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겹만겹의 김제동 “난 그냥 웃기는 사람이고 싶다”

이유진 기자 2024. 4. 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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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공감에세이 <내 말이 그 말이에요> 펴낸 ‘조선 강담사의 후예’ 김제동
김제동은 차분했고 낮고 일정한 톤으로 조곤조곤 말했다. 새 책 <내 말이 그 말이에요>에서 그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말한다. “일상을 외주로 주기 시작하면서 삶이 무너지는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그는 차분했다. 낮고 일정한 톤으로 가만가만 말했다. 목소리가 살짝 높아질 때가 있었다. “탄아! 기다려!” 거의 ‘묘기 대행진’이었다. “돌아!”라는 말에 강아지는 뱅글뱅글 돌았고 “엎드려!”라고 하자 엎드렸다. 유기견이었던 탄이는 반려인을 만나 안락사를 피했다. 둘은 동네에서 소문난 단짝이다.

“그래도 곁에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웃음)

김제동씨는 최근 밥 먹고 사는 이야기, 사람 이야기를 묶은 에세이집을 선보였다. <내 말이 그 말이에요>(내말그말·나무의마음 펴냄)는 2016년 펴낸 <그럴 때 있으시죠?>의 후속작처럼 읽힌다. 책은 전작보다 순하고 부드럽다. 좋아하는 두부짜글이 끓여 먹는 이야기, 찐득찐득한 대파 써는 이야기, 동네 아이가 실연당하고 주저앉아 울기에 함께 울었다는 이야기 등 그저 일상의 소소한 단편을 묶었다. 그런데 읽고 나면 돌봄과 살림처럼, 살면서 가장 중요한 숙제를 공유한다는 느낌이 든다.

2024년 3월 중순 책이 나온 뒤 기자간담회에 이어 온·오프라인 북토크도 했다. 온라인 북토크에 댓글이 줄줄 올라왔다. “일산 베드로입니다.” “안양 베드로입니다.” “마포 베드로.” “부산 베드로!” 웬 세상에, 갑자기 베드로를 자처하는 이가 이렇게나 많은가. ‘베드로’는 동트기 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처럼, 누가 김제동 팬이냐고 물어보면 세 번 부인한다며 김제동이 붙인 팬클럽 이름이다. 책에서 저자는 ‘악플이 발견되거나 길거리에서 나를 만나면 조용히 베드로라고 얘기해달라’고 썼다. 기자간담회 댓글창에도 귓속말 같은 조용한 잔물결이 찰랑였다. “베드로.” “평택 베드로.” “베드로!”

2024년 3월2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핀 날이었다. 이제 곧 4월이었고 그의 가방에는 세월호 리본이 매달려 있었다. ‘폴리테이너’라 지탄받은 김제동이 세월호 참사 추모 리본을 단다는 것은 어떤 눈초리를 감수하려 한다는 뜻일 테지만, 자그마한 리본 하나가 특정 연예인에 관한 확증편향을 더 강하게 만들어줄지 모른다. 다 알면서 리본을 다는 건 누군가에게 마음을 포개고 싶어서일 테다. 길 가던 동네 주민들이 반갑게 인사하자 탄이는 기뻐서 꼬리를 흔들었다.

김제동과 그의 반려견 탄이. 유기견이었던 탄이는 최근 반려견 순찰대에 합격했다. 이제 둘은 세트로 조끼를 입고 동네 순찰을 하게 됐다. 김제동은 “집안의 경사”라고 활짝 웃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집안의 경사, 자율방범대 조끼 이어 순찰대 조끼

―탄이는 어떻게 만났나.

“만난 지 5년 반에서 6년 됐다. 5개월 때 나한테 왔다. 유기견이었는데 주인이 찾지 않으면 안락사한다고 해서 데려와 임시보호하다가 쭉 살게 됐다.”

―탄이가 점잖다.

