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학 전부터 교육격차 심각… ‘만5세 의무교육’ 대안 부상 [심층기획-무너진 유아공교육]
사회 전반 공교육 불신 풍조 깔려있어
당국, 한때 ‘만5세 입학’ 추진했다 뭇매
교육계 ‘유아교육 의무화’ 긍정적 입장
“공교육 출발점 앞당겨 교육의 질 강화”
유보통합 계기로 공론화 목소리 높아
서울에서 2019년생 아이를 키우는 A씨는 요새 아이의 유치원을 옮길지 고민 중이다. 주변 유치원보다 방과후 수업 등이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른바 ‘영어 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불쑥 불안감도 밀려온다.
유아 공교육 강화를 위한 주요 방안으로는 ‘유아교육 의무화’가 꼽힌다. 최근 정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유보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교육계에선 이번 기회에 ‘만 5세 교육 의무화’를 논의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만 5세 ‘보편교육→의무교육’ 돼야
8일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취학 전인 만 3∼5세(한국나이 5∼7세) 중 93%가량이 유치원 또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정부가 2012년부터 공통 교육과정(누리과정)을 도입하고 교육비 지원을 하면서 재원율이 크게 올라갔다.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보편교육’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교육계에선 유아교육이 보편교육에서 의무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한국과 달리 많은 해외 주요국은 초등학교 입학 전 1∼2년을 의무교육으로 하고 있다. 취지는 ‘교육 격차 해소’다. 취학 전 단계에서 교육에 편차가 생기면 입학 후에도 교육 격차가 점점 벌어질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1년 “교육 효과를 증대하기 위해 의무교육 연령을 낮춰 유아기 교육을 의무교육제도로 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정치권·교육계에서 오래전부터 유아 교육 의무화가 공교육 강화 방안으로 제시됐다. 다만 최근에는 관련 논의가 주춤한 상태다. 2022년 교육부가 ‘만 5세 입학’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러서다. 당시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현재의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발표 10일 만에 사퇴했다. 이후 교육부에서 ‘만 5세’는 일종의 금기어가 됐다.
유아교육계에선 만 5세 입학을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하지만, 정책이 나왔던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의견이 많다. 교육부가 만 5세 입학을 추진한 이유는 ‘출발 선상의 교육 격차를 해소해 국가책임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어린이집과 유치원, 국공립과 사립 등 기관별로 편차가 커 유아교육이 미취학 단계에서부터 교육 격차가 벌어진다는 지적이 많은데, 조기에 양질의 공교육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한 학부모는 “요즘 ‘초등학교 입학 전 갈 대학이 결정된다’는 말도 나온다”며 “초등학교 진입 전부터 교육 격차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긍정적이다. 교육부가 전국 학부모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2년 유아교육 실태조사’에서 만 5세 의무교육에 대한 찬성도는 4점 만점에 3.32점으로 나왔다.
◆유보통합 계기로 논의 시작돼야
만 5세 교육 의무화 논의는 특히 지금이 적기란 의견이 많다. 과거 유아교육 의무화 이야기가 수차례 나왔으나 좌초된 것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이원화된 유아교육체계와 교원 양성 체계가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두 기관을 통합하는 유보통합을 진행 중이다. 교육부는 올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어린이집 업무를 넘겨받고, 내년부터 두 기관 통합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유보통합을 계기로 어린이집·유치원 교원 양성 체계도 통합 정비한다. 만 5세 기관이 일원화되는 것이어서 의무교육으로 가기에 훨씬 수월해진 상황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최근 출생아가 줄어 과거보다 예산 부담도 덜하다. 교육의 질을 논의할 수 있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의무교육의 의미는 전국 유아교육기관의 질을 균등화한다는 것이다. 교육 질을 균질하게 동반상승시키는 것”이라며 “지금은 지역, 소득수준에 따라 받는 유아교육 질 편차가 크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유아교육 의무화는 결국 가야 할 길”이라며 “유보통합을 계기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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