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기술특례] “코로나, 전쟁, 인건비, 금리 때문에…” 실적 약속 못지킨 기업들의 핑계

권오은 기자 2024. 4.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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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성과 기술력이 있지만 지금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는 혁신 기업을 발굴하고자 2005년 도입한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도입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기술 특례로 상장한 기업 중 성공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96%의 기업이 상장 당시 제시한 실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4곳 중 3곳은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기술특례기업의 81%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퇴출을 유예해 줘 ‘좀비기업’만 양산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기술특례상장 제도의 문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비주얼 콘텐츠 솔루션 전문기업 자이언트스텝은 2021년 3월 기술특례상장 방식으로 코스닥시장에 입성했다. 자이언트스텝은 공모가를 비교기업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시가총액 ÷ 순이익)과 2023년 추정 순이익을 토대로 정했다. 당시 자이언트스텝은 광고·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매출과 수익 규모 모두 꾸준히 성장해 2023년 10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낼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자이언트스텝은 지난해 25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며 2년 연속 적자에 머물렀다.

자이언트스텝만의 일이 아니다. 기술특례상장 기업 대부분이 공모가를 책정할 때 근거로 활용한 미래 추정 실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상장 당시 몸값이 부풀려졌다는 의미다. 사업 환경의 변수가 많아 정확한 실적을 예상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과도한 낙관에 기댄 기업가치 산정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9일 조선비즈가 사업보고서와 증권신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2020년부터 2023년 추정 당기순이익을 토대로 기업가치를 산정한 기술특례상장사 76곳 가운데 73곳(96.1%)이 실제 실적이 추정치를 밑돌았다. 제노코, 피엔에이치테크, 수젠텍만 추정치에 부합했다.

분자 진단기기 개발사 미코바이오메드가 상장 당시 추정치와 실제 실적 간 격차가 가장 컸다. 미코바이오메드는 2020년 10월 상장 당시 2022년 추정 당기순이익을 약 123억원으로 잡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389억원 당기순손실이 났다. 지난해에도 적자가 이어졌다.

이어 이오플로우, 유바이오로직스, 와이더플래닛, 네오이뮨텍 순으로 기업가치를 책정할 때 활용한 추정 당기순이익과 실제 실적간 괴리가 컸다. 모두 제약·바이오기업이다. 바이오기업이 기술특례상장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지만, 기대와 달리 임상과 기술이전 일정이 밀리는 일이 잦은 영향으로 보인다.

상당수 기술특례상장 기업들은 돌발 변수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사업보고서에 당기순이익 미달성 사유 중 하나로 코로나19 사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꼽은 경우가 많았다. 금리 인상, 연구 인력 인건비 증가 등을 지목한 곳도 있었다.

그래픽=손민균

대다수 기술특례상장 기업이 미래 실적을 달성하지 못한 만큼 기업 가치 평가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장 주관사는 계약 성사 가능성 등을 고려해 추정 당기순이익에 할인율을 적용하고, 상장 시점과 미래 실적 간 시차를 고려해 연 할인율도 매긴다. 하지만 모두 기업이 제공하는 자료에 기댄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상장을 앞둔 기업은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아야 공모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도 늘어나는 만큼 사업 전망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설명하는 게 당연하다”며 “주관 업무를 맡은 증권사도 공모 규모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만큼 객관적이라고만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기업의 청사진을 믿고 투자한 주주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이다. 기업가치를 실적이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주가도 내림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76개 분석 기업의 80% 이상은 전날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았다. 항암 면역치료 백신 등을 개발하는 셀리드는 2019년 2월 상장 첫날 시가총액이 4820억원이었지만, 현재 570억원으로 줄었다.

바이오기업 올리패스는 역시 2019년 9월 상장 때 3440억원이었던 시가총액이 17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올리패스는 지난달부터 관리 종목으로 지정됐다. 자본잠식률이 50%를 넘었고, 자기자본 50% 이상의 법인세 차감 전 계속 사업손실(손실비율)이 최근 3년간 2회 이상 발생해서다.

기술특례상장사는 코스닥시장 상장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매출에 관해서는 5년간, 손실 비율에 대해서는 3년간 관리종목 지정을 면제받는다. 올리패스는 2021년 말로 관리종목 지정 유예 대상에서 제외됐다.

분석대상 기업 중 올리패스 외에도 매출 기준이나 손실 비율 기준상 관리종목 대상이지만, 유예받고 있는 기업이 20곳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도 실적이 나아지지 않으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면 한국거래소 판단에 따라 일정 기간 매매거래가 정지될 수 있다. 미수·신용거래도 금지된다. 주주의 부담이 더 커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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