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과는 기후변화 대응 시급하다는 경고… AI 농업에서 해법 찾아야”

방현철 기자 2024. 4. 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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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철의 경제로 세상 읽기]
민승규 세종대 석좌교수가 진단하는 ‘金사과 현상’

작년 작황 부진으로 사과 생산이 30%나 줄어 불거진 과일 가격 급등세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애플플레이션(애플+인플레이션)’이란 신조어도 나왔다. 그런데 단순히 한 해 운 나쁘게 날씨가 나빴던 게 아니라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이란 분석이다. 가격을 누르려는 대증 요법보다는 장기적인 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난달 29일 만난 민승규 세종대 석좌교수는 “기후변화 시대에 한국 농업은 R&D(연구·개발)와 AI(인공지능)에서 해법과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민 교수는 2000년대 초부터 IT(정보기술)와 농업을 융합하는 벤처 농업을 외치며 현장 농부들과 어울려왔고, 민간 연구자 출신이지만 농식품부 차관, 농촌진흥청장 등을 지냈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난 민승규 세종대 석좌교수가 기후변화 속 한국 농업의 대응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배경은 과일 사진이다. /이태경기자

◇ 금사과, 반복될 가능성 높은 이유

−사과 재배 현장에선 어떤 말이 나오나.

“농부들과 얘기를 많이 해봤다. 경남 거창의 ‘땅강아지 사과밭’ 김정오 대표는 사과 농사만 30년 넘었다. 그분이 ‘30년 사과 농사를 지었는데, 작년 같은 피해는 처음’이라고 했다. 작년 4월 사과 꽃이 피고 나서 꽃 아래 나오던 작은 열매가 늦서리의 영향으로 갈라져 버렸는데, 그런 건 처음 봤다고 했다. 게다가 탄저병이 겹쳤다고 했다.”

−피해 줄일 방법은 없었나.

“경북에서 사과 농사를 짓다 강원 양구로 옮긴 농부들도 만나봤다. 그분들은 ‘북쪽으로 올라가니 병충해가 적고 일교차가 커져 품질도 좋아졌다’고 했다. 기후변화에 재배 신기술로 대응하기도 한다. 국내 최초로 사과 나무를 다축형이라 해서 여러 줄기(기둥)를 일렬로 수직으로 자라게 키우는 경북 포항 태산농원의 서상욱 대표가 있다. 그는 기존처럼 한 줄기에서 가지가 풍성하게 원추형으로 키우는 것보다 농약을 치는 등 관리가 쉬워 탄저병 등 피해가 적었다고 했다. 발 빠른 농부들은 기후변화 정보를 빨리 파악하고 행동하고 있다.”

다축형 사과재배의 사례. /민승규 교수 제공

−과거 농산물 값 폭등은 거미집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았나.

“거미집 이론은 농산물을 키우는 데 시간이 걸려 수요 변화에 바로 대응하지 못하고, 가격이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면서 마치 거미집 같은 나선 형태로 균형 가격에 수렴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젠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외생 변수가 생겼다. 아예 생산 함수 자체가 변해버린 것이다. 수요가 있어도 기후변화로 공급이 못 따라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계속되는데, 왜 갑자기 사과가 문제인가.

“2020년 토마토, 2021년 대파, 양상추 등 기후변화 영향으로 가격이 급등한 사례를 들자면 한둘이 아니다. 작년에 사과는 저온 피해, 탄저병, 우박이 겹쳤다. 금사과 현상은 우리가 기후변화에 빨리 대응해야 한다는 위기의 시그널,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 기후변화에 취약한 한국

−한국이 기후변화에 유독 취약한가?

“한반도 기온 상승 속도가 지구 평균보다 빠르다. 전문가들은 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 기온이 0.74도 올랐고, 2100년쯤이면 지금보다 4.7도 상승할 것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간 평균 기온이 약 1.7도 올랐고, 21세기 말엔 5.7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농민이 빠르게 고령화돼 대처가 느린 것도 문제다.”

−해외 의존도 높지 않나.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45%, 곡물 자급률은 20%쯤이다. 더구나 우리나라가 곡물을 수입하는 나라는 미국, 호주 등 몇몇 국가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해외에서 벌어지는 이상 기후 현상에도 취약하다.”

−기후변화가 한국에서 식량 위기까지 불러올 수 있을까.

“인구 증가, 소득 증가, 기후변화 등으로 식량 부족이 생기고 가격 폭등으로 식량 위기가 올 것이란 비관론이 있다. 반면 식량 위기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농업 투자와 신품종, 신기술 접목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낙관론도 있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를 보면 식량 문제가 일부 빈곤 국가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규모의 식량 위기까지 우려된다. 기후변화 때문에 우리가 식량 문제에 민감해지고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 위기냐 기회냐, 대책은

−기후변화에 대응 전략은.