“품종견은 아니지만, 천성이 좋다. 인도 개인가 싶을 만큼 고요하고 창밖 좋아하고 명상하는 거 좋아하고(웃음), 사람 좋아하고. 참, 얼마 전에 반려견 순찰대에 합격했다. (활짝 웃음) 기다려, 앉아, 대인 반응, 대견 반응 등 그 어려운 시험을 우리 애가 해냈다. (더 활짝 웃음) 합격 문자를 보고 울컥했다. 통장님 추천으로 자율방범대 활동을 했는데 앞으로는 반려견 순찰대 보호자로서 조끼가 또 생기는 거다. 조끼가 멋있다. 집안의 경사다.”

―‘주부 9단’ 같다. 책 속에 살림 이야기가 많다.

“양파 사놓으면 파 떨어지고…. 아이고, 진짜 살림은 어렵더라. 집에서 살림하면서 직장 다니고, 아이 키우면서 살림하는 분들 존경한다. 진짜 대단하시다.”(웃음)

―살림은 사실 급진적인 자기 변화를 요구하는 일이다.

“그 어떤 일보다 살림이 빡세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잘 사는 것 같다. 자기 일상을 외주로 주기 시작하면서 삶이 무너지는 때가 많았다. 내 경우에 말이다.”

―‘경상도 남자’가 싱크대에서 서서 밥 먹고, 바로 설거지하고, 빨래해서 착착 개켜놓기가 쉽지 않다. 몸에 밴 습관을 바꾸는 거니까. 명상이나 백팔배 등 수행을 열심히 한다던데, 그래서인가.

“새벽 5시 반부터 일과를 시작하는데 백팔배, 명상을 한다. 천일기도 프로그램 삼아 하는데 몇 년 됐다. 사부작사부작 뭘 한다. ‘파테크’도 하고 주부처럼 살림도 하고. 전에는 눈이 바깥쪽을 향했다가 지금은 안쪽으로 조금 향하는 시간이다. 나하고 조금 더 친해지고 싶어서 나에게 밥을 잘 해먹이는 거다. 사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밥을 먹이고 싶다. 탄이가 와닥와닥 사료 씹어먹는 소리 들을 때,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갈 때 그렇게 행복하더라.”

김제동의 탄려견 탄이가 바닥에 엎드려 ‘형아’를 기다리고 있다. 탄이는 얌전했고 낯을 가리지 않았다. 김제동은 “탄이는 입 댈 것이 없는 아이”라고 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내향적인데 대중 앞에 섭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밥해 먹이고 돌봐준 누나들에게 꼭 자신이 만든 김치볶음과 따스운 밥을 차려주고 싶다고 했다. 누나들이 만들어준, 바가지에 담긴 밥이 힘이 됐고 공장에 가던 어린 누나들이 더 어린 동생 머리맡에 놓아둔 도시락이 그를 살렸다. ‘살림꾼 김제동’은 이제 많은 것을 안다. 김치찌개에 된장을 살짝 풀면 맛있다는 것, 행주에 귤껍질을 문지른 뒤에 빨면 향기롭다는 것, 젓가락에 수세미를 끼워서 주전자 안을 닦으면 잘 닦인다는 것 등. 살림은 누군가를 살리는 행위다. 자신과 탄이를 위해 밥해 먹는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의미를 담았다. 원래 염두에 뒀던 제목은 <사람이 사람에게> <잘 지내세요 요즘?> <너로 살아도 괜찮다>였다. 주변 ‘셀럽’들은 이런 ‘힐링형’ 제목이 대세라며 낙점을 찍었지만, 그는 아예 다른 제목을 떠올렸다.

―책 제목은 직접 지었나.

“문득 <내 말이 그 말이에요>가 떠올랐다. (김)국진이 형한테 자주 듣는 말이고, 입말이어서 좋더라. 입말이 없는 시대에 말들이 떠다니지 않나. 유머도 없어지고, 날이 서 있고. 나도 마찬가진 거 같다. 그럴 때일수록 내가 입말에서 멀어지면 안 될 것 같았다.”

―‘말이 떠다닌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나 마나 한 소리.”

―영혼 없는 말들?

“좀 다른 거 같다. 음… 누구 연설문 들으면 ‘뭐 저렇게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싶을 때 있지 않나.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니라 나는 그러면 내가 일상에서 멀어질 수 있겠다 싶어서 내 일상과 말들이 붙어 있어야지, 생각했다. 그래서 욕을 좀 할 때도 있다.”

