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클래식感]싹터 오르는 생동… 봄에 듣고 싶은 음악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2024. 4. 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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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약동하는 계절이자 새 생명이 산과 들을 가득히 채우는 거룩한 시간이기도 하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서양 언어에서 봄을 나타내는 단어들은 스프링(영어) 프랭탕(프랑스어) 프륄링(독일어) 등이다. 예외 없이 약동하는 듯한, 신선한 느낌을 준다. 반면 동양 언어의 ‘봄’ ‘춘(春)’은 조는 듯한, 꿈꾸는 듯한 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고(故) 이어령의 글에 나오는 얘기다. 거의 반세기 전에 읽은 이야기이니 인용이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슈만의 교향곡 1번은 제목이 ‘봄의 교향곡’이다. 슈만은 당대 최고 인기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와 결혼한 다음 해 이 곡을 완성했다. 신부 아버지의 맹렬한 반대를 극복한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은 음악사를 넘어 인류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사랑 중 하나가 되었고, 젊은 작곡가는 겨울을 넘겨 맞이한 인생의 봄을 이 교향곡에 담았다. 영어 스프링(Spring)은 ‘용수철’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시작하자마자 6초 남짓한 동안 현악부의 선율이 세 옥타브나 솟아오른다. 놀라운 탄성계수다.

동양의 ‘봄’ ‘春’이 마냥 수동적이고 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단어들은 고요하게 싹터 오르는 거룩함과 상서로움, 서기(瑞氣)를 담고 있다. 슈만의 교향곡 1번이 ‘프륄링’이라면, 그가 1번 교향곡을 마치고 바로 써나간 교향곡 4번은 ‘거룩한 봄’으로 다가온다. 긴 고난이 지나고 지평선 끝에 따뜻한 빛이 쏟아지는 느낌이랄까. 박태준의 가곡 ‘동무생각’이 묘사한 ‘봄의 교향악’의 느낌은 이 곡에 더 가깝다고 할 만하다.

봄은 젊음의 계절이고, 젊음은 아름답지만 때로는 아픔도 동반한다. 18세기가 저물어갈 무렵 전 유럽의 젊은이들을 강타한 슬픔의 이야기가 있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한 세기 뒤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가 이 비극을 오페라 ‘베르테르’로 만들었다. 베르테르는 고대 켈트족의 시인으로 알려진 오시안의 시를 읽으며 이룰 수 없는 사랑에 탄식한다. 아리아 ‘왜 나를 깨우는가, 봄의 산들바람이여’에서 그렇게 훅 하고 쳐들어오는 청춘의 격동을 맛볼 수 있다.

이탈리아 작곡가 토스티의 가곡 ‘4월’도 대기에 향훈이 넘치는 사랑의 계절을 노래한다. “그대 느끼지 못하나요, 대기 속에 봄이 퍼뜨리는 향기를?/그대 마음속에 느끼지 못하나요, 새로이 속삭이는 종달새의 노래를?/4월이에요! 사랑의 계절이죠!”

토스티는 영국 왕실의 성악 교사로 작곡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그 시기에 그의 고국 이탈리아에서 근대 오페라의 찬란한 역사를 펼쳐나간 인물이 토스티의 열두 살 아래 벗으로 올해 서거 100주년을 맞은 푸치니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미군에게 속아 가짜 결혼을 한 게이샤가 결국 목숨을 끊는 비극적 사랑을 담고 있다. 두 시간에 달하는 오페라 전체의 배경이 꽃이 아름답게 피어난 동아시아의 봄을 그려낸다. 첫날밤의 설렘과 환희가 펼쳐지는 1막부터 기다림과 배신이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까지 그렇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여주인공은 이렇게 노래한다. “어떤 갠 날, 보일 거야/먼 수평선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배가 나타나./하얀 배인데 항구로 들어오면서 고동을 울릴 거야./보여? 그이가 온 거야!/복잡한 시가지로부터 작은 점처럼, 한 남자가 언덕을 걸어 올라와./누굴까? 뭐라고 말할까?/먼 데서 부르겠지. “나비!” 나는 대답하지 않고 숨어 기다릴 거야./놀라게 하려고, 또 조금은,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이 노래의 팬 중에는 소설가 겸 사회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도 있었다. 지인이 찾아오면 축음기로 이 노래를 들려주며 눈을 감은 채 감탄의 신음소리를 뱉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푸치니의 시대에 거대한 교향곡의 기념비를 쌓아올렸던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는 심장병을 얻은 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교향곡을 계획하다가 독일어로 번역된 한시(漢詩)를 바탕으로 교향곡인지 가곡집인지 장르가 모호한 곡 ‘대지의 노래’를 완성했다. 마지막 악장 ‘송별’의 끝부분은 이렇다.

“나는 고향을 찾아간다. 더 이상 낯선 곳에서 헤매지 않으리. 내 마음은 고요하며 때를 기다린다. 사랑하는 대지에 봄이 오면 어디나 꽃이 피어나고 새로운 초록이 펼쳐지리. 그리고 먼 곳엔 푸른빛이! 영원히, 영원히….”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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