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역사 속 오늘] 1965년 4월8일, 경향신문 이향백 기자 간첩혐의 구속 발표

장슬기 기자 2024. 4. 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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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4월8일 중앙정보부가 이향백 경향신문 체육부장을 간첩 혐의로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중앙정보부는 같은날 오전 이남백이라는 가명으로 경향신문 체육부장 이향백 외 3명을 간첩혐의로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손충무 전 경향신문 기자의 2005년 10월 한국디지털뉴스 칼럼을 보면 이향백의 동생 이성백(언론보도엔 이문백으로 표기)이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됐다가 1965년 형 이향백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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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8일 경향신문 사설 정부와 언론의 관계 언급 "정부-언론 토론 위한 공통의 광장 마련해야"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1965년 4월8일 동아일보 사설. 가장 오른쪽이 이남백(실명 이향백) 기자

1965년 4월8일 중앙정보부가 이향백 경향신문 체육부장을 간첩 혐의로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중앙정보부는 같은날 오전 이남백이라는 가명으로 경향신문 체육부장 이향백 외 3명을 간첩혐의로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같은날 경향신문 기사에는 K신문사라고만 표기됐다.

손충무 전 경향신문 기자의 2005년 10월 한국디지털뉴스 칼럼을 보면 이향백의 동생 이성백(언론보도엔 이문백으로 표기)이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됐다가 1965년 형 이향백 앞에 나타났다. 이성백은 처음에 “한국전쟁 때 일본으로 도망가 재산을 모아 귀국했다”고 말했고 이향백은 그 말을 믿고 1년 가까이 한집에서 살았다.

그러다 중간에 동생 이성백이 평양에서 내려온 간첩이란 사실을 알았는데 가족들은 자수를 권유하지 않았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서울 성동구 신당동 이향백 집 근처에서 평양으로 가는 전파를 탐지해 수사망을 좁히고 있었고 어느날 이성백의 옷 안에 있던 난수표를 세탁소에서 발견해 신고했다. 3주간 잠복하던 중앙정보부가 일가족을 체포해 경향신문 기자의 간첩혐의 사실이 언론에 알려졌다.

중앙정보부 조사에 따르면 동생 이성백은 1960년 7월 경향신문 운영권자를 포섭해 북괴 노선에 따라 신문 논조와 편집태도를 조종할 것을 지령받고 운영난에 빠진 경향신문사 실태를 북괴에 보고했다. 신문사 포섭자금으로 조총련계를 통한 자금의 투입시기, 포섭대상자 선정 등을 이성백을 통해 북괴에 무전보고했다. 이성백의 처남과 매부 등도 이향백과 함께 체포됐다.

▲ 1965년 4월8일 경향신문 7면 기사

경향신문은 박정희 정권의 탄압의 대상이었다. 이준구 당시 경향신문 사장을 위반 혐의로 구속시켰고 신문사는 여러 기업을 거쳐 5·16장학회(정수장학회)에 넘겨졌다.

1965년 4월8일 경향신문 사설 <신문주간을 맞는 우리의 감회>에도 정부를 향한 조심스러운 태도가 잘 드러나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제9회 신문주간을 맞이해 4월6일 신문회관에서 “우리 신문의 특징은 자유와 독립을 위한 부단한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항거의 전통”이라고 한 발언을 전하며 경향신문은 “8·15 후 자유당 10년 집권시에도 언론은 정부와 여전히 공통의 광장을 못갖고 정부는 언론을 적대시했으며 언론은 정부에 대해 불신 공격의 논조를 멈추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적대적 태도에 대해 유화적인 메시지도 보냈다. 경향신문은 “우리 신문기업이 좀더 안정돼있다면 지금보다 더 여유있는 자세로 보도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당국은 한국신문이 가지는 센세이셔널리즘의 원인을 언론인 개개인의 인간성의 차원에서 찾지 말고 한국신문이 처해있는 여건 속에서 찾는 현명을 가져주기 바라고자 한다”고 했다.

대통령과 언론의 소통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경향신문은 “우린 이미 여러번 대통령의 정기 기자회견을 요구한 바 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요 정책에 대한 토론의 기회를 마련해 정부와 국민간 의사교류가 지금보다 더 완화되기를 바란 바 있으나 아직도 실현을 못 보고 있다”며 “정부와 언론간 경원현상이 없고 지금보다 친근하게 토론을 위한 공통의 광장이 마련된다면 언론이 정부시책을 반대하더라도 그 비판에는 결코 과장이나 비방은 없을 것기오 오보나 오해도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 1965년 4월8일 경향신문 사설 일부

※참고문헌
한국디지털뉴스, 41년만에 빨갱이 누명 벗은 군상 기사의 진실
1965년 4월8일자 동아일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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