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제보명산 태화산] 용인 최고봉과 광주 최고봉이 맞붙었다

서현우 2024. 4. 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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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자연휴양림~마구산~태화산~태화산 입구 9.6km
용인자연휴양림 뒤에 자리한 활공장에서 용인 방면으로 바람을 타고 뛰어본다.

지도를 보니 최고봉간의 맞대결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가장 높은 마구산(595m)과 경기도 광주에서 가장 높은 태화산(644m)이 딱 붙어 있다. 파퀴아오와 메이웨더의 맞대결이 세계의 관심을 받았던 것처럼 이들의 맞대결도 손에 땀을 쥐게 하지 않을까? 같이 엮어 걸으면 분명 그런 팽팽한 긴장감 가득한 산행이 될 것이란 기대가 샘솟았다.

하지만 직접 걸어보니 그러한 긴장감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언론에서 만든 라이벌 구도에 내몰린 두 명의 스포츠 톱스타가 사실은 절친 관계인 것 같았다. 연결되는 능선은 대체로 부드럽고 유순하며 거친 암릉지대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겨우내 얼었다가 녹아내린 흙은 뽀송뽀송해서 두꺼운 등산화 밑창을 뚫고 발바닥을 간질인다.

이 산길은 본래 미마종주 혹은 태백종주로 유명한 곳이다. 태백종주는 태화산에서 백마산까지 걷는 약 19km의 길이다. 미마종주는 이 태백종주에 앞뒤로 미역산과 마름산을 하나씩 더 보탠 것이다. 거리는 20km 정도다. 산꾼들은 애정을 담아 이들을 한데 묶어 경기도의 알프스, 작은 지리산 종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용인자연휴양림 내부에는 걷기 좋은 오솔길이 조성돼 있다.

미마종주의 허리를 끊어 걷다

취재진은 이를 전부 걷기에는 부담이 돼 반으로 나눠 걷기로 했다. 용인자연휴양림에서 주능선으로 오른 뒤 남진하며 마구산과 태화산, 미역산을 거쳐 은곡사 방면으로 하산하는 약 9.6km 코스다. 태화산과 미역산 일대에는 철쭉군락지가 폭넓게 조성돼 있어 봄철 산행지로 적격이다.

"아담한 산이지만 전망이 무척 좋아요. 또 수도권에 있어서 부담 없이 갈 수 있고요. 꼭 한 번 소개해 주시면 좋겠어요."

월간<山> 독자 김영수씨는 태화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태화산은 경강선 곤지암역 방면에서 접근하기 편해 수도권에서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산이다.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약 2km로 아담하다. 물론 이건 태화산만 걸을 때의 이야기다. 조금 더 긴 산행을 위해 용인에서 가장 높은 마구산을 오른 후 태화산으로 향하기로 했다. 말하자면 "미마종주의 허리를 끊어서 가는 것"이다.

"마치 여우 같네요."

최근 흥행하는 영화 <파묘>를 인용해 산행 코스에 대한 개요를 전하자 동행한 아웃도어 인플루언서 윤용만, 박설아씨가 받아친다. 최근 유튜브를 시작했다는 박설아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라갈 산의 이모저모를 톺아본다.

용인자연휴양림에서 정광산으로 오르는 잘 포장된 임도에 쉬어가기 좋은 정자가 있다.

들머리인 용인자연휴양림은 한창 공사 중이다. 4월 3일까지 시설 곳곳의 나무데크를 새로 교체하는 공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산길은 휴양림 맨 왼쪽을 따라 쭉 올라가면 나온다. 동심을 자극하는 트리하우스에 눈길을 한 번 줬다가 '정광산 정상 1.8km' 이정표를 따른다. 13인실 숙소인 밤티골을 지나 휴양림 건물이 끝나는 곳부터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무슨 은행 금고 들어가는 기분이네요."

다리를 건너 임도로 향하려는데 그 다리가 차량 통행을 막기 위해 온갖 것들로 막혀 있다. 차단기가 내려져 있고 쇠사슬이 둘러쳐져 있으며 자물쇠도 달려 있지만 사람이 지나기에 무리는 없다.

500m쯤 올라가면 왼쪽으로 편백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임도가 오른쪽으로 꺾인다. 정광산 정상 이정표도 이 임도를 향하지만 무시하고 그대로 직진하면 된다. 임도에 이어 야자매트가 푹신하게 깔리고 나무계단이 설치돼 있어 길을 걷는 데 불편함이 전혀 없다.

전체적으로 육산의 형세지만 간혹 바위를 넘나들기 때문에 등산화가 필수다.

"여기 낙엽은 왜 이렇게 까매요?"

