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벌써 두렵다 [김지현의 정치언락]
“선거운동을 하면서 나라 걱정이 되기는 처음이다. 생각하는 것보다도 사람들이 더 윤석열 정부에 화가 나 있었다. 설령 우리 당이 과반을 못 한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민심이면 22대 국회 이후 임기 동안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더라.” |
물론 민주당 의원이니까 저렇게 말하는 것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여야 모두 이번 선거 내내 ‘심판’이라는 단어를 사람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친 건 확실합니다. 정권 3년 차에 치러지는 중간 평가격의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일찌감치 ‘정권심판론’을,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 조국) 심판론’을 외쳐왔죠. 양쪽 다 “내가 더 잘할 테니 나를 뽑아 달라”가 아니라 “쟤를 뽑으면 우리 다 같이 죽는 것이니 나를 뽑아라”는 협박 수준에 가까운 선거 운동을 펼쳤습니다. 정책공약은 사라졌고, 한동훈과 이재명 여야 수장을 중심으로 막말과 독설이 판을 쳤고요.
결국 21대 국회 내내 여야 간 협치의 발목을 잡았던 ‘증오 정치’ ‘혐오 정치’가 총선을 계기로 더 독해진 겁니다. 여기에 거대 양당만으로 모자라 한 때 나라를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두동강 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까지 가세하면서 진영 간 적대심은 극대화됐습니다. 현재 분위기상으론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합치면 확실히 과반은 나올 것 같은데, 분노의 표심을 먹고 22대 국회 원내에 입성하게 될 이들이 자신들의 지지층만 얼마나 극단적으로 대변할지 벌써 두렵습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21대 국회 내내 민주당 의원들이 지지층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기껏 180석 만들어 줬는데 대체 뭐한 것이냐’는 거였다. 이번에도 과반을 달성하게 되면 절대 그런 소리를 듣지 않게 더 독하게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김부겸 선대위원장은 원래도 조국 대표와 가까운 사이이고, 이번 총선 때도 조국혁신당을 향해 상당히 열린 자세를 유지해왔습니다. 박 전 원장은 ‘명예 조국혁신당 당원’ 얘기를 했다가 당 지도부로부터 경고까지 받았죠. ‘반조국’ 전선에 섰던 박용진 의원은 결이 다르겠지만, 임종석 전 실장도 ‘친문’(친문재인) 키워드로 조 대표와 뭉칠 가능성이 작지 않습니다. 누가 되든 민주당 신임 대표와 조국혁신당 신임 대표 간 ‘협업’ 가능성이 큰 거죠.
민주당이 1당이 될 경우 국회의장도 맡게 됩니다. 국회의장은 관례상 원내 1당의 최다선 의원이 맡는데, 경기 하남갑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이번에 당선되면 6선이라 당내 최다선 중 한 명이죠. 추 전 장관은 이미 최근 인터뷰에서 “헌정사 여성 최초 국회의장이란 기대감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혁신 의장’에 대한 기대라면 제가 얼마든지 자신감 있게 그 과제를 떠안을 수 있다”고 도전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한 야당 의원은 “추미애 국회의장 시대가 열리면, 양당 모두 원내대표가 필요 없지 않겠나”라며 “여야 합의고 뭐고, 추미애 하고 싶은대로 하게 될 것”이라고 쓴웃음을 짓더군요. 하긴, ‘원내 입성 후 검찰 개혁 입법을 어떻게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에 “강단 있게 하면 되는 것이다. 쫄지 않고 하면 된다. 그걸 또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다고 말씀드린다”고 답한 추 후보인데, 국회의장도 정말 ‘쫄지 않고’ 할까 봐 제가 쫄립니다.
여기에 초선 후보들도 심상치 않죠. 사회적 논란을 일으켜도 사과하기는커녕 “국민의힘이 더 심하다” 또는 “그게 뭐가 문제냐”는 ‘배째라’ 식의 논리도 버팁니다.
대학생 딸 이름으로 편법 대출까지 받아 가며 서울 반포 아파트를 매입해 논란이 된 민주당 양문석 후보(경기 안산갑)는 “언론과 검찰, 대통령실 악의 3축 결탁을 돌파하겠다”고 되레 공세에 나섰습니다. 그는 4일 지역 유세에서 “어따가 한동훈이 양문석을 고소하나” “한동훈에게 경고한다. 말장난하지 말고 너부터 깨끗이 해라”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직 의원 배지 달기도 전부터 이런데 의원 나리들이 되시면 얼마나 더 기세등등할까 싶습니다. 오죽하면 대표적인 진보 진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마저 공영운 양문석 양부남 후보(국민의힘에선 장진영 후보)를 콕 찍어 “22대 국회 입성이 부적절하다”라고 했겠습니까. 당내에선 벌써 21대 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 ‘처럼회’보다 더 독한 모임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도 나옵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더니 정말 지긋지긋하던 21대 국회가 벌써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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