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비조’ 뜨니 ‘이팔청춘’ ‘이판사판’까지…정치 셈법이 만든 총선 사자성어 열전

조문희 기자 2024. 4. 8. 15: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투표 행태 지칭 조어 만들어 유세
선관위선 “금지 해당…쓰지 말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지난달 5일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의 접견에서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4.10 총선을 앞두고 각종 사자성어가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주로 투표 행태를 지칭하는 조어로, 조국혁신당의 표어인 ‘지민비조’가 선두 격이다. 위성정당 투표를 유도하는 거대 양당과 비례대표 의석을 가져가려는 신생 정당의 욕망, 둘의 충돌을 엿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인요한 국민의미래 선거대책위원장은 8일 BBS 라디오에서 자유통일당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고발 배경은 자유통일당이 사용한 ‘이팔청춘’ 구호다. 이는 ‘지역구는 2번 국민의힘, 비례는 8번 자유한국당’을 줄인 말이다.

인 위원장은 “국민의미래가 4번인데 혼선을 주는 전략 같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만든 비례대표 위성정당은 국민의미래인데, 자유통일당이 그 표를 가져가려 ‘꼼수’를 썼다는 취지다. 보수층 표심을 두고 국민의미래와 자유통일당이 경쟁하는 현실을 드러낸 장면이다. 양당은 최근 “‘우릴 찍으면 사표가 된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있다”며 서로를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미래는 ‘이판사판’ 구호로 맞대응해왔다. 지역구는 2번 국민의힘, 비례는 4번 국민의미래를 뽑아달라는 의미다. 앞서 인 위원장이 대전을 찾은 지난 4일 당시 윤창현 국민의힘 대전 동구 후보는 “이번 선거는 이판사판”이라고 유세한 바 있다.

이 같은 투표 사자성어의 기원은 지난달 초 신장식 조국혁신당 대변인이 사용한 ‘지민비조’다.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의 준말이다. 민주당과 합치지는 않으나 선거 연대는 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돌풍 수준으로 크게 오르자,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 등 일부 정치인 사이에선 조국혁신당이 오히려 민주당 지지율을 견인하는 형국이 됐다는 뜻을 담아 ‘비조지민’이란 말도 쓰였다. 제3 정당 지지 유권자들 사이에선 ‘지국비개(지역구는 국민의힘, 비례는 개혁신당)’ ‘지민비개(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개혁신당)’ ‘지민비새(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새로운미래)’ ‘지국비조(지역구는 국민의힘, 비례는 조국혁신당) 등 변형태도 사용됐다.

다만 국회의원 후보자는 이 같은 사자성어를 함부로 써선 안 된다. 선관위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다른정당·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 관련 운용기준’에 따르면 비례대표 후보자가 지역구 정당·후보자의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 A당 지역구 후보자와 B당 비례대표 후보자가 나란히 서서 “지역구는 A당, 비례는 B당을 지지해주십시오”라고 말하는 행위 등은 금지된다.

선관위 발표 당시 ‘지민비조’ 구호가 선거운동 불가 기준에 적용된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이후 유사한 사자성어를 쓰는 정당은 늘어났다. 인 위원장은 이날 국민의미래 역시 최근 선관위로부터 ‘이판사판 구호도 쓰지 말라’는 뜻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위성정당을 금지하지 않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낳은 촌극이란 분석도 나온다.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별도 구성하며 ‘제도 해킹’을 시도하자, 위성정당에 갈 표를 끌어오려는 신생 정당들의 ‘재해킹’ 양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시초 격인 ‘지민비조’부터 민주당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대신 자신들을 뽑아달라는 조국혁신당의 구호였다.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 지역구 후보·비례대표후보를 함께 낸 정당은 이처럼 복잡한 계산을 할 필요가 없다. 곽대중 개혁신당 대변인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비례도 지역도 찌거(찍어)줘요 개혁신당” 글귀를 어절 단위로 행갈이해 올린 뒤, 각 어절 앞글자인 ‘비지찌개’를 주황색으로 물들여 강조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