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명장 스트라디바리의 ‘최연소 후예’는 한국인

김성현 기자 2024. 4.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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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크레모나에 공방 열어 바이올린 만드는 32세 안아영씨
바이올린 제작자 안아영씨는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 악기 제작자 협회의 최연소 회원이다. 뉴욕타임스는 그에 대해서 “스트라디바리 같은 명장의 고향인 크레모나 바이올린 제작 업계의 신성(新星)”이라고 격찬했다./본인 제공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는 16세기부터 스트라디바리·과르네리·아마티 등 전설적 바이올린 제작자들의 본거지였다. 지금도 160~200여 개의 공방이 현지에서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의 현악기 제작 전통을 고스란히 잇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NYT)가 ‘바이올린 제작계의 신성(rising star)’이라고 격찬한 한국 여성 바이올린 제작자 안아영(32)씨는 크레모나 악기 제작자 협회의 최연소 회원이다. ‘스트라디바리의 후예’인 셈이다.

바이올린 연주에서 한국은 정경화·사라 장(장영주) 등 자타 공인의 강국이지만, 악기 제작은 상대적으로 미개척 분야에 가깝다. 안씨는 지난 7일 전화 인터뷰에서 “과거의 선배 제작자들과 마찬가지로 100~200년 뒤에도 제 악기를 사용하는 누군가는 저를 기억해줄지 모른다는 점이야말로 악기 제작이 매력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나고 경기도 평택에서 자란 그가 바이올린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방과 후 교육으로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한 바이올린 소리에 푹 빠졌다”고 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악기 연주만큼 제작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는 “평택에 악기 판매와 수리를 겸하는 전문 매장이 생겨서 학교가 끝나면 하루 종일 눈치도 없이 사장님 곁에 앉아서 악기만 구경했다”며 웃었다.

당초 바이올린 연주 전공으로 서울의 예고(藝高)에 들어갔지만 결국 악기 제작을 공부하기 위해 외국 유학을 결심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컸지만 그는 “며칠간 밥도 안 먹고 떼쓴 끝에 겨우 허락을 받았다”며 웃었다. 미국 시카고에서 고교 과정을 마친 뒤 2011년 크레모나의 국제 바이올린 제작 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이후에도 현지 공방에서 3년간 일했고 국제 악기 제작 콩쿠르에도 입상했다. 그 뒤 2020년 크레모나에서 자신의 예명을 따서 ‘아리에티 현악(Arietti String)’이라는 공방을 차렸다. NYT는 “바이올린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던 여덟 살 소녀가 16세기 거장 스트라디바리의 요람인 크레모나에서 꿈을 이뤘다”고 보도했다.

그래픽=박상훈

지금도 크레모나에서는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으로 대부분의 공정을 처리한다. 안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불과 3주 만에도 바이올린을 만들 수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최소 두 달 이상 악기를 붙잡고 지켜보면서 세공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그는 “전통적인 제작 방식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며 악기는 시간을 들일수록 품질도 올라간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렇게 제작한 바이올린은 현재 1만6000~1만7000유로(2300만~2400만원)의 가격에 팔리고 있다. 악기 가격은 공산품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차와 경력이 쌓이면서 향후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 악기 제작을 전공한 남편 한왕수(39)씨도 공방에서 함께 일한다. 그는 “남편과 같은 일을 하면 속 깊은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웃었다. 다른 제작자들처럼 악기 안쪽에는 언제나 자신의 영어 이름(Ayoung An)을 불도장으로 찍는다. 그는 “수백 년이 흐른 뒤에도 혹시 제가 만든 악기를 열어보고 수리하는 분들이 제 이름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했다.

☞크레모나 공방

이탈리아 북부 도시 크레모나는 16세기부터 스트라디바리·과르네리·아마티 등 전설적 바이올린 제작자들의 공방이 밀집했다. 여기서 생산된 명기들은 지금도 최고가 1500만~2000만달러(약 200억~270억원)를 호가한다. 크레모나 공방들은 2012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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