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 만난 노무현 “이 방에 내 찍은 사람 한 명도 없지요?”

한겨레 2024. 4. 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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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61화 후기: 인간 노무현 1
2003년 1월27일 전국순회토론회 첫 개최지인 대구를 방문한 노무현 당선자가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지역인사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대구·경북 지역의 보다 많은 지지를 호소하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지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한번도 권위를 내세우는 걸 본 적이 없다. 항상 솔직하고 소탈하고 인간적이었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생각이 확고해 청와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직원에게도 하대하지 않았다(모 대통령은 초면인 사람에게 대뜸 말을 놓는 것을 TV에서 두 번 봤다). 마음속 깊이 인간에 대한 사랑, 꽃과 생명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과거 이런 대통령이 있었을까? 노 대통령의 이런 인간적 면모 때문에 사람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노 대통령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 같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내가 목격한 몇몇 장면들을 기록에 남긴다.

2003년 초 대통령 취임 전 노무현 당선자가 대구를 방문해 재계 인사 30여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회의장에 들어와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노 당선자가 말했다. “이 방에 내 찍은 사람 한 명도 없지요?” 이런 것이 노무현 스타일이다. 다른 대통령 같으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해도 겉으로 표시하지 않고 점잔을 부릴 텐데… 이것은 간담회에 참석했던 김동구 금복주 회장(전 대구 상공회의소 회장)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2003년 5월2일(금) 아침 7시 관저 조찬. 당시 보수언론은 걸핏하면 대통령 말 줄이라고 요구했다. 어제 TV 토론이 화제가 됐다. 유인태 정무수석이 “청와대에서 말 제일 많은 수석이 대통령 말 줄이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희상 비서실장이 “말도 생각인데 어찌 줄이느냐”고 했고 노 대통령은 “이것저것 챙길 것이 너무 많아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가 말이 나온 김에 한 말씀 드리겠다고 하고 이렇게 직언했다(나는 2002년 8월 노무현과의 첫 만남에서 말 줄이라고 조언을 했었다). “이것저것 챙기는 것은 아무 문제없다. 그러나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너무 길게 말하는 것은 좋지 않고 짧게 하는 게 좋다. 일본 속담에 ‘위 8부에 의사가 필요 없다’(위를 8할만 채우면 배탈날 일이 없다)는 말이 있다. 말을 100 만큼 하고 싶어도 80 정도 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노 대통령은 빙긋이 웃으며 듣고 있었다. 박주현 수석이 자기도 말이 많다고 하면서 “변호사의 공통점인가?”라고 말했다.

2003년 5월1일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MBC)에서 열린 ‘100분 토론’에 출연한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사료관 제공

5월20일(화) 12시20분 백악실 오찬에 고건 총리, 문희상, 나종일 실장과 내가 참석했다. 노 대통령이 정치권에서 연설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 찬조 연설자로 불려 다니던 이야기를 했다. “강릉의 최욱철 대 김명윤의 선거 대결에 내가 가서 명연설로 최욱철의 당선에 일조했는데 정작 나는 낙선했다. 그러나 부산이라는 사지에 출마했던 용기가 오늘의 대통령을 낳았다”고 말했다.

5월27일(화) 9시 국무회의 직전 문희상 비서실장을 대신해 대통령을 모시러 갔다. 노 대통령이 얼굴 화장을 받으면서 서갑원 비서와 대화하고 있었다. 권오규 정책수석의 작년 조달청장 재직 때 회계 실수 건인데 별 문제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서갑원 비서가 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公私 두 개의 호주머니를 차고 다니며 항상 회계를 엄격히 분리했던 이야기를 했다. 노 대통령이 “내가 성질이 별난 데가 있어서”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 소탈·솔직하고 탈권위적
허드렛일 맡은 직원에도 반말 안해
보수언론이 ‘말 많다’ 비판하자
“챙길 게 많아 많이 할 수밖에…”

변호사 시절부터 개인 돈과 공금
엄격 분리…“성질이 별난 데가 있어서”