―욕에도 카타르시스 기능이 있지 않나.

“맞다. 혈압도 낮춰주고, 길게 말 안 해도 되고. 욕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친구들과 얘기할 때 그냥 ‘말’은 좀 거들 뿐이다. (웃음) 조사 정도로.”

―책은 어떻게 쓰게 됐나.

“연예인으로서 안 산 지도 오래된 것 같고. 4~5년 정도 방송을 안 하면서 마음에 툭툭, 떨어지는 이야기가 있었다. 혼자 사는 건 책 쓸 때는 좋다. 자꾸 내 안에 뭔가 고이고.”

―눈물이 날 것 같다.

“원래 좀 우울한 성향이고 진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말그말> 말고도 책을 여러 권 냈다. 왜 책을 쓰나.

“전체 맥락을 볼 수 있으니까. 내가 통으로 쓰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이 맘대로 내 이야기를 편집할 수 없으니까 맘이 편하다. <내말그말>은 말 거는 것처럼 귀에 들리게 쓰고 싶었다. 탄이하고 동네 산책하면 툭툭 떨어지는 말이 있다. 오늘도 오다가 이웃 어머님 뵙고 안부를 여쭈니 ‘늙는 거 말고 별일 없어’ 그러시는데 그런 말이 툭툭 떨어지면 잘 모아놨다가 독자에게 들려드리고 싶다. 얼마 전엔 길에서 어묵 먹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만났다. 개학했다기에 어떠냐고 했더니 ‘개학했는데 좋겠어요?’ 했다. 친구들 만나는 거 안 좋아? 물으니 ‘그것만 좋죠. 어른들은 그걸 몰라요’ 하더라. 그런 이야기가 좋다.”

―왜 그렇게 일상 대화가 좋을까.

“그러게, 애들 말이 그렇게 (마음에) 툭툭 떨어진다. 밥 먹었냐? 그 말 한마디에 뚝뚝 우는 애도 되게 많고. 평화방송에 같이 나왔던 초등학교 6학년 명환이는 북토크에 와서 아무 말 없이 와서 품에 안겨 펑펑 울더라. 탄이 보고 싶다고. 그 나이 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어른들은 보지만 고민이 많다. 엄청난 잠재력과 내공을 가진 아이들이다. 누구나 눈길만 준다면.”

―<내말그말>을 읽은 독자 반응은.

“어느 후배의 어린 아들이 내 책에 나오는 구절을 보고 고백해서 생애 첫 여자친구를 얻었다고 하더라. ‘찐득찐득하게 하지 말고 바삭바삭하게 고백하라’는 구절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데…. 나도 못했는데…(웃음) 기뻤다. 이 책이 살아서 움직이는구나 싶었다.”

지금 나와의 관계는 썸 정도 단계

그는 술술 말했다. 책도 술술 읽힌다. 법륜 스님, 이해인 수녀 등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종교인들이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스님들 유혹이 많았고 신부님, 수녀님들은 위기의식을 느낀 것 같았다”며 그는 웃었다. 법륜 스님은 웬만한 스님보다 나을 것이라며 김제동에게 출가를 권했다. 한창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할 때 김제동의 아이디는 ‘금강경’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천주교 신자가 됐다.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에서 감화받아 천주교에 입교했다. 2024년 3월12일부터 엠비시(MBC)에브리원 채널 ‘고민순삭-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에서 4대 종단 성직자들과 함께 하는 토크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김제동과 법륜 스님(오른쪽)이 무대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김제동은 법륜 스님이 이끄는 정토회 프로그램과 역사기행 등에 참여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천주교 신자인데, (불교단체인) 정토회 활동도 하더라.

“교황님이 너무 멋있었다. 정토회는 작년에 인도 갔다 왔고, 법륜 스님을 가끔 뵙는다. 10년 정도 된 인연 같다.”

―법륜 스님은 대단하다. 잠을 거의 안 주무신다고.

“세상 쓸데없는 게 스님 걱정이다. 우린 우리 걱정 하면 된다.”(웃음)

―왜 자꾸 내면으로 침잠하나.