그 말에 돌아보니 땅이 불에 탄 흔적이 역력하다. 그저 비옥한 검은색 흙인 줄 알았는데 산불이 훑고 지나간 듯하다. 나무도 성한 것이 몇 그루 없다. 돌탑 3기를 지나 만난 거대한 한 노송은 Y자로 뻗었는데 한쪽은 부러져 죽었고 다른 한쪽만 간신히 살아 있다. 처참하지만 그래도 곳곳에 어린 소나무들이 새로 볕을 받으며 한껏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르게 자라나고 있다. 그 위로 새들이 수없이 지저귄다. 이들이 새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

휴양봉 능선의 신갈나무 숲길이 고즈넉하다.

걷기 편한 기분 좋은 육산

이정표는 계속 정광산 정상을 가리킨다. 이를 따라 숨을 헐떡이며 능선에 이르면 도처에 쓰러져 죽은 나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겨우내 쌓인 눈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넘어져버린 것 같다. 벌덕산과 정광산 모두 0.4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마주하는데 여기서 그간 길을 인도해 준 정광산을 배신해야 한다. 등을 돌려 벌덕산 방향으로 간다. 기분 좋은 육산의 부드러운 능선길이다.

이번 코스의 첫 봉우리인 벌덕산은 말 그대로 헐레벌떡 오르게 만들 정도로 막판에 경사가 급하다. 정상에 정상석은 없고 나무표지판에 해발고도만 475m라 적혀 있다. 확 좁아졌다가 축구를 해도 좋을 만큼 확 넓어지는 능선에는 양 옆으로 신갈나무가 도열해 있다. 점차 용인 방면 시야가 훤해지자 흙길은 야자매트로 바뀐다. 이걸 능선까지 가져와 깔아둔 집요함이 새삼 대단하다.

미마종주 능선은 대부분 데크, 나무계단, 야자매트로 정돈돼 있어 자연바위를 걸어 지날 때 무척 반갑다.

벌덕산에서 휴양봉(520m)은 멀지 않다. 용인휴양림을 만들 때 이곳에 전망대를 만들고 정상석을 세우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워낙 정상부가 평평한 탓에 봉우리답게 곧추선 맛은 없다. 도리어 휴양봉을 지나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나무데크들의 전망이 더 낫다. 대부분 주변 나무보다 높게 시공돼 있어 용인 전망이 시원하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은 평일 비수기라서 고즈넉하다. 안전한 비행을 위해 주변 나무를 다 깎아낸 탓에 전망이 시원하다. 에버랜드는 앞 산등성이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일행을 간만에 온 패러글라이더로 착각한 듯 바람이 세차게 몰아쳐온다. 여기서부터 남동쪽으로 앞으로 올라야 하는 마구산과 태화산, 미역산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태화산에는 액자 모양의 건축물이 있어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마락산 오르막은 짧다. 잠시 숨을 몰아쉬면 금세 정상이다. 정상석 대신 무인산불감시초소가 높게 들어서 있다.

용인 제1봉 가는 길은 계단 지옥

이제 드디어 용인 제1봉 마구산을 만날 시간이다. 마락산에서 바라보니 그 기운이 범상치 않다. 떡 벌어진 어깨에 오르막이 바짝 서 있다. 지렁이를 찾는 멧돼지마냥 얼굴을 바닥에 처박을 기세로 걸어 오른다. 허벅지 근육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당겨 온다. 계단이 도무지 끝날 기미 없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헨젤과 그레텔이 지나간 듯 계단에는 도토리들이 연달아 이어져 떨어져 있다.

층층나무, 서어나무 등이 자라고 있는 서울대학교 학술림을 배경으로 잠시 쓰러진 나무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게 정상까지 쭉 계단으로 이어진다. 돌아보면 활공장이 마치 신라시대 고분처럼 둥그렇게 솟아 있다. 정상에는 마구산의 유래가 적혀 있다. 산 아래에서 보면 정상 바위가 말이 입을 벌린 모습이라 말아가리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그대로 옮겨 '마구馬口'라고 한다. 용인 제1봉의 위상에 맞게 용인 방면으로 데크를 지어놔 조망이 장쾌하다. 남쪽 추곡리 방면에 키 큰 수려한 소나무와 늘씬하게 빠진 산등성이도 매혹적이다.

한동안 다리를 주무르고 이제 광주 제1봉인 태화산 차례다. 안부로 내려서는 길은 정신을 쏙 빼놓는다.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걷게 된다. 적당한 내리막에 푹신한 길, 발에 걸리는 장애물도 없어 자연스럽게 마음과 생각을 비우게 된다. 마치 산행이 아니라 걷기 여행을 하는 것 같은 포근함이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 이번에는 혼을 쏙 빼놓는다. 마구산을 오를 때와 똑같은 경사인데 계단은 한결 적다. 어쩌다 계단이 나오면 한 단의 높이가 너무 높아 한 발 올리기 버거울 정도라 전혀 반갑지 않다.

태화산 정상.

