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탄진고에는 ‘호그와트 교수’같은 선생님이 있었다 [왜냐면]

한겨레 2024. 4. 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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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신탄진고에는 호그와트(해리 포터 시리즈의 마법학교)로 가는 3/4 정거장이 있었다.

그곳에 천재 같은 선생님이 계셨다.

수학 선생님인데 영어를 무지 잘하신다.

건너편 자리 외국인 선생님과 막힘없이 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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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2학년 대상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열린 지난해 12월19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염상열 | 노무사

대전 신탄진고에는 호그와트(해리 포터 시리즈의 마법학교)로 가는 3/4 정거장이 있었다. 3층과 4층 사이 벽면에 있는 교무실이었다. 그곳에 천재 같은 선생님이 계셨다. 수학 선생님인데 영어를 무지 잘하신다. 건너편 자리 외국인 선생님과 막힘없이 대화한다. 성격도 괄괄하고 말도 거침없이 유쾌하다. 얼마나 신기한지 해리 포터 저리가라다.

변변치 못한 나였지만 그런 수학 선생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일단 내가 수학을 엄청 못해 질문을 자주, 그리고 아주 길게 해서다. 실은 모르는 건 많고 중등 수학이 부족한 나에게 그 선생님께서 차근차근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교사니까 학생에게 그러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당연하지 않았다. 좀 쉬고 싶은데 쉬는 시간, 야자(야간 자율학습) 시간마다 수학책을 들고 오는 내가 얼마나 짜증 나셨을까. 질문거리도 아닌데 심심해서, 외로워서 억지로 질문했다는 것도 아마 아셨겠지.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화가 나셨겠지만 그래도 묵묵히 알려주셨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수학을 내려놓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 수능 때 킬러문항 두 문제만 틀렸다. 가채점했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서울로 올라온 뒤 힘들었지만 묵묵히 버텼다. 그냥 다 내려놓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실은 내가 선생님께 배운 건 수학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아니었을까. 단지 교과 과목은 선생님과 내가 만나기 위한 구실 정도가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공교육이 위기”라고 떠들어댄다. 의대와 명문대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만 받는 교육이 대한민국 교육의 전부인 양 쉽게 말하며, 교단에 선 선생님들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모든 학생이 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날 수 없다. 생활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그러한 차이는 쉽게 격차가 되어 넘을 수 없는 벽이 된다. 좌절감과 패배감만 켜켜이 쌓인다.

학생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생활 수준’탓에 좌절하지 않도록,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통해 차이가 격차가 되지 않도록, 나아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발판 삼아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게 공교육이 아닐까 싶다.

혹자는 산업화 당시의 대량 생산 교육에서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춰 일대일 맞춤형 교육으로 교육체제를 혁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나, 아직도 공교육이 산업 예비군 양성에 복무해야 한다고 본다는 점에서 그 전제는 구태의연하다. 공교육은 시대를 넘어 이어져야 할 보편적 가치를 위한 교육이다. 1000년은커녕 100년도 못 갈 특정 기업을 위한 사교육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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