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로 온 '파과'…죽음이 전하는 강렬한 삶의 향기[리뷰]

박주연 기자 2024. 4. 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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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려."

어떻게 죽음이 이토록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지, 자신을 매혹한 것이 죽음인지 살인자인지. 그걸 알아야 흩어진 삶의 조각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킬러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인 만큼 뮤지컬 무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액션 장면이 끊임 없이 펼쳐진다.

조각과 무용은 예정된 충돌의 길로 향하고, 무대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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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과'. (사진=PAGE1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잊어버려."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는 붉은 향기만 남기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소년은 궁금해 미칠 것만 같았다. 어떻게 죽음이 이토록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지, 자신을 매혹한 것이 죽음인지 살인자인지…. 그걸 알아야 흩어진 삶의 조각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뮤지컬 '파과'는 60대 여성 킬러 '조각'(차지연 분)의 이야기다. 한때 이 세계의 전설이었지만 이제는 퇴물, 물러터진 과일이다. 조각이 살해한 한 남성의 아들 '투우'(신성록 분)는 조각을 찾기 위해 청부살인 세계에 몸을 담았다.

하지만 20년만에 만난 조각은 노쇠했다. 몸도, 마음도 물러터졌다.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던 그녀는 이제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와 '무용'이라는 이름을 주고 키운다. 일면식 없는 행인을 돕느라 표적을 놓치기까지 한다.

이 작품은 노화로 표상되는 '빛나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찰나의 시선들을 쫓는다. 조각의 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투우, 변화의 발단이 되는 강박사 등과의 관계를 통해 극의 전개에 긴장감을 더한다.

뮤지컬 '파과'. (사진=PAGE1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차지연은 몸의 감각이 점점 둔해지고,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체감하면서도 일을 놓지 않는 '조각'으로 분해 열연한다. 한때 전설이던 킬러의 카리스마, 늙은 여성의 슬픔 등 섬세한 감정 연기는 물론 강도 높은 액션장면까지 소화한다. 신성록은 복수심, 연민으로 뒤엉킨 '투우'역을 맡아 흡입력 있는 연기를 펼쳐보인다. 서늘한 연기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이 일품이다.

작품 내내 '복숭아'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조각은 '무용'과 함께 나눠 먹으려고 산 싱그럽고 달콤한 복숭아가 냉장고 안에서 썩어버린 걸 발견하고, 나이 들어버린 자신이 그 복숭아와 같다고 느낀다. 투우에게 복숭아는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나게 하는 동시에 알레르기를 감수하고 먹을 만큼 달콤하고 매력적인 과일이다.

뮤지컬 '파과'. (사진=PAGE1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실제 이 작품의 원작인 소설 '파과'를 집필한 구병모 작가는 냉장고 속 썩어버린 복숭아를 발견하고 소설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뮤지컬은 차가움이 느껴지는 도시를 상징하는 무대에서 속도감 있게 흘러간다. 어둡고 높은 수직 벽체, 철재 계단과 난간이 작품의 느와르적 정서를 표현한다.

킬러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인 만큼 뮤지컬 무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액션 장면이 끊임 없이 펼쳐진다. 조각과 무용은 예정된 충돌의 길로 향하고, 무대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태권도, 유도, 검도, 특공 무술 등에 조명과 무대효과가 겹쳐지며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오는 5월26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공감언론 뉴시스 pj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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