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도 한계”…서울 권역응급의료센터 7곳 중 6곳 ‘진료 제한’

2024. 4. 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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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보루’ 응급실마저 위기 봉착
대다수 권역응급의료센터 진료 제한
응급실 의사들 “매일이 위기, 겨우 버텨”
“사태 해결 안되면 사직 등 준비할 것”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응급의료센터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정부의 의대 증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8주차에 접어들면서 ‘최후의 보루’인 응급의료 현장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서울 시내 권역응급의료센터 대부분이 운영에 차질을 겪고 있으며, 응급의학과 의사들도 현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집단사직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드시 유지돼야 할 응급실까지 일부 질환 진료가 어려워지는 사태에 이르자, 환자들의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서울 권역응급의료센터 ‘비상’…7곳 중 6곳 ‘진료 제한’=9일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서울 시내 권역응급의료센터 7곳 중 6곳이 ‘진료 불가’ ‘환자 수용 불가’ 등 진료 제한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중증·응급환자의 진료를 담당하는 거점 병원으로, 상급종합병원 또는 300병상을 초과하는 종합병원 중에서 지정된다. 지난해 5월 기준 전국에 44곳이 있다.

서울에는 서북권에 서울대병원, 동북권에 고려대안암병원·서울의료원, 서남권에 고려대구로병원·이대목동병원, 동남권에 한양대병원·강동경희대병원 등 7곳이 있다. 이날 기준으로 서울의료원을 제외한 6곳의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일부 진료를 제한 중이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의 경우 안과와 이비인후과의 진료를 제한하고 있다. 오후 6시 이후부터는 안구 파열 환자 혹은 진단된 망막박리 환자를 제외하고는 안과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이비인후과도 오후 6시 이후부터 기존 수술 환자만 진료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고려대안암병원은 인력 부재로 안과 응급 수술이 불가능하다.

고려대구로병원은 이비인후과의 평일 야간·주말·공휴일 응급 진료 및 전원 수용은 불가하며, 안과의 응급 수술·진료 및 전원 수용도 어렵다고 알렸다.

이대목동병원은 성형외과 의료진 부족으로 매일 0시부터 오전 8시까지 단순봉합 등의 진료가 일부 제한되고 있다.

한양대병원은 응급실 인력 부재로 비응급·경증 환자는 물론 중증외상 환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소아과와 안과, 이비인후과 모두 의료진 인력 부재로 진료가 불가능하고, 정신과도 입원환자를 수용할 수 없는 상태다. 또 안면부의 단순 열상 환자의 경우 수용 가능하지만 봉합까지는 대기가 필요하며, 안면부를 제외한 단순 열상 환자는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안내했다.

강동경희대병원은 성형외과와 치과, 정신건강의학과 환자의 응급실 진료가 불가능하다.

전국 44곳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상황도 좋지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안과나 산부인과 등 진료 제한 메시지를 표출한 권역응급의료센터는 16곳에 달한다.

복지부는 응급실에 일부 진료가 제한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4일 기준 응급실 408곳 중 97%인 395곳은 병상 축소 없이 운영되는 중이다. 중증 응급환자는 지난주 평균 대비 0.7% 감소했다. 같은 날 기준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응급실 근무 의사 수는 488명으로 지난주와 유사한 수준이다.

서울 한 대형병원 응급실 앞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연합]

▶응급의학과 비대위 “한계 임박…해결 안 되면 사직 등 준비”=정부는 응급환자 이송과 전원에 차질이 없도록 면밀하게 모니터링한다는 방침이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응급의료체계가 ‘붕괴 직전’이라고 토로한다. 응급실 의사들은 의료공백 사태가 하루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사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소속 의료진들로 구성된 응급의학과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7일 성명서를 내고 “500여명의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응급실을 나갔으며, 대부분의 수련병원이 응급실을 축소 운영하고 있다”며 “심각한 위기 상황을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남아있는 의료진들의 피로와 탈진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고 교수들의 업무 단축은 앞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면서 “응급의학 전문의들에게 현 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응 방안을 묻는 설문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번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응급실 사직을 포함한 구체적 행동을 준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미 수련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의학과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채 진료를 이어가는 가운데, 2차병원 응급실 의사들도 사직에 가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환자단체는 교수들의 진료단축을 크게 우려하며 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와 의료계의 전향적인 자세를 요구한 바 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지난 5일 “의정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있음에 유감”이라고 밝혔으며, 김재학 연합회장은 병원장들에게 “각 병원 의사들을 붙잡아달라. 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합병증, 2차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고 호소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도 지난 7일 성명을 통해 “중증 환자 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지속되고 환자들은 ‘의료 난민’으로 전락했다”며 “세계보건기구(WHO)가 한국 의료대란과 관련해 국제기구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요청하겠다. 종교계에도 함께 해주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중증·응급환자의 진료 및 치료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응급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는 한편, 응급실 의사들의 사직이 현실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전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정부가 교수들을 비롯한, 의료계와의 대화 노력을 열심히 진행 중”이라며 “더 이상 환자 목숨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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