오라기
천적 피해 밤에 사냥하지만 먹성과 사냥술은 왜가리 못지 않아
왜가리에게 목덜미를 잡힌 새끼오리가 달아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Ngorongoro Facebook

야생은 막장입니다. 인간의 윤리로 재단할 수 없는 잔혹한 살육극이 시시각각으로 벌어지니까요. 야생은 전장입니다. 먹으려는 자와 먹히지 않으려는 자의 처절한 사투가 쉴새없이 펼쳐지니까요. 야생은 난장입니다. 겉으로는 평온하고 아름다워도 한발짝만 속살을 파고 들면 살아남으려는 생명체들이 버둥거리는 아수라장이거든요. 이런 지옥도속에서는 하루 하루 살아남는게 곧 승리입니다. 이 새끼오리도 오늘의 승자가 되려는 듯 했어요. 목덜미를 사냥꾼에게 물리기 전까지 말이죠. 먼저 동영상(Ngorongogo Favebook)부터 보실까요?

새끼오리의 날갯짓이 애처롭습니다. 해오라기의 부리를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아요. 관건은 사냥꾼과 먹잇감의 덩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거예요. 제 몸에 비해 아무래도 비대해보이는데 저걸 삼킬 수 있을지 싶어요.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 해오라기가 무서운 킬러 본능을 발휘합니다. 버둥거리며 애타게 빠져나가려는 새끼오리를 물속에 푹 담급니다. 날개와 깃털이 물을 머금으면서 순식간에 먹잇감이 잔뜩 무거워지지만, 새끼오리를 그로키상태로 몰고가 저항을 제압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집안 육촌 격인 왜가리·백로가 사용하는 전법을 그대로 쓰네요. 잔뜩 무거워진 새끼오리를 단 한 번도 부리에서 놓지 않은 해오라기는 끝내 목구멍으로 먹잇감을 들이밀고 꾸역꾸역 삼킵니다. 그렇게 오리의 꿈을 꾸던 새끼가 세상과 작별하고, 사냥꾼의 에너지원으로 흡수되고 맙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백로·왜가리가(家)의 영원한 넘버 쓰리로 알려진 해오가리기의 무서운 킬러 본능을요. 영어로 ‘birds of prey’ 또는 ‘raptor’라고 부르는 맹금류에 속하는 새들로 통상 ‘수리·매’류와 ‘올빼미·부엉이’류를 꼽기 마련인데요. 최근에 백로·왜가리류까지도 맹금류의 카테고리에 넣는 경우를 찾는게 어렵지 않습니다. 먹잇감에 대한 강렬한 집착과 신출귀몰의 사냥기술 등을 보면 독수리나 부엉이에 전혀 뒤처지지가 않습니다. 물새로 알려져있지만, 작은 새와 설치류, 심지어 어린 악어까지도 거뜬히 먹어치우는 모습 때문에 서식지역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로 쉽사리 등극했지요.

몸색깔과 몸의 형태가 왜가리의 미니어처버전같은 느낌을 주는 해오라기./Smithsonian Zoo

백로·왜가리 패밀리의 대장은 뭐니뭐니해도 왜가리입니다. 공룡이 지금까지 면면히 살아왔다면 이런 모습이었겠지 싶어요. 거대한 롱다리로 물과 뭍을 휘뒤집고 다니다가 S자로 구부러진 목을 쭉 펴는 데스블로(death blow·치명타) 공격을 받은 먹잇감은 재수없으면 뾰쪽한 부리 끝에 온몸이 꿰뚫려버려서, 삼키는 그 순간까지 극심한 통증에 몸부림쳐야 해요. 왜가리보다 몸집이 확연히 작은 가문의 넘버 투 백로도 비교적 무난하게 이 전법을 구사합니다. S자로 굽어있는 머리형태가 똑같거든요. 문제는 넘버 쓰리 해오라기입니다. 백로·왜가리류에 속해있다고는 하나, 몸집 차가 두드러집니다. 중랑천 등 서울의 샛강에서 발견되는 해오라기의 경우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비둘기보다 살짝 큰 정도랄까요? 게다가 해오라기는 백로·왜가리처럼 S자형의 구부린 목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냥 짜리몽땅한 숏다리새입니다.

