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산업의 巨木’ 조양호 일대기 담은 평전 나왔다

석남준 기자 2024. 4. 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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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 5주기 맞아 추모제서 공개

1979년 미국 법인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은 김포 정비본부로 출근했다. 장남이 현장을 익히도록 아버지인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그렇게 지시한 것이다. 조 선대회장은 정비담당이사, 자재담당이사, 시스템담당이사를 맡았고, 이후 정비, 자재, 기획, 영업 등 전 분야의 실무를 거쳤다. 기계, 식음료, 마케팅 등을 모두 알아야 해 ‘종합예술 비즈니스’로 불리는 항공업계에서 그가 어떤 전문경영인보다 전문성을 갖춘 오너경영자로 평가받는 이유다.

고(故) 조양호(왼쪽에서 셋째) 한진그룹 선대 회장이 지난 2000년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아에로멕시코 항공사 회장과 함께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을 결성하는 모습. 조양호 선대 회장은 세계 항공 업계가 동맹으로 재편되는 흐름을 읽고 스카이팀 설립을 주도했다. /한진그룹

한진그룹이 8일 조 선대회장의 5주기를 맞아 그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 ‘지구가 너무 작았던 코즈모폴리턴’을 출간한다. 한진그룹 관계자 130여 명은 이날 경기도 용인의 선영에서 추모제를 열고 책을 공개했다. 평전은 미국 경제경영지 포브스 한국판 기자 출신인 이임광 전기작가가 썼다.

이 책에는 조 선대회장의 어린 시절부터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2019년 작고할 때까지 변방에 있던 한국의 항공산업을 세계의 중심으로 이끌고,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과정에 있었던 비화 등이 담겨 있다.

그를 곁에서 본 대한항공 직원들은 “조 선대회장은 ‘적당주의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불행해질 수 있는 것이 항공서비스다’ ‘안전에 협상은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고 했다. 조 선대회장은 괌 사고(1997년) 이후 20년 동안 안전운항을 위해 1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대한항공은 최근 25년 동안 인명 사고 제로(0)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 회장의 평전이 8일 공개됐다. 사진은 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 사옥 내 조양호 선대 회장 흉상 앞에 평전이 놓여 있는 모습. /한진그룹

책에는 조 선대회장의 승부사적인 면모도 담겼다. 그는 새 항공기가 주력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서면 주저하지 않았다. 2001년 9·11 테러에 이어 2003년 이라크 전쟁과 사스(SARS)까지 겹치면서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졌을 때 조 선대회장은 에어버스 A380 항공기 구매를 결정했다. 해외 경쟁사 전문경영인들은 “사람들이 비행기 타기를 주저하는 판국에 무모하게 항공기를 구입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2006년 세계 항공시장이 반등하자 항공사들은 대한항공이 구입한 가격의 두 배 이상을 주고도 새 항공기를 인도받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조 선대회장이 최고경영자로 재임(1992~2019)하는 동안 대한항공 항공기는 77대에서 166대가 됐고, 국제 노선 취항지는 20국 52곳에서 44국 124곳으로 확대됐다. 조 선대회장은 새 노선을 개설할 곳을 발품을 팔아 확인했다. 베트남 할롱베이, 튀르키예 이스탄불, 중국 황산 등이 조 선대회장이 직접 답사를 통해 시장성을 간파하고 노선을 개발한 취항지다.

항공사를 이끌며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스포츠, 예술 분야에도 기여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조 선대회장은 전력을 다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게 두렵습니다. 평창 유치는 국가적 대업이고 나의 소명입니다. 도와주시오.” 2018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을 맡은 조 선대회장은 유명 스포츠컨설턴트 테렌스 번즈를 프레젠테이션 총감독으로 영입하며 이렇게 말했다. 조 선대회장은 영어가 유창했지만 번즈의 요구에 맞춰 감정을 넣어 억양을 바꾸는 법, 단상에서 시선 처리와 손짓까지 배우고 훈련했다. 조 선대회장은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못해서 평창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듣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2008년 2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후원 제안이 들어왔을 때 조 선대회장은 후원 규모를 묻지 않고 “작품 해설 서비스에 한국어를 넣어달라”는 조건만 내밀었다고 한다.

재벌가 장남이지만 조 선대회장은 소박했다. 가장 좋아한 반찬이 고등어구이였고, 옷도 브랜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진 찍는 게 취미였던 조 선대회장은 카메라만 좋은 것 하나 있으면 됐다. 신무철 전 대한항공 홍보실장은 “해외 출장 중에 배가 고프면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스스럼없이 우리와 함께 줄을 서 햄버거를 받아오던 모습이 그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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