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위기설’에도 실적 선방한 건설 공룡들

김경수 기자 2024. 4. 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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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0대 건설사 2023년 사업보고서 전수조사 결과
업계 1~4위 실적 양호한 흐름…‘검단 폭탄’ 맞은 5위 GS건설만 영업적자

(시사저널=김경수 기자)

건설 경기 침체와 원자재 가격 상승,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건설업계 위기설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사업의 수익성을 근거로 대출) 부실 우려마저 나온다. 하지만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실적 선방에 나름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대 건설사의 총 매출은 98조235억원에서 221조19억원으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건설 경기 침체, 원자재 가격 상승, 부동산 PF 등의 여파로 건설업계 위기설이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10대 건설사 매출 1년 만에 2배 이상 증가 

이 같은 사실은 시사저널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10대 건설사 2023년 매출과 영업이익 등을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영업이익 또한 3조7094억원을 기록하면서 전년 대비(3조6044억원) 소폭 상승했다. 불황기 속 매출원가 부담이 계속 커지는 상황에서 매출을 늘리고, 영업이익을 증가시켰다는 점에서 나름 선방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업보고서를 공시하지 않은 시공능력평가순위(시평) 10위의 호반건설은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시평 순위 1위인 삼성물산을 보자.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9조3100억원, 영업이익 1조34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대다수의 건설사가 주택 경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삼성물산은 영업이익으로 1조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카타르 태양광,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터널 사업 등 대형 프로젝트 매출이 본격화하면서 해외 수주 덕을 톡톡히 봤다. 삼성물산은 올해도 에너지솔루션 등 고수익 위주로 사업을 확대해 다양한 신사업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낼 예정이다.

업계 2위인 현대건설도 비슷했다. 매출원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영업이익을 늘렸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매출 29조6513억원, 영업이익 785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8조4123억원, 2015억원 늘어났다. 무엇보다 현대건설은 매출원가율 부담을 안고 있었다. 주요 대형 건설사 중 두 번째로 높다. GS건설이 지난해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에 따른 손실충당금 반영으로 매출원가율이 98.1%까지 치솟았고, 현대건설이 94.3%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사업을 강화하며 매출을 큰 폭으로 늘려 매출원가율 상승 부담을 상쇄했다. '판관비'(상품을 판매하거나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도 크게 줄였다. 건설 불황 속에서도 해외에서 대규모 수주를 따내는 등 사업 확대를 위한 속도를 내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시평 순위 3위 대우건설도 2023년 매출 11조6478억원, 영업이익 6625억원을 기록하는 등 악조건 속에서도 뛰어난 위기관리 역량을 보여줬다. 특히 영업이익률 5.7%를 기록하면서 우수한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이 밖에도 시평 순위 4위 현대엔지니어링은 해외 매출 급증으로 영업이익이 상승했다. 지난해 매출 13조633억원으로, 전년(8조8124억원) 대비 48.24%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매출 확대에 힙입어 119.10% 늘어난 2551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시평 순위 5위 GS건설의 매출액은 13조4366억원으로 전년(12조2991억원) 대비 9.2% 증가했지만,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를 짓다 붕괴 사고를 낸 후 전면 재시공을 결정하면서 387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3월24일 오후 재건축 사업을 진행 중인 서울 여의도 한양아파트에 현대건설의 사업 수주 현수막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PF 우발채무·공사비 부담은 여전

국내 10대 건설사의 실적 선방에도 공사비 급등과 미분양 적체 등의 여파가 장기화하면서 건설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건설업계 간 수주 경쟁은 실종됐다. 올 1분기만 봐도 그렇다. 국내 10대 건설사 중 7곳이 단 한 건도 수주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상위 10개 건설사의 정비사업 수주액은 총 3조9994억원이다. 전년 동기(4조5242억원) 대비 약 12% 감소했고, 2년 전(6조7786억원)과 비교하면 40%가량 줄었다.

올 1분기 정비사업 수주액이 가장 큰 건설사는 포스코이앤씨(부산 촉진2-1구역)다. 총 2조3321억원을 기록했다. 그다음으로는 현대건설(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1조4522억원, SK에코플랜트(미아11구역 재개발)가 2151억원으로 각각 뒤를 이었다. 삼성물산,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GS건설, DL이앤씨, 롯데건설, 호반 등 7곳은 수주 실적을 단 하나도 채우지 못했다. 

건설사들이 수주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뭘까. 주택시장 침체 영향이 컸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주택사업의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선별적으로 수주에 나선 것이다. 최상급지가 아니면 경쟁입찰을 통한 수주전을 보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사업비만 1조원에 달해 '재개발 최대어'로 꼽힌 동작구 노량진1구역도 포스코이앤씨만 단독 입찰했다. 또 있다. 강남구 개포주공5단지와 송파구 삼환가락도 대우건설과 DL이앤씨만 입찰에 참여했다.

10대 건설회사의 한 관계자는 "건설 경기 침체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사업성이 좋아도 (건설사들이) 무리하게 참여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회사마다 수주 전략이 다르겠지만, 최상급지가 아닌 이상 부동산 침체 등으로 인해 당분간 입찰을 보기 힘들 것 같다. 주택시장 침체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리한 수주가 나중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기조가 깔리면서 건설사들이 방어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4·10 총선 이후 상황에 업계 '촉각' 

부동산 PF 우발채무 폭탄도 잠재돼 있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총 23조원에 육박하는 '부동산 PF 우발채무가 불거졌다. 정부의 정책 지원이 4월10일 총선을 기점으로 약화하면 PF 부실 사태가 다시 일파만파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태영건설발(發)' 부동산 PF 부실 우려로 제기된 건설업계 '4월 위기설'을 일축하고 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4월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불거진 PF 위기 상황은 과장돼 있다. 정부 내에서도 PF 시장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항간에 떠도는 4월 위기설은 지나치다"면서 "PF 시장을 연착륙시킨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질서 있게 개선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건설업계 4월 위기설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음에도 건설사들의 재무구조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크다. 국내 부동산 PF 규모는 2020년 말 92조5000억원에서 2021년 112조9000억원, 2023년 9월말 134조3000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0.55% 수준이었던 부동산 PF 연체율은 2.42%까지 올라갔다. 때문에 시장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부동산 PF 우발채무로 인해 다른 건설사들도 줄줄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시평 순위 2위와 8위인 현대건설과 롯데건설이 대표적이다.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PF 규모가 커 안심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롯데건설은 2022년 말 '레고랜드' 사태로 한 차례 유동성 위기를 겪은 터여서 우려가 더하다. 실제로 시평 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은 부동산 PF에 따른 유동성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해 12월28일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개선 작업)을 신청했다.

업계에선 부동산 PF 부실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정책 지원이 어떤 규모로, 어디까지 진행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우선 태영건설 구조조정 절차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난제들을 이겨내고 안착할 수 있을지에 건설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다만 정부의 정책 지원이 4월10일 총선을 기점으로 약화하면 PF 부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정환 GB투자자문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증권가에선 정부가 4월 총선 전까지 (선거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려고) 금융권을 압박해 PF 부실 문제를 관리하며 버티다가 총선 이후 손을 놓고 시장의 흐름에 맡길 거란 추측이 힘을 얻었다"면서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PF발 신용경색, 건설사 줄도산 등 최악의 상황을 목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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