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4% 예금 씨가 마르자 한 달 새 12조 이탈… 어디로 몰렸나 봤더니

김은정 기자 2024. 4. 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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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테크족 “여윳돈 넣을 곳이 없다”
일러스트=백형선

“연 4% 넘게 이자 주는 은행 예금이 씨가 마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요즘 예테크(예금과 재테크의 합성어)족들 사이에 “여윳돈 넣을 곳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 하반기로 예상되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를 앞두고 안정성이 높은 은행 정기예금으로 돈을 불리고 싶어도 매력적인 이율의 상품을 찾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은행 신규예금 금리는 작년 말부터 꺾이기 시작하더니 최근까지도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8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1년 만기 주력 정기예금 금리는 최고 연 3.45~3.55% 수준이다. 작년 12월 중순(연 3.9~3.95%)보다 크게 떨어졌다.

심지어 모든 우대 금리 조건을 충족해도 최고 금리가 한국은행 기준금리(연 3.5%)보다 낮은 정기예금도 속출하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은행권의 1년 만기 정기예금 37개 중 11개의 신규 가입 때 최고 금리가 연 2.7~3.45%로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다.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 전망을 미리 반영해 금리가 낮아진 것”이라고 하지만, 고객들은 “대출 금리에 비해 예금 금리만 유독 가파르게 내리고 있는 것 같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예금 유치 열기 식은 은행권

이달 들어선 연 4% 넘는 은행 정기예금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은행 첫 거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대구은행 주거래우대예금(1년 만기)이 최고 연 4.05%로 유일하다.

최고 금리가 기준금리에도 못 미치는 곳도 많다. 주요 은행별로 주력 예금 상품의 금리를 보면, KB국민은행의 ‘KB Star정기예금’과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의 1년 만기 최고 금리는 연 3.45%, 카카오뱅크는 연 3.4%다. 수협·산업은행의 일부 정기예금은 최고 금리가 연 3%도 안 됐다.

김영익 서강대 겸임교수는 “한국은행이 시장에서 사는 7일 만기 환매조건부채권 금리가 기준금리인 연 3.5%이기 때문에 이보다 기간이 긴 정기예금은 프리미엄이 붙어 당연히 금리가 더 높아야 정상”이라며 평소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작년 하반기엔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때 경쟁적으로 판매했던 고금리 예·적금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주요 은행들이 연 4% 넘는 금리로 고객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연말부터 분위기가 급격히 식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빠르면 올여름부터 기준금리가 내려갈 것이란 예상이 많은 데다, 작년 하반기에 고금리로 예금 유치를 많이 해놓은 터라 지금은 굳이 금리를 높여 예금을 늘려야 할 필요성이 낮다”고 했다. 한은에 따르면 은행권 평균 1년 만기 수신 금리(신규)는 작년 11월 연 4.18%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 2월 연 3.63%까지 떨어졌다. 현재는 연 3%대 중반이 대세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최근 은행채 등 시장 금리가 내린 것도 예금 금리 하락세의 요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일 1년 만기 은행채(AAA등급) 평균 금리는 연 3.541%로 지난 1월 2일의 연 3.710%보다 낮아졌다. 은행 입장에선 은행채보다 비싼 이자를 주면서까지 예금 유치에 나설 유인이 적다.

◇5대 은행 정기예금 한 달 새 12조원 이탈

이처럼 주요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매력을 잃자 예금족들은 등을 돌리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873조3761억원으로 한 달 만에 12조8740억원이나 줄었다.

반대로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꼽히는 요구불예금은 빠르게 늘었다. 5대 은행의 3월 요구불예금(수시입출식예금 포함) 잔액은 전월 대비 33조원 넘게 늘었다. 기준금리 수준이거나 기준금리를 밑도는 예금 상품에 장기로 돈을 묶어두느니 언제든 빼내 쓸 수 있는 통장에 돈을 넣어두고 주식이나 가상 화폐, 금(金) 투자 등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은행들은 대출 금리도 소폭 내리고 있지만, 예금 금리 하락세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예대 금리 차(대출과 예금 금리의 차이)가 축소되는 추세지만, 일부 은행은 그 격차가 확대됐다. 지난 2월 케이뱅크와 국민은행, 신한·하나은행의 가계 예대 금리 차(정책서민금융 제외)는 전월 대비 각각 0.07%포인트, 0.04%포인트, 0.02%포인트 더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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