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조작·변조·표절…‘초전도체’ 스타 과학자의 민낯

곽노필 기자 2024. 4. 8. 09: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곽노필의 미래창
미 로체스터대 랑가 디아스 교수
광범위한 연구 부정행위 드러나
실험실에서 초전도체를 연구하고 있는 랑가 디아스 교수. 로체스터대 제공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세계 최초로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논문을 발표하며 일약 스타 과학자로 떠올랐던 미국 로체스터대 랑가 디아스 교수가 그동안 여러 논문에서 데이터 조작과 변조, 표절 등 심각한 연구부정행위를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

네이처는 뉴스팀이 로체스터대가 독립적인 외부전문가 조사단에게 맡겨 10개월간 진행한 연구진실성 조사 보고서를 확보해, 이를 확인했다고 지난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보고서는 지난 2월8일 작성됐다.

초전도란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기 저항은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점차 감소하다가 특정 온도가 되면 아예 사라진다. 전기저항이 사라지면 에너지 손실 없이 전기를 보낼 수 있어 에너지 이용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초전도체의 또 다른 특성은 자력선을 밀어내는 마이스너 효과다. 이는 자성체(자석)를 공중에 뜨게 할 수 있어 자기부상열차나 정밀계측기, 핵융합로 등 광범위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1911년 영하 269도의 극저온에서 처음 초전도 현상이 발견된 이후 상온 초전도체 개발은 과학계의 숙원 과제로 남아 있다.

네이처, 재현불가·데이터 처리 등 문제로 논문철회

디아스 교수는 2020년 첫 논문에선 탄소와 황, 수소로 이뤄진 화합물(CSH)에서, 2023년 두 번째 논문에선 루테튬과 수소 화합물(LuH)에서 상온 초전도 현상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초전도 현상이 나타났다고 제시한 온도는 각각 15도, 21도였다. 미국 타임지는 2021년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찬사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0년 논문은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2023년 논문은 자료 출처와 데이터 처리 방식이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각 논문 철회 조처를 받았다.

2020년 그의 초전도체 논문을 ‘올해의 10대 과학 성과’로 꼽았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2023년엔 그의 두 번째 초전도체 논문 발표 철회와 한국 퀀텀에너지연구소의 LK-99 상온 초전도체 논란 소동을 들어 상온 초전도체 연구를 ‘올해의 실패’ 사례로 꼽았다.

앞서 네이처는 2020년 첫 번째 논문 제출 당시 그와 함께 일했던 학생들은 초전도성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당시엔 대학원생으로서 지도교수를 신뢰했다고 말했다고 3월 보도했다.

조사단은 보고서에서 디아스 교수에 대해 제기된 16개 혐의를 조사한 뒤, 각각의 경우에서 연구 부정행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로체스터대는 현재 디아스의 교수직 박탈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 네이처에 발표한 상온 초전도체를 만들기 위해 다이아몬드로 고압 압착하는 모습. 그러나 이 초전도체는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논문이 철회됐다. 로체스터대 제공

조사단 “강의 금지시키고 연구비 주지 말라”

조사 보고서의 내용은 디아스 교수가 지난해 12월 대학 쪽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진행 과정에서 드러났다. 디아스 교수는 지난해 8월 대학 쪽이 그를 강의에서 배제하고 연구실 출입을 금지하자, 이의를 제기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로체스터대가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미 국립과학재단(NSF)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재단은 2021년 디아스 교수에게 79만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한 바 있다.

전체 124쪽에 이르는 조사 보고서는 2편의 네이처 논문을 포함해 지금까지 철회된 그의 논문 4편에서 디아스가 저지른 부정행위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조사단은 조사 과정에서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 이메일, 실물 노트북 등을 확보하고 디아스와 그의 전 제자 등 관련자 10명과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최소 50회 이상 만나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마이스너 효과’입증 위해 핵심 데이터 조작

보고서는 디아스에게 조작한 데이터가 아닌 원시 데이터 공개를 거듭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사단은 디아스의 전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연구실 하드 드라이브에 있는 원시 데이터를 찾아냈으며, 이 데이터에서 전기 저항 데이터의 불규칙한 하락과 상승을 감추기 위해 선택적으로 많은 부분을 누락시켰음을 확인했다.

보고서는 가장 심각한 부정행위는 마이스너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루테튬 화합물 데이터를 조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조작된 마이스너 효과 데이터는 초전도체 논문이 채택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디아스는 네이처의 논평 요청에 답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변호사는 소송에 제출된 문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에서 디아스는 “비판과 비난의 와중에 불가피하게 우리 연구의 근본적인 무결성과 과학적 타당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주장했다.

조사단은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증거는 디아스를 신뢰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며 앞으로 디아스에게 강의를 맡기거나 디아스가 공공 또는 민간 연구자금 지원을 받도록 허용해선 안된다고 권고했다.

디아스는 스리랑카 출신으로 콜롬보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이후 2013년 미국 워싱턴주립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17년 로체스터대 교수로 임명됐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도 표절 의심을 받고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의 논문 중 지금까지 9편이 철회됐다.

그는 2020년 자신의 초전도체 특허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언어슬리 머티리얼스(Unearthly Materials)라는 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