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는 정확히 알고 있다…6세기 중국 황제의 얼굴

곽노필 기자 2024. 4. 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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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남북조시대 북주 전성기 이끈 무제
선비족이지만 3분의1은 한족 혈통
갈색 눈 등 전형적 동북아인 외모
유전자 정보를 토대로 디지털로 복원한 중국 남북조시대 북주 무제의 얼굴(왼쪽)과 당나라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13황제 두루마리 그림 속의 무제(오른쪽). 푸단대 제공

고대 중국에서 후한이 멸망한 뒤 수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350년이 넘는 기간은 혼란과 전쟁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이 시기를 위진남북조시대(220~589년)라고 부른다.

중국의 혼란은 주변국들에겐 성장의 기회였다. 한반도에선 이 시기에 백제, 고구려, 신라가 고대국가 체계를 정비하고 국력을 크게 키울 수 있었다. 고구려가 수나라 문제와 양제 16년에 걸친 장기 전쟁(598~614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이 시기에 다져졌다.

위진남북조시대의 말기에 등장해 짧은 기간 동안 중국 북부를 지배했던 나라가 북주(557~581년)다. 선비족이 세운 북주는 제3대 황제인 무제 재위 기간(560~578년)에 가장 융성했다. 무제는 강력한 군대로 화북 지역을 통일하는 한편 사원전을 몰수하고 농민에게 토지를 나눠줘 농업생산력을 크게 높이는 등 북주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다 한족이 지배하는 남조의 진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36살의 나이로 병사했다. 일부에선 독살 가능성도 주장한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그가 닦아놓은 영토와 국가체계는 북주를 이어받은 수나라 문제 양견이 전국을 통일하는 기반이 됐다.

상하이 푸단대가 중심이 된 중국 과학자들이 1500년 전 광활한 화북지방을 지배했던 무제의 얼굴을 복원해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무제의 두개골 3D 모델(A)과 이를 토대로 재구성한 얼굴 모형(B), 그리고 DNA로 알아낸 피부색 등의 얼굴 정보. Current Biology

역사 기록물이나 벽화 없이도 알아내

복원 작업에는 발굴된 두개골과 유해에서 추출한 디엔에이(DNA) 정보를 이용했다. 복원된 무제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무제가 속한 선비족은 오늘날 몽골과 중국 북부 및 북동부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았던 유목민이다. 일부 중국 역사서엔 선비족이 두터운 턱수염과 높은 콧대, 노란색 머리카락 등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것으로 묘사돼 있다. 그러나 연구진은 “무제는 전형적인 동북아시아인의 얼굴 특징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무제의 무덤이 발견된 건 1996년이다. 고고학자들은 그의 무덤에서 거의 완전하게 보존된 두개골을 포함한 유골을 발굴했다.

고고학자들은 크게 발전한 디엔에이 해독 기술에 힘입어 지난 몇년에 걸쳐 100만개가 넘는 단일염기다형성(SNP)을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SNP는 DNA의 특정 위치에서 하나의 염기가 다른 것으로 바뀐 것을 말한다. 가장 흔한 유전적 변이의 형태로 질병과 관련한 유전자를 찾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한 사람의 게놈에 대략 400만~500만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석 결과 무제의 SNP엔 피부와 머리카락 색깔 등에 대한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피부의 두께, 눈썹 모양, 코 너비, 입술 높이 등 더욱 상세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연구진은 이 정보를 무제의 두개골 형태와 결합해 얼굴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그 결과 복원된 무제의 얼굴은 갈색 눈에 검은색 머리카락, 약간 거무튀튀한 피부를 가졌으며 얼굴 형태는 오늘날의 동북아시아인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웨이피안피안 푸단대 교수는 “과거엔 고대인의 모습을 알아보려면 역사 기록이나 벽화에 의존했으나 이제는 직접 알아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뇌졸중 앓았던 듯…유전자 3분의 1은 한족

연구진은 무제의 사망 원인에 대한 단서도 찾아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통풍이나 뇌졸중, 백혈병과 같은 병원성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이는 무제가 실어증이 있었으며 눈꺼풀은 처졌고, 걸음걸이는 절뚝거리는 듯했다는 역사적 기록을 뒷받침한다. 이런 특징은 뇌졸중 증상과 비슷한 것이어서 그가 병사했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실어준다.

연구진은 무제의 혈통에 대한 정보도 확인했다. 우선 무제는 유전적으로 고대의 거란족과 흑수말갈족, 오늘날의 중국 다우르족과 몽골족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무제의 유전자에는 선비족과 한족의 혈통이 섞여 있었다. 연구진이 재구성한 무제의 족보를 보면 그는 선비족 왕실과 현지 한족 귀족 간에 몇대에 걸친 통혼을 거쳐 탄생했다. 이는 선비족이 남쪽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유전자 중 61%는 고대 동북아인 계통, 3분의 1은 황하지역 한족 계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의 할머니 왕씨는 북부지역의 한족이나 고구려 출신으로 추정된다. 이는 고대인들이 유라시아 지역에서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또 현지인들과 어떻게 통합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라고 연구진은 의미를 부여했다.

연구진은 다음에는 고대 중국 북서부 장안(지금의 시안)에 살았던 이들의 디엔에이를 연구할 계획이다. 수천년 동안 명멸한 여러 나라의 수도였던 ‘천년의 고도’ 장안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5세기까지 유라시아 실크로드의 동쪽 종착지였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고대 중국인들의 이주와 문화 교류 역사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16/j.cub.2024.02.059

Ancient genome of the Chinese Emperor Wu of Northern Zhou.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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