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6반 남윤철 교사 부모 남수현씨, 송경옥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94]

신선영 기자 2024. 4. 9.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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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남윤철 교사(당시 35세)의 아버지 남수현씨(72)와 어머니 송경옥씨(71)의 일상은 단출하다.

2007년 치과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직장암 판정을 받자, 아들은 학자의 길을 접고 임용고시를 선택했다.

이후 아버지는 대학교수로, 아들은 중등교사로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아주 자상한 할아버지 웃음을 보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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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은 세월호 참사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시사IN〉이 그날까지 ‘세월호 사람들’ 100명을 만납니다.
고 남윤철 교사의 아버지 남수현씨와 송경옥씨(왼쪽부터). ⓒ시사IN 신선영

고 남윤철 교사(당시 35세)의 아버지 남수현씨(72)와 어머니 송경옥씨(71)의 일상은 단출하다. 매일 산책을 하고, 성당을 다녀오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 파킨슨병 투병 중인 남편을 위해 아내 송씨는 집 안을 더 밝게 꾸몄다. 2007년 치과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직장암 판정을 받자, 아들은 학자의 길을 접고 임용고시를 선택했다. 이후 아버지는 대학교수로, 아들은 중등교사로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제자에게 차별 없는 ‘맞춤형 선생님’으로 불리던 자상한 아들은 떠났지만, 그를 기억하는 제자들은 여전히 부부를 찾아온다.

“아들은 참사 다음 날 발견됐어요. 그 많은 사람이 여전히 바닷속에 있는데 우리만 먼저 찾은 게 미안했죠. 마지막까지 제자를 구한 아들이 교사로서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부부는 당시 생존 학생들이 보고 싶었어요. 아들의 마지막 손길이 닿은 제자들이니까요. 아이들이 연수원에 있을 때 잠깐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아이들에게 ‘살아오는 것이 당연하다. 너희는 잘못이 없다. 선생님이 너희 때문에 갔다고 생각하지 마라’고 말해주었어요.

죽음은 남의 일처럼 생각했는데, 언제든지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상실에 대해선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워요. 유일하게 나보다 더 아이를 사랑한 사람은 아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의 뜻대로 국립현충원이 아닌 충북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하게 되었어요. 그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요.

우리 부부는 요즘 하루가 갈수록 좋아요. 왜냐하면 이승에서의 삶을 지워가면 저승의 삶이 가까워지니까요. 아들을 만날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의미죠. 10년이라는 시간이 실감 나요. 당시에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는다고 생각했어요. 아들과 멀어진 것 같았는데, 지금은 마음속에 있으니까 더 가까이 있는 듯해요. 판단이 잘 안 될 때 속으로 ‘아들아, 이거 해야 하니?’ 물으면서 대화를 해요. 아들을 마음속에 딱 잡아놓고 있으니까 걱정이 없어요.” (남수현씨)

“제자들이 스승의 날이나 기일에 꼭 찾아와요. 생전에 학생들이 남윤철 팬클럽을 만들었대요. 팬클럽 회장이던 한 제자는 제가 공연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자기가 연출한 작품에 저희 부부를 초대해주기도 했어요. ‘선생님이 못한 거 저희가 다 해드리겠다’고 말하던 제자들을 보면서 ‘우리 아들이지만, 너 참 잘 살았다. 교사로서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어요.

국민대학교에 ‘남윤철 강의실’이 있어요. 큰일을 겪은 입장에서는 잊히는 게 슬프죠. 감사하게도 참사 1주기 때 학교가 먼저 나서서 강의실을 조성해주었어요. 매년 ‘남윤철 장학금’도 지급되고 있고요.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저희 부부에게 손 편지를 써서 보내주기도 해요. 또 윤철이는 다른 대학에서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따려고 했어요. 안산에는 다문화가정이 많은 편인데 학부모와 소통하기 위해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려고 했거든요. 그 대학에도 동문 기금으로 만들어진 장학금이 있어요. 저희에게는 아들의 이름이 한 번 더 불리는 것이 정말 뜻 깊어요.

2014년 8월14일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공항에서 마중하는 대열에 있었어요. 제 앞에 오시더니 손을 잡아주셨어요. 옆에 통역하신 분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를 알고 있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기도를 많이 했다’고 말씀하셨대요. 아주 자상한 할아버지 웃음을 보이셨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어요. 교황님의 목소리로 위로받고 싶다던 제 바람이 이뤄진 거죠.

얼마 전부터 아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집에 올 때 ‘다녀왔습니다’ 하고 말하는 억양이 있거든요. 그 목소리를 안 잊어버리려고 되뇌어봐도 잘 안 돼요. 10년이 지난 지금, 어떤 거창한 말보다 이 나라의 모든 부모가 저희처럼 아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울지 않으면 좋겠어요. 부모와 자식 간에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라요.

아들과 저는 애착 관계가 특별했기에 주변 사람들이 제가 어떻게 살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 상실감을 누구보다 공감해주는 남편이 곁에 있어서, 그리고 주변 분들의 위로와 신앙이 있어서 다시 설 수 있었어요. 천국에 있는 아들을 만날 때까지 우리도 건강하게 지내다 갔으면 좋겠어요. 아들과의 추억을 꺼내놓고 사람들과 나눌 때 그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느껴요. 정말 좋은 기억과 추억들은 나중에 힘이 돼요. 젊고 행복할 때 그런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놓으세요.” (송경옥씨)

남윤철 교사가 전공 수업을 듣던 국민대 북악관 7층에 그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남윤철 강의실’. ⓒ시사IN 신선영

 

신선영 기자 ss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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