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리포트]나주 이전 10년 '한전'… "만년 과장으로 남겠습니다"

최유빈 기자 2024. 4. 8.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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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리포트-공공기관 지방이전 명과 암] ② 나주 인구 늘었다지만…직원 불만 여전
[편집자주]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에 따라 수도권에 위치한 153개 공공기관이 10개 혁신도시로 이전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목표로 했던 지역 경제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 수도권에 집중된 경제력 및 인구 분배 효과가 미흡한 것을 증명하는 지표들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오히려 수도권 집중현상이 더 심화하는 양상이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그림자를 들여다봤다.

한국전력공사가 나주로 본사를 이전한지 10년이 지났다. 사진은 한전 나주 본사 조감도. /사진=머니투데이DB


글 쓰는 순서
①지방으로 간 공공기관… "지역 경제 살아났나요?"
②나주 이전 10년 '한전'… "만년 과장으로 남겠습니다"
③부산 생활 19년차 '거래소'… 처참한 금융중심지
④'부산行' 택한 산업은행, 살림 쪼그라들고 경쟁력 하락 우려
⑤10명 중 8명 "본사 가기 싫어"… LH 직원 처우 나빠졌다
⑥부산-서울 잦은 출장… 피로도 높은 HUG 직원들
⑦고시원에 상사와 동거 중… '신의 직장' 공공기관 직원



한국전력공사가 서울 삼성동에서 전남 나주로 본사를 옮긴 지 10년이 지났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심화하는 인구 및 경제력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였지만 현재까지도 이전 효과에 의문표가 따라붙는다. 타향살이에 지친 직원들은 금요일 저녁마다 서울행 KTX에 몸을 싣고 이마저도 견디기 어려우면 이직을 택한다. 연고지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승진 포기도 불사하고 있다.


'나베리아'에서 살아남기


한전 나주 본사 조감도. /사진=머니투데이DB
한전 직원들은 나주를 '나베리아'라고 부른다. 나주와 시베리아를 합친 단어로 눈이 많이 내리고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 특성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조환익 전 한전 사장은 2015년 나주 이전 직후 출입기자단과 만찬에서 건배사로 "나베리아를 나와이로!"라고 외쳤다. 나주를 시베리아에서 하와이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전 등 16개 공공기관들이 이전하면서 나주 혁신도시 인구는 늘었다. 혁신도시 조성 전인 2013년 말 8만7000명까지 떨어졌던 나주시 인구는 외지인 유입으로 지난해 11만7000명으로 증가했다. 한전 본사 직원 수도 2014년말 1500명에서 현재는 2000명을 넘어섰다.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나주의 주말은 한산하다. 직원들이 금요일마다 가족들이 있는 타지로 떠나기 때문이다. 나주에서 서울까지 KTX를 타면 약 2시간20분이 소요되는데, 서울행 KTX는 일주일 전부터 예매 경쟁이 치열하다.

한전 나주 본사에 근무하는 A씨는 "유령도시라고 불렸던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주말이 되면 사람이 현격히 준다"며 "나주에서는 여가로 즐길 거리가 별로 없기 때문에 주말에는 차를 몰고 광주 등 타지로 가는 직원이 많다"고 말했다.

미비한 정주 요건으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타향살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진다. 또 다른 한전 직원 B씨는 "나주는 기반 시설이 별로 없어 식당, 피트니스센터, 영화관 등 어디를 가도 회사 사람뿐"이라며 "이런 점 때문에 젊은 직원 중 이직을 고려하는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사택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B씨는 "회사에서 사택을 제공하지만 한 집에서 직장 상사와 지내는 게 불편해 되도록 방 밖으로 안 나오려고 한다"며 "사택에 사는 것을 상사들이 알기 때문에 저녁 술자리에 자주 불려가는데 퇴근 후 직장 사람들을 만나는 게 업무의 연장선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순환 근무에 '승진 포기자' 속출


서울 중구 한전 서울본부. /사진=뉴스1
일부 한전 직원은 순환 근무를 피하기 위해 승진을 포기한다. 간부 진급 시 전국 순환 근무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편차가 있지만 순환 근무 대상자가 되면 약 2년마다 지사를 옮겨야 한다. 본부 기준으로는 6~9년이다.

한전은 대졸(4급) 공채 시 전국을 순환하는 '전국권'과 해당 지역에 10년간 의무 근무하는 '지역전문사원'을 분리해 채용한다. 전국권으로 입사한 직원은 입사 초 연고지에 상관없이 오지에 배정받는 경우가 많다. 서울, 경기, 부산 등 인기가 많은 지역으로 발령받기 위해서는 '마일리지'가 필요하다. 산간 오지에서 근무하면 더 많은 점수를 쌓을 수 있다. 통상 신입사원이 수도권으로 입성하기 위해서는 5년 이상이 걸린다. 지역전문사원은 입사 후 해당 본부에서 10년간 근무하지만 3급 승진 시 의무가 해제돼 전국 순환 대상이 된다.

원하는 본부에서 근무를 시작하면 이후부터 지역 내에서 순환할 수 있다. 하지만 과장에서 차장으로 진급하면 다시 전국 순환 근무를 해야 한다. 순환 근무를 피하기 위해선 간부 승진 시험을 의도적으로 보지 않으면 된다. 한전에서 만년 과장 퇴직자가 많은 이유다.

한전 직원 C씨는 "부장을 달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니 굳이 차장으로 승진해 전국 순환 근무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며 "말년 과장으로 지내면 가족과 떨어질 필요도 없고 일정 기간마다 거주지를 옮겨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B씨는 "마일리지나 인사고충제도를 활용해 원하는 본부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정년까지 다니는 직원들이 꽤 있다"며 "직원들끼리 순환 근무에 대한 보상으로 연봉을 1000~2000만원은 더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고 털어놨다.

수도권 쏠림 대안으로 한전은 지역 인재 채용을 확대할 전망이다. 교육부는 지난 1월 '지방대학및지역균형인재육성에관한법률'(지방대육성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 중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이 아닌 비수도권에 소재한 공공기관은 신규 채용인원의 35%를 지역 인재로 채용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담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전국에 사업장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비선호 사업장에서 근무해야 한다"며 "순환 제도가 없으면 비선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그곳에서만 일해야 하기 때문에 형평성 차원에서 순환 근무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유빈 기자 langsam4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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