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네 유일한 세상이 동물원”…‘귀여움’ 소비로 그치지 않으려면

김지숙 기자 2024. 4. 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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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댕기자의 애피랩
시민들 ‘판다 방사장’ 증가 등 서명 통해 시설 개선 요구
푸바오는 떠났지만, 동물원 동물복지로 이어질 수 있을까
푸바오가 일반 관람객들을 만나는 마지막 날인 3월3일 오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판다월드 실내 방사장에서 푸바오가 대나무 인형을 끌어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Q. 한국에서 태어난 자이언트판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떠나던 날, 푸바오를 아끼던 많은 시민들은 슬픔과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푸바오의 행복한 미래를 기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요, 이와 동시에 푸바오가 중국행을 위해 거친 한 달 동안의 검역 과정을 두고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요?

A. ‘용인 푸씨’, ‘푸공주’ 등의 애칭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아온 푸바오가 지난 3일 중국 쓰촨성 자이언트판다보전연구센터 워룽 선수핑 기지로 이동했습니다. 이날 푸바오가 태어나서 자란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서는 푸바오를 배웅하는 행사가 열렸는데, 비가 내리는 평일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민 6000여 명이 모일 정도로 관심이 높았죠. 높은 인기를 반영하듯 중국에서도 내실에 도착한 모습을 다음날 바로 공개하는 등 ‘푸공주 모시기’에 노력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3일 오전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시민들이 중국으로 떠나는 푸바오를 싣고 있는 특수 무진동 차량을 보며 배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7월20일 국내 첫 자연 번식으로 태어난 푸바오는 코로나19로 대면 접촉이 어려웠던 시기에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이 유튜브 콘텐츠로 공개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생후 5개월 무렵 ‘판다 할부지’라 불리는 강철원 사육사의 다리에 매달려 놀자고 조르는 영상이 조회 수 1600만 회를 기록하며 큰 관심을 모았고, 이후 푸바오의 성장을 꾸준히 지켜보는 팬들이 늘어나며 특정 동물을 향한 팬덤이 이례적으로 생겨났습니다. 에버랜드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푸바오 영상만 1100여건, 누적 조회 수는 5억 회에 달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슈퍼스타’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중국은 멸종위기종 보전협약에 따라 중국 바깥에서 태어난 자이언트판다를 4살 이전에 돌려받고 있습니다. 푸바오에 앞서 지난해 일본의 ‘샹샹’, 프랑스 ‘위안멍’, 미국 ‘메이샹’ ‘톈톈’ ‘샤오치지’ 등 중국 바깥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던 판다 여러 마리가 잇따라 중국으로 이동했습니다.

에버랜드 쪽은 푸바오가 중국행을 준비하는 과정도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푸바오를 아끼는 이들의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습니다.

야생동물은 국외로 나가기 전 질병 모니터링 등을 위해 일정 기간을 격리하는 검역 기간을 거치게 되는데요, 푸바오도 중국행 한 달 전부터 다른 개체들과 분리되며 내실 생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간 내실, 실내 방사장, 야외 방사장을 오가며 생활했던 푸바오가 한 달 내내 지하 내실에만 있어야 할 상황이 된 겁니다.

5일(현지시각)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1면에 자이언트판다 ‘푸바오’가 등장했다. 월스트리트 저널 누리집 갈무리

이는 에버랜드에 있는 판다의 개체 수보다 방사장의 수가 적기 때문입니다. 성체 판다들은 각자 영역에서 단독 생활을 하는데요, 현재 에버랜드 판다월드에는 내실 외에 각각 실내외 세트로 이뤄진 방사장이 2곳뿐입니다. 한 곳은 푸바오의 아빠 ‘러바오’가, 다른 곳은 엄마 ‘아이바오’와 푸바오가 번갈아 사용해왔는데 푸바오가 검역 절차에 들어가며 접촉이 제한되면서 푸바오가 내실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된 겁니다.

이에 일부 팬들은 푸바오의 이동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에버랜드 쪽의 준비가 부족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푸바오에 앞서 중국으로 판다를 돌려보낸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는 검역 과정 중에도 판다들이 방사장을 이용한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동물보호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3월28일 ‘에버랜드는 푸바오 열풍으로 번 돈을 동물에게 돌려라’라는 성명을 내놓고 시설 개선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의 2023년 영업이익은 푸바오의 인기에 힘입어 전년 대비 16.8% 증가한 661억을 기록했다”며 “에버랜드는 2026년 또다시 판다 번식을 시도할 수 있다면서도 흥행몰이의 중심에 있는 판다에게조차 방사장을 더 만들어주겠다는 계획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당장 전시시설 개선 계획을 세워, 다음 판다 번식 때에는 관람객들이 덜 불편한 마음이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일주일 동안 진행된 서명운동에 시민 3700여 명이 동의했고, 1700여 건의 의견이 접수됐다고 합니다.

동물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3월28일 에버랜드에 동물원 시설과 복지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시민 서명운동을 벌였다. 인스타그램 갈무리

서명에 참여한 시민들은 동물원과 사육사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동물복지를 위한 시설 개선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갈 때마다 동물들이 지내는 장소가 너무 작다고 느낀다”, “바오 가족(자이언트판다 가족)에게는 에버랜드가 유일한 세계다. 동물복지에 최선을 다해달라”, “푸바오의 인기가 다른 동물들의 복지로 이어지는 선순환 사례를 만들어달라”는 등의 의견이었습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모아진 서명과 의견을 곧 에버랜드 쪽에 전달하고 면담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수의사)는 “시민들의 주된 요구는 내실을 지상에 마련하고 방사장의 개수를 늘리라는 것”이라며 “내실은 채광, 환기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푸바오의 동생인 루이바오, 후이바오가 자라나는 만큼 방사장도 더 필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송바오’ 송영관 사육사가 3월20일 중국 출국을 앞두고 검역 절차 중에 있는 푸바오의 내실 생활을 공개했다. 네이버 카페 갈무리

에버랜드 관계자는 9일 한겨레에 “판다월드뿐 아니라 동물원 동물복지 개선을 위해 지속해서 투자 중이며 방사장 등의 시설은 단시간에 바꿀 수 없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며 “푸바오의 격리 또한 다른 나라의 판다들과는 다른 상황이었고,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시민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반영해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환경부는 2021년 ‘동물원 관리·사육 표준 매뉴얼’을 만들어 동물원 동물의 사육과 복지, 시설 기준 등을 마련했는데요, 내실이나 방사장 개수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는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매뉴얼은 최소한의 기준일 뿐, 개별 동물원의 환경은 2022년 개정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에 포함된 전문 검사관제도를 통해 점검한다는 계획입니다.

막 걸음마를 뗀 검사관제도가 남아있는 바오 가족과 동물들의 복지를 잘 지켜줄 수 있을까요. 최태규 대표는 “푸바오의 귀여움이라는 단편적인 측면에서 생겨난 관심이지만, 시민들은 이제 동물의 입장에서 복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서 희망을 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푸바오는 떠났지만,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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