해오라기가 사냥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Missouri Department of Conservation

이런 불리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왜가리 못지 않은 먹성과 사냥 파워를 과시한 거죠. 백로·왜가리와 해오라기를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S자형으로 구부러진 목이 없고, 맵시있는 롱다리 대신 숏다리를 갖고 있죠. 백로·왜가리의 미니어처 버전이라고나 할까요? 당연히 부리도 짧고요. 특히 대표종인 해오라기는 몸의 색깔뿐 아니라 머리 뒤의 댕기모양 깃털까지도 왜가리와 빼닮았어요. 그 뿐 아니라 잡아먹히는 입장에서는 고역이기 그지없는 사냥·포식법까지도 왜가리류는 한 통속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해오라기의 영어 이름은 밤의 왜가리라는 뜻의 ‘나이트 헤론’이예요. 이런 이름이 붙은 건 생긴 건 왜가리와 빼닮은데, 주로 밤에 활동하면서 사냥하기 때문으로 추측돼죠. 이 놈은 어쩌다 야행성이 됐을까요? 짐승은 몸집이 무기입니다. 초식성이 아닌 이상 치열한 먹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덩치큰 다른 육식조의 활동이 뜸한 시간을 선택하는게 효율적이죠.

해오라기가 막 사냥한 뱀을 삼키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John Magera. US Fish and Wildlife Service

게다가 자신이 먹잇감이 되는 횡액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삵, 수리, 매 등 곳곳에 자신을 노리는 천적이 득시글거리고 있으니까요. 한집안 패밀리인 왜가리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먹잇감을 삼킬 때 목이 무한대에 가깝게 늘어나는 왜가리의 먹성을 감안하면 어딘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덩치의 차이만 있을 뿐 왜가리·백로·해오라기는 메뉴가 같습니다. 물고기와 작은 새와 뱀들의 천적이란 얘기죠. 해오라기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뱀사냥꾼입니다. 부리끝을 칭칭 감다시피하며 최후의 몸부림을 치는 뱀을 끈덕지게 앙다물어 지쳐빠지게 한 뒤 적당한 시점에 후루룩 넘깁니다. 알락해오라기가 사냥한 뱀을 삼키는 장면(Chedhead Facebook) 한 번 보실까요?

생김새는 상대적으로 온순해보일지언정, 백로·왜가리류의 사냥과 포식은 끈질기고 가혹하기 그지 없어 수리·매나 올빼미·부엉이 못지 않은 맹금류의 본성을 드러낼때가 많아요. 겉보기에는 우아하고 맵시있는 몸매라서 더 눈에 띄기도 하고요. 이런 드센 본성은 어쩌면 이 족속이 후천적으로 학습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짐승에게 인간의 윤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백로·왜가리류는 부화한 직후부터 한 둥지안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거든요. 대개의 경우 한 배에 낳은 알이라도 하루 이틀 시차를 두고 부화합니다. 늦게 깨어나는 놈은 태생적으로 생존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다보니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면 부화 순서대로 새끼들의 체급차가 확연해집니다. 놈들은 한 배에 나온 동기가 아닌 생애 최초의 생존투쟁 상대입니다. 그렇게 같은 체급간 새끼들의 격차가 커질 경우 극단적 상황이 발생해요. 동족 포식이죠.

해오라기 새끼가 한 배에서 자란 가장 어리고 약한 새끼를 삼키고 있다. 가족을 상대로 생애 첫 사냥을 한 것이다./Space Invader Youtube 캡처

해오라기는 새끼들간 동족 포식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종류중 하나입니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오로지 목적일 수 밖에 없는 짐승들의 적자생존 세상에서 이는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경쟁의 경쟁자 하나를 제거하며 자신의 생존률을 높일 수 있는 효과가 있죠. 좀 더 가혹한 관점으로 보자면 스스로의 힘으로 먹잇감을 찾아먹는 첫 실습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새끼오리를 삼키는 저 해오라기는 둥지에서 자라면서 사냥술을 터득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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