저서 ‘노무현이 만난 링컨’ 두고
“거의 표절”이라 할 정도로 겸손

“대통령 못 해먹겠다” 여러 번 들어
권력욕 없는 이에게 권력 주어져야
그런 관점에서 평가땐 노무현이 최선

8월25일, 참여정부 출범 6개월을 맞아 매일경제신문에서 장관, 참모 인기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 대답자들은 재계 인사들과 상경계열 교수 중 보수적 학자 일색이었으니 당연히 편향된 답변이 예상됐다. 아니나 다를까 인기 있는 장관들은 거의 관료 출신들이었고, 교체 대상 장관, 참모는 대부분 비관료 개혁파들이었다. 나는 그 조사에서 교체 대상 참모 1위의 영광을 차지했다. 다음 날인 8월26일(화) 아침 7시 관저 조찬에 금감위 이정재 위원장, 김석동 국장, 권오규, 조윤제와 내가 참석했다. 신용불량자, 금융감독기구, 한국투자증권, 대한투자증권(현 하나증권)에 관한 보고가 끝난 뒤 내가 노 대통령에게 어제 매경에 난 ‘교체 대상 장관, 참모’ 기사를 읽었는지 문의했다. 노 대통령이 “안 읽었어요. 만일 읽었더라면 매경 인터뷰 안 할 걸 그랬어요. 그런 식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데가 어디 있어요” 하며 흥분했다. 이어서 조윤제 경제보좌관이 노 대통령이 쓴 책 ‘노무현이 만난 링컨’(학고재, 2001)에 대해 문의하니 노 대통령이 답했다. “거의 표절이지요.” 노 대통령은 항상 지나치게 겸손하고 솔직했다. 내가 그 책을 읽었지만 전혀 표절이 아니다.

9월9일(화) 어제 노 대통령이 부산 가려고 성남공항에 도착했을 때 활주로에 헬기가 4대나 대기중이었다. 이 장면에 대해 노 대통령이 말했다. “대통령 한명 움직인다고 어지간히 야단들이다. 사고 나서 도중에 그만둬도 뭐 큰일 아닌데. 언젠가 기자들한테 가서 대통령 못하겠다고 얘기해버릴까 보다.” 고건 총리와 문희상 비서실장이 기겁해서 “행여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하면 안 됩니다”라고 만류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가 욕을 많이 먹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이 권력을 놓아버릴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최근 교육방송(EBS) ‘위대한 수업’에서 영국 런던대 정치학 교수 브라이언 클라스(권력 연구의 권위자)는 이렇게 말했다. “권력에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 최선이다. 최악의 지도자는 권력에 집착하고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의 대통령을 평가하면 최선은 노무현, 최악은 이승만, 박정희가 된다. 이승만, 박정희는 헌법을 고치고 또 고치며 권력 연장에 혈안이었다.

9월17일(수) 10시40분 대통령의 전남 지역 언론 회견에 배석했다(영빈관). 정몽준에 관한 질문에 대통령이 답했다. “다시는 동업하고 싶지 않다. 사물을 보는 눈이 나하고는 다르다. 마지막 날 유세에 정몽준이 정동영, 추미애를 연단에 못 오르게 막았다. 내가 두 사람에게 왜 아래에 있느냐 올라오라고 하자 정몽준이 김민석, 신낙균까지 올려 물타기 했다. 민주당 유력자의 99%가 정몽준과의 ‘공동정부’ 안에 대해 나더러 받으라고 주장하더라.”

9월22일(월) 9시 수석회의에서 이병완 홍보수석이 동아일보의 권양숙 여사 관련 악의적 허위보도(부산 장백아파트 미등기 전매)에 대해 어제 춘추관에 나가서 앞으로 홍보수석실은 동아일보 취재에 불응한다고 통보했다고 보고했다. 노 대통령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보도에는 홍보수석실만이 아니고 청와대 전체의 취재거부인 것처럼 났던데, 보도된 대로 하지요.”

9월23일(화) 12시 대통령, 총리 등 6인 화요 오찬(백악실). 실업교육의 문제점이 화제에 올랐다. 내가 미국 유학 시절 보스턴의 술집에서 트럭 운전사와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트럭 운전사는 내가 하버드에서 공부하는 것에 연민을 표시하며 자기는 트럭 운전해서 돈 잘 벌고 행복하다고 자랑했다. 나갈 때 술값까지 그 운전사가 내줬다.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말하니 노 대통령이 말했다. “한국에서는 모두 다 일류대학, 좋은 과 나와서 머리 쓰는 일만 하려 하니 전 국민을 공인회계사 만들든지 하고, 손쓰는 일은 모두 외국인 들여다 쓸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어제 실업고 교육의 위기를 이야기하던데, 실업고는 사실 문 닫아야 하는데 교사들 밥그릇 문제 때문에 개혁이 안 된다. 이런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데 도저히 이야기 못하고 참았다.”

이어서 노 대통령이 자녀의 진로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들, 딸 교육 마음대로 안 된다. 아들(건호)은 수산대나 해양대 가기를 원했는데, 동국대 화학과 들어갔다가 군대 갔다 오더니 법학과로 옮기겠다고 재수를 했다. 수능시험 성적이 아주 잘 나와 집 가까운 성대 법대로 갔으면 했는데 연대로 갔다. 부전공 비슷하게 컴퓨터를 열심히 하더니 회사에서 요즘 해결사 노릇 하고 있다. 딸(정연)은 영남대 유홍준 교수 있는 학과에 갔으면 했는데 딴 데로 갔고…” 나중에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광화문 현판 글씨를 박정희에서 정조 글씨로 바꾸면서 노 대통령을 정조에 비기자 언론이 유 청장을 대통령에게 아첨한다고 비판했다. 유 청장이 나에게 말했다. “대통령이 나에게 아첨해야지 왜 내가 대통령에게 아첨하나?” 맞는 말이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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