“외부가 없다. 혼자 사니까. 내면 이외에는 없다.(웃음) 어쨌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정리를 좀 하자. 감정이든 마음이든. 나하고의 관계든. 계속 가야 하는데, 나하고 잘 가자. 정리될 사이 아니고 지금도 밀당하고 있는데, 만나고 있는 단계, 썸 정도 단계다. 함께 잘 가야지.”

김제동은 1974년 경북 영천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외아들이 태어난 지 백일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충격 때문인지 젖이 나오지 않았다. 김제동은 이웃의 젖을 얻어먹으면서 컸다. 다섯 누나는 막내 남동생을 살뜰하게 돌봤다. 가난했지만 주변의 돌봄 속에서 약자에 대한 감수성을 익힌 것 같다고 주위에선 평가한다. 대구에서 레크리에이션 강사, 야구장 아나운서로 이름을 알렸다. 2002년 <윤도현의 러브레터> 보조진행자로 ‘서울’ 지상파 방송에서 첫선을 보였고 파죽지세로 인기를 얻어 2003년 문화방송(MBC) 방송연예대상 최우수상, 2006년 한국방송(KBS) 연예대상 등 여러 상을 휩쓸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서 사회를 봤고, 노무현 대통령 노제 사회를 봤고, 사찰당했고, 정치적 연예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09년 12월부터 2019년 12월 시즌10까지 이어진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노브레이크’는 총 335회 공연, 누적 관객 34만1400명의 관람 기록을 세웠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 촛불집회에서는 ‘김제동과 함께하는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20~30대 젊은 나이에 호랑이 등에 올라탔고 산이 높아서 골도 깊었다. 공격받으면서 마음을 다쳐 상담과 마음공부도 열심히 했다. 2016년 사재를 털어 어려운 이들을 돕는 ‘김제동과어깨동무’를 창립하고 손길이 필요한 재해 피해 이웃들을 돕고, 나라 밖으로는 ‘세상과함께’라는 단체를 통해 미얀마에 학교를 지었다. 인도와 필리핀 아이들에게 교복 보내는 일에도 동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때 김제동. <한겨레> 자료사진

―사람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만났다.

“마이크 잡고 만난 거 치면 거의 내가 가장 많이 만난 사람 쪽에 속하지 않을까. 얘기하고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고 관객석으로 마이크를 많이 건네는 쪽이다. 지금도 학교에 아이들을 만나러 다닌다. 마이크 들고 만나는 관계만 있으면 내가 나하고 자꾸 멀어지니까, 친구 민철이하고 욕하고, (웃음) 그런 관계가 중요하다. (마음이) 둥둥 뜰 만할 때쯤 민철이가 뒤통수를 쳐준다.

―날 선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어떤가.

“(그 사람이) 화났구나, 나도 화나네, 싶다. 살면서 이불킥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이번 책을 내고 난 뒤에도 기자간담회에서 많은 언론이 ‘사회적 발언 그만’ ‘안 시끄럽게 살고 싶다’ 등 김제동이란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보도했는데.

“사람이 어떻게 바뀌나.”

―내 말이 그 말이다.

“세상에 큰 지장 주는 일 아니면 생긴 대로 살자 싶다. 장벽을 쌓아두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을 웃기고 친해지는 걸 원치 않았던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게 좀 무서웠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거다. 무서워도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 다만 그런 일이 없길 바란다. ‘정치적·사회적’이라는 말 자체에 담긴 부정적 의미를 걷어내는 것, 그게 내가 말하는 ‘장벽을 걷어내는 것’이다. 내가 사회적 동물이고, 내 말이 결국 사회적 발언이 안 될 수 없다. 다만 첨예한 현장에 뛰어든 건 몇 번 안 되는 거 같은데, 될 수 있으면 안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도 사실은 서구 코미디언에 비하면 사회적 참여가 적은 연예인인데. (웃음) 소재 제한 없게 웃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얘기한 거다. 사실 <한겨레21>에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인 일이다. 총선 뒤 평산책방에도 독자를 만나러 갈 예정이다.”

―몰래 가도 될 텐데.