“적응, 완화, 정교한 예측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적응은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하고 대체 작물을 발굴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종자 산업도 키워야 한다. 둘째, 완화는 저탄소 농업 기술을 통해 농업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아예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가축 총량을 제한하기도 한다. 셋째, 정교한 예측을 위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기후변화 방향을 내다보고 농가에 빨리 알려주는 것이다.”

−농업에도 AI가 필요한가.

“AI는 기후 예측뿐 아니라 사람의 개입이 필요 없는 자율 재배 등 다양한 현장에 접목될 수 있다. AI 도움으로 80대 농부가 60대처럼 일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날로그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 소니가 디지털 시대 전환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듯이 이제 AI에 적응하지 못하는 농업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종자가 중요하지만, 해외에 의존하지 않나.

“매일 먹는 농산물을 국산으로 알고 사지만, 그 종자 대부분은 외국산이다. 귤 97.5%, 포도 95.9%, 배 85.8%, 사과 79.8%, 양파 70.9% 등 국내 주요 과실과 채소 12품종의 외국산 종자 점유율은 무려 72.5%다. 종자 회사에서 파는 종자는 우수한 부모 종자를 교배해 발육이 좋고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지만, 이 종자를 심어서 나는 잡종은 열성 형질이 나타나 수확량이 떨어진다. 온난화에 대응할 수 있는 종자를 빨리 국내에서 개발해 종자 독립도 이뤄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 R&D, 왜 중요한가.

“근대 농업 역사에선 두 번의 혁명적 사건이 있었다. 영국의 윤작법과 미국의 녹색혁명이다. 영국은 18세기 중반 한 경작지에서 여러 농산물을 교대로 돌려 지어서 지력을 증가시키는 윤작법으로 농업 강국으로 성장했다. 1950년대 미국은 다수확 품종을 개발하는 녹색혁명으로 현재까지 세계 농업의 중심 국가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이 농업에 접목되면서 새로운 농업혁명이 꿈틀거리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기술도 그중 하나다. 이번엔 어느 나라가 주인공이 될지 주목된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난 민승규 세종대 석좌교수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면 농업에도 AI(인공지능) 활용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이태경기자

LED 조명 조절해 실내 ‘스마트팜’서도 꿀벌이 자연 수정

민승규 교수는 “기후변화에 영향받지 않는 스마트팜 등 실내 농업도 육성해야 한다”며, 최신 스마트팜 기술들도 소개했다.

―실내 농업을 육성하는 건 어떤가.

“채소는 곡물이나 과일에 비해 날씨에 무척 민감하다. 기온이나 일조량에 작은 변화만 생겨도 재배가 안 된다. 그래서 외부와 차단돼 병충해가 없고 사계절 내내 파종과 수확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수직 농장, 컨테이너형 식물 공장 등 다양한 스마트팜이 출현하고 있다. 경기도에선 배, 포도, 복숭아 등 과일 나무를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우는 시범 사업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스마트팜에 장점이 많지만 대다수 소규모 농가는 과다한 초기 투자 비용 때문에 쉽게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스마트팜 기술들이 개발되나.

“딸기는 저온성 작물이어서 기온이 15도 이상 올라가면 꽃이 안 핀다. 그런데 국내의 넥스트온이란 스타트업은 폐터널을 개조하거나 스마트팜을 만들어 여름에도 딸기를 생산한다. 더 중요한 건 실내에 꿀벌이 있어야 자연 수정이 된다는 것이다. 벌은 실내 조명용 LED에 취약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LED 조명의 파장과 온도, 습도 등을 조절해 벌이 실내에서 자연스럽게 날아다니다 수정하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다른 스마트팜 사례는.

“스마트팜을 아주 작은 크기로 만들어 레고 블록처럼 모듈로 관리하는 아이디어를 낸 회사도 있다. 삼성전자와 구글 부사장, 미국 수직 농장 업체 최고기술 책임자를 역임한 AI 전문가가 설립한 farm360ai라는 곳이다. 쿠팡 등 물류 회사가 박스를 이송하는 시스템을 응용해 모듈 안에서 샐러드 채소가 다 자라면 밖으로 빼내 수확한다. 실내 농업 취약점 중 하나는 질병이 퍼지면 막기 어렵다는 것인데, 모듈 하나에 질병이 나도 그것만 폐기하면 된다. 또 충남 보령의 코리아팜이란 기업은 농부는 가만히 있고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작물이 이동하는 식으로 스마트 팜을 만들기도 했다.”

☞스마트팜

정보기술(IT)을 접목해 기온, 습도, 강수 등 외부 환경 변화에 관계없이 농업 환경을 제어하는 미래형 농장을 말한다.

☞민승규 교수는

민승규 세종대 석좌교수는 동국대를 나와 일본 도쿄대에서 농업경제학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농업 분야 연구원으로 일하다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 농촌진흥청장,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등을 거친 농업경제 분야 전문가다. 현재 세종대 스마트생명산업융합과 석좌교수로 있다. 저서로 ‘농업, 트렌드가 되다’ ‘부자농부’ ‘벤처농업 미래가 보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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