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비즈니스 팬덤에 필요한 것은?

정양범 매경비즈 기자(jung.oungbum@mkinternet.com) 2024. 4. 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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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으로 잘 알려진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고전(古典)을 이렇게 유머로 정의하였다. “제목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막상 끝까지는 읽지 않은 책이다.” 시험에 자주 나오므로 또는 교양인의 필독서라 하니 읽으려고 시도했지만 중간에 포기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죄와 벌>이나 <전쟁과 평화> 같은 고전은 읽다가 중단하고, 대강의 줄거리만 알아내고 덮기 일쑤이다. 그러나 몇 백 년 전에 나온 책일지라도 지금 읽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명문장이 나오기에 고전으로서 대우받는 것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평생 딱 두 권의 책을 썼다. 하나는 유명한 1776년의 <국부론>이고, 다른 하나는 1759년의 <도덕 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이다. 그는 경제학자 이전에 철학자였다.

그는 <도덕 감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 하지만, 누구나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보면 그에 공감(Sympathy)하는 본성이 있다. 이 ‘공감본성’이 사회질서와 윤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인간은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일단 공감한 다음, 한 걸음 물러나 그가 한 행동이 과연 우리도 선택할 만한 좋은 행동이었는지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사회규범과 윤리를 하나하나 정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인터넷과 디지털 플랫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타인의 기쁨과 행복에 대한 공감, 타인에 대한 호감 및 응원 등은 어느 사회에나 사회규범과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특히 연예인, 운동선수 또는 작가에 대한 호감을 가진 사람은 ‘팬(Fan)’이라 했고, 정치인을 따르는 사람은 추종자, 지지자 또는 후원자라 했다.

팬(Fan)은 열광자를 의미하는 ‘Fanatic’에서 나왔고, ‘교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라틴어 ‘Fanaticus’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매스컴의 발달로 팬들은 오프라인에서 대규모로 만날 수 있었다. 오빠부대, 노사모 또는 박사모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소셜 플랫폼의 발달로 그들은 더 쉽게 연결되고, 더 강한 연대감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자연히 그들은 더 이상 팬이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집단으로 부상하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팬덤(Fandom)이다. 접미사 ‘dom’은 지위, 영토 또는 집단을 의미한다. 왕이 지배하는 나라는 킹덤(Kingdom)이고, 열성 팬들의 나라는 ‘팬덤’이다. 18세기 아담 스미스가 말한 ‘공감본성’은 21세기에 팬덤으로 확대 발전된 것이다.

이제 열광하는 팬덤 하나 없는 연예인과 정치인은 성공하기도 힘들어졌다. 심지어 경제 분야에서도 팬덤의 확보는 마케팅의 목표가 되었다. 팬덤은 연예인 뿐만 아니라 특정 인물, 제품, 브랜드 또는 특정 활동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며, 때로는 편향된 시각으로 몰입하는 집단이다. 그들의 영향력을 반영하여 팬덤정치, 팬덤경제, 팬덤문화, 팬덤마케팅, 팬더스트리(Fandustry) 등의 파생어가 줄줄이 나오고 있다. 팬덤은 정치적, 심리적, 문화적 호감과 성향을 공유하므로 그들의 연대감과 맹목적 감싸기는 매우 강하고, 경쟁집단에 대한 배타성과 거부감 또한 강렬하다. 아담 스미스가 말한 ‘공감’은 합리적 판단이 뒤따르는 이성적인 것이었지만, 팬덤에는 때론 비이성적이고 무조건적인 추종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팬덤은 ‘합리적 이유가 결여된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팬덤은 ‘합리적 경제인’을 전제로 하는 경제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과학적 분석으로도 이해가 안된다. 특히 요즘 정치에서의 팬덤은 오직 내편만 감싸는 아주 강력한 배타주의를 보이고 있으니, 상대에 대한 ‘공감본성’은 작동할 여지가 없다. 어느 정치학자에 따르면, 현재의 팬덤정치는 정당제에 근거한 민주정치를 무력화시킨다고 한다. 정당과 광범위한 국민의 지지가 없더라도, 일부 극성스러운 팬덤만 확보하면 정치판에서 우뚝 설 수 있는 풍토를 한탄하는 것이다. 정치적 팬덤의 맹목적인 추종과 옹호가 타방에 대한 혐오로 번지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들의 극단화와 권력화를 우려하는 학자의 견해에 공감한다.

한편, 유명 연예인 팬덤이 가진 문화적 또는 경제적 효과는 막대하다. 보도에 따르면, 2024년 세계 최고의 팬덤은 BTS(방탄소년단)이다. K-Culture는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국내 유명 트롯가수의 팬덤은 몇 십년 동안 꼼짝 않았던 그들의 은행구좌까지 이전시키고 있다고 한다.

기존 ‘소비자 행동론’에서는 충성고객의 확보가 마케팅의 핵심이었다. 즉, 소비자가 신제품이나 브랜드를 인지하고 호감과 확신을 갖게 한 다음, 구매하고 사용하면서 제품과 브랜드를 선전하고 옹호하게 만드는 것이 마케팅 활동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팬덤경제’에서는 ‘충성고객’만으로는 2% 부족하다. 충성고객을 팬덤으로 만들어 그들의 로열티(충성도)가 절대로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충성고객과 팬덤의 차이는 ‘의리’이다. 충성고객은 타사의 조건이나 가격, 성능 등 경제적 이점이 제시된 경우에는 거기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팬덤은 자신에게 손해가 오더라도 ‘의리’를 지켜 움직이지 않고 충성한다. 더 나아가 자발적으로 사용 후기나 리뷰를 남기고, 콘텐츠를 생성하거나 또는 내부에 쓴 소리를 하며 ‘프로슈머(Prosumer)’가 된다. 프로슈머란 ‘Productive Consumer’의 합성어로, 스스로 원하는 상품을 제시 또는 만들거나, 제작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팬덤이다.

팬덤경제는 경영자에게 또 하나의 숙제를 준다. 어떻게 하면 팬덤과 프로슈머를 확보할 수 있을까?. 특별한 비결은 없다. 모든 소비자를 현자(賢者)로 인정하고, 그들이 합리적 이성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판단하도록 우선 기회를 주고,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진정성으로 대하며, ‘착한 기업’의 가치관을 가지고 그 이미지를 심어 주어야 한다. 만일 예상치 않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경영자는 팬덤에게 숨김없이 솔직하게 소통해야 한다. 진심 어린 피드백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기반 위에서 그들의 쓴 소리를 달게 받는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고객에게는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이 큰 문제가 안 될 수 있었으나, 팬덤에게 양방향 소통은 필수이다.

아담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에는 팬덤 시대에도 딱 맞는 문장이 나오니 고전이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다.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은 무지한 수천명의 요란한 갈채보다 현자(賢者) 한 명의 사려 깊은 인정에 더욱 가슴 벅찬 만족감을 얻는다.”

기업이나 제품의 비즈니스 팬덤은 포퓰리즘 정치인의 팬덤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야 한다. 추종하는 정치인만 무조건 옳다는 식의 맹목적이고 비이성적 몰입과 충성은 비즈니스 팬덤의 속성이 되어서는 안된다. 비즈니스 팬덤은 현자들의 집단이어야 한다. 기업은 그 현자들이 자부심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도록 이성적이고도 월등한 자랑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진의환 매경 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전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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