“저자가 책방에 가는데 몰래 갈 필요 있을까. 동네책방에서 북토크 요청을 받았는데 그중 평산책방이 있었을 뿐이다. 기자간담회 뒤에도 (보도가 많이 되니) 출판사는 좋아하더라.(웃음) 작가의 뼈와 살을 자르고 깎아서….(웃음) 책 내용은 대부분 웃기고 그런 이야기인데 이 인터뷰도 사실은 조심스럽다. 웃기는 일에 방해되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잘 들어봐주라, 이게 진짜 그렇게까지 나쁜 의미의 정치적·사회적 이야기인가, 말하고 싶다. 난 그냥 웃기는 사람이고 싶다. 나더러 억울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2008년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창립 행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제동과 류승완 감독. 두 사람은 ‘절친’이다. 윤운식 <한겨레> 선임기자 yws@hani.co.kr

‘인류의 자산’을 이야기하는 것

웃기는 사람은 우습지 않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웃음에는 함께 웃는 사람들 사이의 공범 의식 같은 게 숨어 있다고 했다. ‘공범’이 많아 웃음이 커질수록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된다. 웃음은 사회적 의사 표시이며 어떤 사람이나 사건의 정곡을 찌르는 행위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는 에이디에이치디(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자폐 진단을 받은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소수자성을 소재로 무대에 선다. 개즈비는 “나는 내 이야기를 제대로 전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김제동에게도 그런 의무는 다르지 않다.

―웃기는 사람은 무서운 거다. 영향력이 올라가니까.

“그렇게 대결 구도로 만들고 싶지도 않다. 30대 초중반이었는데 돌아보면 무슨 깡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아니다. 웃음에 대한 애정이지. 특정한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공격하는, 사지로 내모는 방식은 많이 봤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그렇게 비쳤나보다. 친한 사람이 권력의 정점에 있었을 때는 무슨 결벽증처럼 그 근처에 가지 않았다. 그랬는데도 사람들 만나는 데 방해되니까 그저 속상한 거다. 슬프고. 내 탓도 있겠다.”

―아닌 것도 있을 테고.

“빌미를 제공한 것은 내 결정이었다. 다만 그런 것까지 덧씌워서 ‘아이들을 물들인다’느니 하면서 못 만나게 하는 일이 안타깝다. 양자택일하라고 칼로 무 자르듯이 싹둑 잘리지 않는 일인데, 나에겐 아이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더 중요하다.”

김제동이 2024년 2월23일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경복궁 역사 나들이’에 참여한 이들에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는 조선시대 강담사의 후예를 자처한다. 나무의마음 출판사 제공

인류의 자산으로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고 김제동은 말했다. 신라 통일 과정에서 가야계의 요구를 수용한 신라의 저력이나 당시 정세 등을 들려줬다. 그는 역사를 말로 풀어주는 일을 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조선시대 직업군 중 하나인 ‘강담사’(講談師)의 후예를 자처한다. 그간 역사 기행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공부했고 ‘김제동과어깨동무’ 회원, 자원봉사자, 신청자들에게 경주 역사기행 안내를 해주면서 서울에선 작업실과 가까운 경복궁에서 작은 규모의 ‘역사 토크’를 이어왔다.

―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다니나.

“며칠 전 북토크엔 400명이 오셨다. 토크콘서트는 내가 원조였고, 그래서 자부심이 있다. 나 스스로 강담사의 후예라고 하는데, 이건 판소리의 길거리 버전, 마당극의 홀로 버전이다. 점점 이야기가 사라지는 시대에 이야기를 살리고 싶다. 요즘은 사건만 있고 이야기는 없는 시대인 것 같아서 아쉽다. 사실에 대한 주장만 있지, 이야기가 없다.”

―역사에 어떻게 관심 갖게 됐나.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 예전 역사를 통해 뭘 볼 수 있을까, 여지를 열어놓는 것이다. 김춘추가 백제군에 딸을 잃고 지나가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슬픔이 있다. 백제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 삼국통일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그런 이야기가 재미있다. 역사적 장소에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한 지는 벌써 2~3년이 됐다. 옛날 전기수(소설 낭독가), 강창사(판소리 이야기꾼)도 그런 일을 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구전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이다. 객관성·과학성을 중시하는 실증주의 역사관이든, 인식하는 사람에 따라 역사가 달라진다고 보는 상대주의 역사관이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마저 홀대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영토가 아니라서, 유물이 없다며 더 이상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국가 성립 이전의 문명을 놓고 내 것이니 네 것이니 하는데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 우리 후배 세대는 국경이 없어지는 경험을 이미 하고 있지 않나.”

