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빨대, 이번엔 택배 과대포장… 환경부의 습관적 '유예'

이지원 기자 2024. 4. 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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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이커머스 급성장의 그림자
끊이지 않는 택배 과대포장
환경 악영향 · 소비자 불편 증가
환경부 6년 전부터 규제 논의
시행 50여일 앞두고 유예 결정
정책 미루느라 바쁜 환경부
거꾸로 가는 환경정책 괜찮나

"박스 버리는 게 일이다." 온라인 쇼핑 이용객들 사이에서 나오는 볼멘소리다. 속도전을 펼치는 이커머스 업체들이 크기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제품을 포장해 배송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생활폐기물 중 택배 포장재 폐기물이 30%가량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다. 환경부가 4월 30일부터 택배 과대포장을 규제한다는 계획을 세웠던 이유다. 문제는 시행을 50여일 앞두고 환경부가 '계도기간'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환경부가 4월 30일부터 시행 예정이던 택배 과대포장 규제를 사실상 유예했다.[사진=연합뉴스]

"샐러드 드레싱을 주문했는데 빈 공간이 (제품의) 10배쯤 되는 큰 상자에 배송됐다." "주문한 립스틱이 과한 고급 상자와 더스트백에 담겨왔다." "한 쇼핑몰에서 제품 5가지를 주문했는데 각각 5개 박스에 나눠서 배송됐다."

온라인 쇼핑시장이 227조원(통계청·2023년 기준) 규모로 커지자 그림자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중엔 과도한 택배 포장 문제도 있다. 일부 이커머스 업체가 편의상 혹은 마케팅을 위해서 과대포장을 일삼고 있어서다.

실제로 택배 등 포장재 폐기물은 전체 생활폐기물의 3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1인당 연간 택배 이용 건수가 2018년 49.1회에서 2022년 80.2회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니 택배 과대포장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택배 과대포장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규제' 밖에 있어서다. 기존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환경부령)'에 따르면 제품의 제조·수입·판매업자는 재활용이 쉬운 포장재를 사용하고, 불필요한 포장을 줄여야 한다. 예컨대 가공식품이나 화장품의 경우, 포장 용기 대비 빈 공간의 비율을 15% 이내로 하고 포장 횟수는 2회 이내로 해야 한다.

하지만 택배(수송 포장재)는 그동안 이 규칙의 밖에 있었다. 빈 공간이 제품의 10배쯤 되는 과대포장이 가능했던 이유다. 문제를 인식한 환경부는 2018년부터 택배도 규제 대상에 포함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왔다.

2022년엔 관련 규칙도 개정했다. 택배 포장 시 빈 공간 50% 이하, 포장 횟수 1차 이내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위반 시엔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하도록 했다.[※참고: 규제 대상은 온라인쇼핑몰·홈쇼핑 등 유통업체와 택배업체 등이다.]

문제는 환경부가 6년간 준비해온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었다는 점이다. 계획대로라면 오는 4월 30일부터 택배 포장을 규제해야 하지만, 환경부는 50여일 앞둔 지난 3월 7일 "2년간 계도기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시행은 하되 2년간 단속이나 과태료 부과는 하지 않겠다는 건데, 사실상 제도 유예라는 비판이 나온다.

환경부는 "업체들이 (제도에 맞춰) 포장·물류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만큼 계도기간을 거쳐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2년 후엔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까. 짚어볼 점이 적지 않다.

■ 문제점➊ 잘못된 시그널 = 언급했듯 이 제도는 2018년부터 논의했다. 2020년엔 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으니 준비 기간은 4년에 달했다. 몇몇 업체는 아직도 "제품 크기가 제각각이라 빈 공간을 줄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불평을 내놓지만, 제도 시행에 맞춰 준비해온 기업들도 적지 않다.

SSG닷컴이 박스 크기를 다양화해 빈 공간을 50% 이하로 줄인 건 대표적 사례다. SSG닷컴 관계자는 "SSG닷컴 백화점몰의 경우 2020년부터 택배 박스를 기존 8가지에서 14가지로 다양화해 빈 공간을 줄이는 등 제도에 맞춰 준비해 왔다"고 설명했다.

결국 '시간'이 아닌 제도 당사자인 업체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제도를 유예한 환경부의 결정은 업체들에 '나쁜 시그널'만 줄 수 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 팀장은 "'빈 공간 50%'란 규정 자체가 환경부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닌 관련 업체들과의 협의를 거쳐 만든 결과"라면서 "계도기간을 갖겠다는 건 환경부가 정책을 포기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문제점➋ 허술해진 제도 = 중심을 잡고 정책을 추진해야 할 환경부가 '업계의 목소리'에 지나치게 귀 기울이면서 제도가 누더기가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환경부는 택배 과대포장 관련 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2020년)하면서 '뽁뽁이'라 불리는 플라스틱 완충재를 종이 완충제로 교체하고, 아이스팩을 친환경 소재로 전환하는 내용도 함께 담았다. 하지만 2022년 실제 규칙 개정안에선 이 내용이 빠졌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부가 업체들의 반발을 고려해 뽁뽁이나 아이스팩 규제는 빼고 규칙을 개정했다"면서 "플라스틱 포장재를 친환경 소재로 전환하려던 업체들로선 굳이 교체할 필요가 사라진 셈"이라고 지적했다. 환경부가 환경보다 '업계'의 목소리에 방점을 찍으면서 제도의 당초 목적이 흐릿해지고 있다는 거다.

■ 문제점➌ 거꾸로 가는 환경정책 =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환경부의 정책이 한두개가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일례로 환경부는 2022년 6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던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6개월 연기한 데 이어 제주·세종 두 지역에서만 시범사업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시범사업 10개월 차인 지난해 9월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지자체에 권한을 맡기는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사실상 제도를 폐지했다.

환경부의 환경정책이 거꾸로 간다는 비판이 나온다.[사진=뉴시스]

'매장 내 종이컵·플라스틱 빨대 사용 규제'도 유야무야됐다. 이 제도는 2022년 1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환경부가 단속을 1년 유예한 데 이어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가 택배 과대포장 규제까지 계도기간을 두기로 결정하면서 환경정책이 뒷걸음질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문제점➍ 소비자는 어디에 = 환경부가 기업들의 눈치를 보면서 정작 소비자의 의견은 듣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가 지난 3월 조사한 '택배 과대포장 규제 단속 유예' 관련 설문조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소비자의 79.3%는 "(택배 과대포장 단속 유예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중 "적극 반대한다"는 응답자는 49.9%에 달했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측은 "2년간 계도기간이 흐른 후에도 기업들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 또다시 유예할 것인지 의문"이라면서 "10년이든 20년이든 기업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준다면 우리는 탄소중립 사회로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환경부는 2년 후 어떤 결정을 내릴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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