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美-中 사이 낀 ‘새끼고래’?… 스스로 이룬 성과 즐겨야”
韓, 스페인과 민주화 역사 닮아
문맹퇴치 운동·산학협력 강화 등
교육 제도 혁신으로 급속 성장
현재 저출생은 불가피한 현상
해외이민자 정책 등 고려해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주요7개국(G7)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까지. 사회·정치·경제·문화·과학기술 모든 방면에서 한국의 성장과 발전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다. 그러나 70년의 역사는 해방과 전쟁, 군사독재와 민주화, 산업과 기술의 발전과 각종 불평등의 심화를 겪으며 치열하지 않은 때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며 벨기에 브뤼셀 자유대학교의 KF-VUB 한국 석좌를 맡고 있는 라몬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신간 ‘새우에서 고래로’(열린책들)에서 굴곡질지언정 변화를 멈추지 않는, 역동적인 한국의 역사를 종횡무진 누빈다. 1948년부터 2023년까지 연대기 순으로 한국 역사의 주요 변곡점을 짚은 이 책은 영국 현지에서 2022년 출간된 후 수정을 거쳐 최신판으로 번역돼 최근 국내 출간됐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자란 파르도 교수는 문화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학생 시절 제한적으로 아시아의 역사를 배우면서도 한국과 스페인이 많이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회상했다. 이후 한국외대 교환학생을 거치며 커진 한국에 대한 애정은 20년간의 준비를 거쳐 책의 집필로 이어졌다. “두 나라는 모두 20세기 중반 끔찍한 내전과 독재를 겪었고 가난했으며 이후 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한국과 스페인의 공통점들은 무척이나 흥미로웠죠”. 또한 저자는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1992년에 바르셀로나올림픽이 열렸다는 사실도 짚으며 친밀감을 표했다.
파르도 교수는 책을 통해 한국의 급속 발전의 저력으로 “교육”을 꼽았다. 그는 이승만 정부의 문맹률 퇴치 운동, 박정희 정부의 중·고등교육 확대, 박근혜 정부의 산학협력 강화 등 교육 제도 혁신의 면면을 산업의 발전상과 교차시키며 꼼꼼히 짚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한국이 가진 가장 주요한 자원은 국민이며, 특히 기초 지식을 중시할 뿐 아니라 실제 산업에 적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 창의적 혁신을 만들어냈다”고 답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과도한 경쟁과 능력주의에 관해서도 “한국 사회가 높은 숙련도를 엄격히 요구하면서 학생들이 성취도에 몰두하게 만들지만, 이는 고도로 발전한 사회가 가지는 필연적 숙명”이라면서 그 자체를 발전의 동력으로 분석했다.
저자를 비롯해 해외의 석학들이 놀란 괄목할 만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새끼 고래’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파르도 교수는 이에 대해 “1997년 금융위기와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며 자국의 미래가 다른 나라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된 거의 모든 나라의 공통된 현상”이라고 답했다. 오히려 “북한과 비교하면 한국이 얼마나 오랫동안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강대국 사이에서 우수한 외교 전략을 수행했는지 알 수 있다”며 제3자로서의 객관적 의견을 전했다. 한편 경제 성장의 둔화와 저출생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가진 청년들에게 “이전보다 더 적게 일하고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세대, 출산과 육아가 아닌 다른 선택지를 고민할 수 있는 여성들로서 마주한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한 “서구의 많은 국가에서 절반 이상의 아이는 결혼 외의 관계나 해외 이민자에게서 태어난다”며 “한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지를 고민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그의 책에는 한국의 발전을 다룬 해외 저자의 책들과 다른 점도 있다. 이효재를 필두로 한국의 여성 인권운동과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궤적을 사회 발전의 주요 축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파르도 교수는 “한국의 절반이 목소리를 가지는 과정은 사회 발전과 긴밀히 연결돼 있고, 역사를 다룬 많은 책이 간과하는 소수자 운동은 놓칠 수 없는 한국의 변동성”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파르도 교수는 여전히 외부의 평가에 민감한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은 모르는 체 믿고, 오해하기도 한다”면서 “한국인들은 스스로 틀렸고 그렇기에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멈춰 서서 이뤄놓은 성과를 충분히 즐기며 오해에 맞서는 고집을 부려도 좋다”고 덧붙였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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