―위험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환단고기> 같은 것을 실제라고 믿는 사람도 있는데.

“신화라 해도 좋고 이야기라도 좋고 역사라 해도 좋고. 그런 이야기 자체가 엄청난 힘이지 않나. 그런 이야기가 남아 전해 내려오는 것이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한다. <삼국유사>도 역사서 취급을 받지 못하지만 이야기에 숨은 뜻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는 역사학계의 몫이다. 구전된 이야기 속에는 흥과 얼이 살아 있다. 꿈속에도 무의식이라는 큰 이야기가 숨어 있지 않나. 꿈의 장면을 파고 들어가다보면 재미있듯이, 때론 용이나 유니콘 같은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우리를 꿈꾸게 한다. 말만 있고 이야기가 없는 시대, 나는 이야기가 좋다. <환단고기>를 믿느냐, 너는 어느 쪽이냐,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고 우리에게 환인·환웅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를 ‘배달의 겨레’라고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를 접하는 게 왜 나쁜지 모르겠다. 우리 어머니만 해도 아버지가 천재였다고 늘 말씀하시는데 ‘그만큼 우리 아버지를 좋아했구나’라고 뜻을 읽어내주는 작업, 그게 이야기꾼들, 강담사가 해야 할 일이다.”

김제동이 가장 크게 웃은 건 반려견 탄이 자랑을 할 때였다. 밥해 먹는 이야기, 동네 어르신들과 덤덤하게 나눈 이야기는 왜 그런지 가슴에 툭툭 남는다고 했다. “커다란 가르침이나 울림 아니더라도 희한하게 남는 이야기”라고 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진지한 얘기가 재밌어서 죄송

―방송인, 사회자, 강담사 등 여러 정체성을 갖고 있다.

“부르는 분들 마음이다. 사람이 이중적이란 말을 들으면 반성해야 한다고 책에도 썼는데, 사람은 천중적, 만중적이어야 한다.”(웃음)

―김제동에게 웃음이란 어떤 의미인가.

“사람을 좋아하는 거다. 웃는 사람도, 웃어주는 사람도, 웃음을 시도하는 것도 그 사람이 좋아서 하는 거다. 인간이 감정적으로 딱 싫어져 버리면 안 웃긴다. 그런 게 슬펐다는 거다. 나는 웃음은 사람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웃기고 싶은 것도 내가 그 사람 좋아해서 그렇고. 좋아하는 사람이 시도하는 농담은 어떤 개그든 재미있다.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일을 더 하고 싶다. 장벽을 없애고. 걷어내고.”

―거의 마지막 질문. 어제는 뭐 드셨나.

“깍두기볶음밥. 쌀은 법륜 스님이 농사지어 보내주셨고 고추장, 된장은 진관사에서 받아 먹고.(웃음) 그것만 있으면 된다. 집에서는 파김치를 보내온다.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북어 사다가 무랑 같이 넣고 뽀얀 첫 물 낼 때, 탄이 좀 주고. 북엇국이 제일 맛있다. 조미김이랑 먹으면 근사하다.”

―노래방 애창곡은.

“광석이 형 노래인데, 제목이 뭐였더라. ‘시대의 새벽 길 홀로 걷다가…’(노래를 흥얼거린다, 제목은 <부치지 않은 편지>다) 장혜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도 좋아한다.”

―역시 사랑 노래다.

“방탄소년단(BTS)의 <퍼미션 투 댄스>도 가사가 너무 좋다. 춤출 때 허락, 허가가 필요 없다는 것. 뭐든 말할 때는 허가가 필요한 것 같은 느낌을 갖고 그렇게 조심하고 살았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허가가 안 되나보다. 죄송하다고 전해달라. 일일이 허락을 못 받아서. 시간이 되면 미리 허락받을걸. 다 가까운 데 있는데. 오늘 진지한 얘기가 너무 많았던 거 같다. 그런데 그런 얘기가 재밌어서 죄송하다.”(웃음)

글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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