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려아연, 영풍과 원료 공동 구매 계약 끊는다
석포제련소 감산에 부담 느낀 듯
9일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영풍 측과 해외 업체를 통해 공동으로 매입해 온 원재료 구매에 대한 공동 매입 방침을 중단하기로 최근 결정하고, 이 같은 내용을 이달 초 영풍에도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아연정광 등 주요 품목에 대해 원료 구매와 제품 판매 과정에서 공동계약을 체결해 왔다.올 상반기부터 영풍과의 기존 공동 구매 계약의 만기가 순차적으로 도래하고 있는데 고려아연 측은 이들 계약을 갱신하지 않을 방침이다.
고려아연은 최근 사업 파트너인 영풍 측의 생산량 감소에 따른 부담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망사고로 조업차질이 이어지고 있고, 올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며 감산 정도가 심각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공동 구매를 이어온 고려아연은 불확실성에 따른 납품 차질 등으로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 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비철금속시장은 경기 침체로 인해 원료수급과 제품판매에 있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 실적 개선과 비용 절감을 위해 이번 조치를 단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고려아연과 영풍은 아연정광 등 원재료를 글렌코어, 트라피구라 등 글로벌 원자재 중개업체 등을 통해 사들였다. 고려아연의 경우 세계 1위 아연 제련업체로 글로벌 구매시장에서 막강한 구매력(바잉파워)를 이용해 유리한 조건으로 원재료를 조달해왔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트라피구라와 1850억원 규모 ‘올인원 니켈 제련소’ 투자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간 공동 경영 관계를 유지한 영풍도 고려아연과 함께 원재료를 공동으로 구매해 수혜를 입기도 했다.
고려아연이 사업적으로도 독자 노선을 선택하면서 각 사는 향후 원료구매와 제품 판매에 대해선 거래처와 개별적으로 계약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의 아연 수요는 약 42만t에 이르는데, 이 중 고려아연과 영풍은 약 39만t가량을 공급하고 있다. 사실상 철강사 등 국내 업체들의 아연 수요를 양사가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고려아연과 영풍은 전세계 아연 시장 점유율 9%가량을 차지하고 있어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다. 오랜 동업 관계가 이번 계약 종료를 기점으로 사실상 끊어지면 고려아연-영풍에 의존해온 국내 업체들뿐 아니라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려아연와 영풍의 동업관계가 끊어지는 점을 두고 외신도 주목하고 있다. 석포제련소의 조업 악화로 한국에서 아연 생산량이 급감할 시 글로벌 아연 시황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서다. 이에 지난 3일(현지시각) 강동완 고려아연 부사장은 로이터를 통해 “한국의 생산량이 급감할 경우 수출보다 내수 판매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고려아연 측의 거래 종결 방침에 대해 영풍 측은 “기존에도 자체 전담부서와 인력이 있기 때문에 제품 판매와 원료 구매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면서도 “다만 공동 구매 및 영업을 중단하면 영풍 뿐만 아니라 고려아연도 협상력과 구매력이 낮아져서 양사 모두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데 이런 결정을 한 것이 아쉽다”고 언급했다.
한편 고려아연은 올 하반기 종로 그랑서울빌딩으로 본사를 이전한다. 1980년 영풍 빌딩에 입주했던 고려아연은 44년만에 거점을 종로로 옮기게 된다. 대외적으로는 신사업 확장으로 인한 인원 증가로 사옥 이전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지만, 업계에서는 영풍과의 갈등이 주요 배경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영풍빌딩은 영풍이 소유하고 있다.
결별 수순을 밟고 있는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는 지난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 안건 등을 두고 표 대결을 벌인 뒤 최근에는 서린상사 경영권을 두고 다투고 있다. 이밖에도 영풍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고려아연과 현대차 해외법인인 HMG글로벌 간에 이뤄진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신주 발행을 무효로 해달라며 소장을 제출했고, 고려아연 역시 최근 법원에 서린상사 임시총회 소집 허가 신청을 요청하며 법정 다툼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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