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클래식感]싹터 오르는 생동… 봄에 듣고 싶은 음악들
슈만의 교향곡 1번은 제목이 ‘봄의 교향곡’이다. 슈만은 당대 최고 인기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와 결혼한 다음 해 이 곡을 완성했다. 신부 아버지의 맹렬한 반대를 극복한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은 음악사를 넘어 인류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사랑 중 하나가 되었고, 젊은 작곡가는 겨울을 넘겨 맞이한 인생의 봄을 이 교향곡에 담았다. 영어 스프링(Spring)은 ‘용수철’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시작하자마자 6초 남짓한 동안 현악부의 선율이 세 옥타브나 솟아오른다. 놀라운 탄성계수다.
동양의 ‘봄’ ‘春’이 마냥 수동적이고 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단어들은 고요하게 싹터 오르는 거룩함과 상서로움, 서기(瑞氣)를 담고 있다. 슈만의 교향곡 1번이 ‘프륄링’이라면, 그가 1번 교향곡을 마치고 바로 써나간 교향곡 4번은 ‘거룩한 봄’으로 다가온다. 긴 고난이 지나고 지평선 끝에 따뜻한 빛이 쏟아지는 느낌이랄까. 박태준의 가곡 ‘동무생각’이 묘사한 ‘봄의 교향악’의 느낌은 이 곡에 더 가깝다고 할 만하다.
봄은 젊음의 계절이고, 젊음은 아름답지만 때로는 아픔도 동반한다. 18세기가 저물어갈 무렵 전 유럽의 젊은이들을 강타한 슬픔의 이야기가 있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한 세기 뒤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가 이 비극을 오페라 ‘베르테르’로 만들었다. 베르테르는 고대 켈트족의 시인으로 알려진 오시안의 시를 읽으며 이룰 수 없는 사랑에 탄식한다. 아리아 ‘왜 나를 깨우는가, 봄의 산들바람이여’에서 그렇게 훅 하고 쳐들어오는 청춘의 격동을 맛볼 수 있다.
이탈리아 작곡가 토스티의 가곡 ‘4월’도 대기에 향훈이 넘치는 사랑의 계절을 노래한다. “그대 느끼지 못하나요, 대기 속에 봄이 퍼뜨리는 향기를?/그대 마음속에 느끼지 못하나요, 새로이 속삭이는 종달새의 노래를?/4월이에요! 사랑의 계절이죠!”
토스티는 영국 왕실의 성악 교사로 작곡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그 시기에 그의 고국 이탈리아에서 근대 오페라의 찬란한 역사를 펼쳐나간 인물이 토스티의 열두 살 아래 벗으로 올해 서거 100주년을 맞은 푸치니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미군에게 속아 가짜 결혼을 한 게이샤가 결국 목숨을 끊는 비극적 사랑을 담고 있다. 두 시간에 달하는 오페라 전체의 배경이 꽃이 아름답게 피어난 동아시아의 봄을 그려낸다. 첫날밤의 설렘과 환희가 펼쳐지는 1막부터 기다림과 배신이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까지 그렇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여주인공은 이렇게 노래한다. “어떤 갠 날, 보일 거야/먼 수평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배가 나타나./하얀 배인데 항구로 들어오면서 고동을 울릴 거야./보여? 그이가 온 거야!/복잡한 시가지로부터 작은 점처럼, 한 남자가 언덕을 걸어 올라와./누굴까? 뭐라고 말할까?/먼 데서 부르겠지. “나비!” 나는 대답하지 않고 숨어 기다릴 거야./놀라게 하려고, 또 조금은,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이 노래의 팬 중에는 소설가 겸 사회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도 있었다. 지인이 찾아오면 축음기로 이 노래를 들려주며 눈을 감은 채 감탄의 신음소리를 뱉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푸치니의 시대에 거대한 교향곡의 기념비를 쌓아올렸던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는 심장병을 얻은 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교향곡을 계획하다가 독일어로 번역된 한시(漢詩)를 바탕으로 교향곡인지 가곡집인지 장르가 모호한 곡 ‘대지의 노래’를 완성했다. 마지막 악장 ‘송별’의 끝부분은 이렇다.
“나는 고향을 찾아간다. 더 이상 낯선 곳에서 헤매지 않으리. 내 마음은 고요하며 때를 기다린다. 사랑하는 대지에 봄이 오면 어디나 꽃이 피어나고 새로운 초록이 펼쳐지리. 그리고 먼 곳엔 푸른빛이! 영원히, 영원히….”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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