태화산 정상에 이르자마자 멀리서 봤던 액자 프레임 형태 건축물의 정체부터 찾아 나섰다. 멋진 포토스팟을 기대했으나 싱겁게도 버려진 통신기지국 시설이었다. 네모난 형태를 이룬 건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기 때문이었다. 정상 조망은 그리 좋지 않은 편으로 멀리 이천 방향의 산그리메만 어림할 수 있을 정도다.

태화산에서 광주 방면으로 내려서는 길은 크게 두 가닥이다. 미역산 방면으로 가는 길과 남동쪽 골짜기를 따르는 것이다. 둘 다 가치가 있다. 미역산으로 가면 더 좋은 조망과 철쭉을 즐길 수 있고, 남동쪽으로 가면 유서 깊은 사찰 백련암을 둘러볼 수 있다. 백련암은 고려 충숙왕 12년에 일연선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연중 고즈넉해 일상의 시름을 잊기 적격이다.

박설아씨가 부러진 미역산 정상 팻말을 안아들고 있다.

애처롭게 부러진 미역산 정상 팻말

이왕 온 김에 봉우리를 하나라도 더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산꾼들의 인지상정이다. 미역산으로 가는 능선 역시 편안하다. 미역산이 가까워지자 발아래 도척저수지가 찰랑거리며 반겨온다. 미역산 유래는 동네 주민들이 이곳 골짜기에서 자주 '멱'을 감았다는 것과 천지개벽 때 바닷물이 차서 이 산에서 미역을 땄다는 설 두 가지가 전해진다.

"이것보세요. 미역산 정상 팻말이 부러져 있어요."

미역산 정상에 먼저 도착한 박설아씨가 마치 갓난아이처럼 미역산 정상 팻말을 안아들고 있다. 본래 삼각점 안내판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정상 팻말이 이번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즉각 보수가 어려워 그대로 기대어 세워놓곤 하산을 서두른다.

미역산 하산길 도척저수지를 배경으로 한 포토스팟.

미역산에서 내려서는 길은 제법 가팔라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내려가는 길에 처음 나오는 데크가 있는데 거기서 조금 더 내려서면 저수지를 배경으로 돌출된 바위와 소나무가 액자처럼 들어선 곳이 포토스팟이니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자. 미역산 남쪽 사면을 들여다보니 잣나무 숲이 광활하다.

수목장을 지낸 솔숲이 다가들면 산행이 거의 끝났다. 은곡사로 들어서기 위해 작은 개울을 넘는데 서쪽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이 잘게 부서지며 숲 안을 환하게 밝혀 온다.

산행길잡이

태화산만 산행한다면 태화산등산로주차장에 차를 대고 은곡사를 거쳐 미역산으로 올라 태화산을 찍고 동봉으로 진행해 원점회귀하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며 합리적이다. 약 4.5km 내외 정도로 반나절 산행에 적합하다.

취재진은 미마종주를 반으로 쪼개어 남진하는 방식을 택했다. 미마종주는 경기도 광주 방면 태화산 입구 기점에서 출발해 미역산을 거쳐 능선을 따라 북쪽 마름산까지 약 22km의 길을 의미한다.

용인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해 미역산까지 줄곧 능선만 따르면 되며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상세하게 잘 돼 있어 길을 헷갈릴 염려는 없다.

교통

서울권에서 용인휴양림으로 접근하려면 먼저 에버랜드로 간다. 지하철 에버라인을 이용하거나 용인광역콜버스, 5002B 버스 등의 수단이 있다. 이후 1500-2번 버스로 초부리 정류장에서 하차하고 용인자연휴양림까지 2.5km를 걸어가면 된다. 혹은 에버랜드에서 택시를 타도 된다. 택시요금은 1만 원쯤 나온다.

산행을 마친 후에는 날머리 인근 정류장에서 곤지암 방면으로 가는 95-1, 37-31, 37-32번 버스를 시간에 맞춰 타면 된다. 이들을 놓쳤다면 도척 방면으로 30분 정도 걸어 나가 37-2번 버스 등을 타고 곤지암역으로 이동, 경강선을 타면 된다.

자차 회수를 위해 용인자연휴양림으로 돌아가는 게 꽤 곤란하다. 택시가 거의 잡히지 않는다. 이럴 경우 날머리 인근 식당에 문의하면 대안적 교통수단을 제시해 주므로 참고하자.

맛집

취재진은 날머리 태화산가든(0507-1351-5181)에서 불고기전골(1인분 1만7,000원)로 식사를 했다. 푸짐한 인심으로 양도 넉넉하고 추가 반찬도 한가득 내어준다.

생삼겹살(1인분 1만7,000원)과 태화산샤브샤브(1인분 1만7,000원), 능이한방닭백숙(7만5,000원) 등이 주 메뉴.

인근에 생선구이 맛집 목부방(031-762-1574)이 있다. 이곳은 브레이크 타임(14:30~17:30)이 있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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