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병·정, 수원 ‘공성전’의 핵심 [데이터로 본 총선 ⑧]

문상현 기자 2024. 4. 8.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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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선거구(지역구)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구·자산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번 총선에서 눈여겨봐야 할 주요 선거구를 심층 분석했다.

[데이터로 미리 보는 2024 총선 - ⑧ 경기 수원병·정]

때로는 특정 선거구(지역구)가 한 사회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곤 한다. 〈시사IN〉은 도시 데이터 분석가 신수현씨와 함께 이번 총선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지역구를 선정해 심층 분석했다. 각 선거구를 행정동 단위뿐만 아니라 투표구 단위로 분석하며, 개별 선거구의 개표 결과가 향후 한국 정치와 사회에 미칠 영향을 살펴봤다.

3월14일 경기도의회에서 공약 발표를 하는 수원 지역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후보들. 위 왼쪽부터 국민의힘 김현준(갑), 홍윤오(을), 방문규(병), 이수정(정), 박재순(무), 아래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승원(갑), 백혜련(을), 김영진(병), 김준혁(정), 염태영(무). ⓒ연합뉴스

국회 다수당과 그 규모를 결정하는 곳이 사실상 경기도다. 이 지역에서의 선전이 총선 승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큰 광역자치단체다. 인구가 1300만명이다. 전체 의석 300석 가운데 5분의 1, 수도권 122석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60석’이 이곳에 몰려 있다.

경기도의 핵심은 수원이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덩치가 크다. 도청을 비롯한 주요 공공기관과 삼성전자 본사가 수원에 있다. 경기도 정치·행정·경제의 중심, 경기도 ‘정치 1번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수원과 함께 ‘반도체 벨트’로 묶이는 경기 남부권 화성·평택·용인·이천 등과 생활권을 직간접적으로 공유해 이들 도시에 주는 영향력도 크다. 국회의원 선거구도 5곳(갑·을·병·정·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경기도 선거의 시작과 끝에서 수원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4년 전 제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경기도 전체 59석(제22대 총선은 60석) 중 51석을 확보했다.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차지한 의석은 7석에 그쳤다(나머지 1석은 정의당). 경기도는 과거 도농 복합 지역이 많아 보수세가 강한 지역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제19대 총선부터 여야가 확보한 의석수 격차가 점차 벌어지면서 민주당 쪽으로 기울다가, 제21대 총선에 이르러서는 의석수가 역대 최대 규모로 벌어졌다(민주당 51석 : 국민의힘 7석). 지난 두 차례 총선에서 민주당은 수원 5개 지역구를 모두 석권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경기도 탈환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전패한 수원을 핵심 전장으로 삼고 승부수를 띄웠다. 국민의힘은 ‘선(先)험지 공천, 후(後)양지 공천’ 방식을 택했는데, 험지 공천을 통해 가장 먼저 진지를 구축한 곳이 수원이었다. 수원 ‘공성전’으로 가깝게는 경기 남부권부터 멀게는 서울까지 수도권 전반에 영향력을 확대해, 지난 총선에서 대구·경북으로 밀렸던 전선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었다.

본격적인 수원 공성전을 앞두고서는 정부와 당 차원의 ‘지원과 보급’이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지원 논란 속에 3월27일까지 23차례 민생토론회 중 9차례를 경기도에서 열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선거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선거유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을 기준으로 수원을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방문했다(6회).

민주당은 수성 채비에 나섰다. 지난 4년간 텃밭을 일군 현역의원 프리미엄, 또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유권자 지형 등을 활용해 국민의힘의 공세를 차단하는 전략을 세웠다. 단순 수성에 그치지 않고 수원에 집중된 국민의힘의 전력이 다른 도시로 뻗어 나가지 못하게 막아 고립시키는 방식이었다. 국민의힘이 한동훈 비대위원장 취임 직후 선정한 1호 영입 인재들을 수원에 단수공천하자, 민주당은 ‘친명’으로 불리는 인사들을 배치하면서 맞불을 놨다. ‘한동훈과 이재명’ ‘이재명과 한동훈’의 대리전이다.

여야가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하고 양측 전략이 노출되면서, 수원은 미세한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개별 격전지와 다른 의미로 주목받았다. 총선 성적을 걸고 공격하는 쪽과 방어하는 쪽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치열한 수싸움의 무대로 평가됐다. 이 경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역구가 수원병, 수원정이다.

수원 공성전의 핵심, 수원병

수원 팔달구 전역을 아우르는 수원병은 ‘수원의 심장’으로 불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이 이곳에 있다. 과거 정조가 화성을 축조한 이래로 성곽 일대가 발전했고, 현재 수원병에 이르렀다. 이번 총선에서 ‘수원 공성전’이라는 말이 수원병에서부터 나온 이유다. 수원 전역에 있는 재래시장 22곳 가운데 14곳이 이 선거구에 위치해 있다. 영동시장, 팔달문시장, 지동시장 등 팔달문을 둘러싼 9개 시장을 통틀어 부르는 ‘남문시장’이 대표적이다. 지역 정가에 따르면 이들 시장에선 아직도 여론 형성 기능이 작동한다. 수원병 민심의 척도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보수 진영의 철옹성이었다. 남평우·남경필 부자(父子)가 도합 7선을 한 곳이 수원병이다. 남평우 전 의원이 제14·15대 의원을, 아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제15대 보궐선거부터 이어받아 제19대 국회의원까지 5선을 했다. 국민의힘이 수원 탈환 전략의 교두보로 수원병을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제20대 총선부터 민주당이 이 지역에서 연이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두 차례 총선에서 당선되며 재선의원이 되었다. 정치권에서는 갑작스러워 보이는 이 변화의 배경에 지역 표밭의 변화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과거 수원 원도심이던 이 지역은 2000년대부터 조금씩 보수 색채가 옅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원화성 일대는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대규모 재개발이 어렵다. 상대적으로 대단지 아파트 등은 수원 외곽에 들어서고, 이 지역은 비교적 과거 도심 모습이 유지되고 있다는 게 지역 정치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역 김영진 의원은 이번 제22대 총선에서 3선에 도전한다. 지난 8년간 수원병에서 텃밭을 일궈온 김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당내에서 뚜렷한 경쟁자 없이 공천을 받아 ‘수문장’ 역할을 맡았다. 민주당 내 대표적인 친명 인사로도 꼽힌다. 2017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이재명 캠프에 합류해 이 대표의 ‘7인회’ 핵심 멤버로 꼽히기도 했다. 이후 민주당 사무총장, 당대표 정무조정실장 등 당내 중책을 맡아왔다.

국민의힘에서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선봉장 역할을 맡겼다. 방문규 후보는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 차관, 국무조정실장 등 다수 요직에 등용된 경제 전문가다. 수원 태생으로 수성고를 졸업해 지역과 접점이 있다. 지난해 9월, 장관에 임명된 지 3개월 만에 총선 출마를 위해 직을 내려놨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회 출범 후 영입 인재 1호로 선정됐고, 이후 수원병 단수공천을 받았다. 수원병 선거 결과는 수원 공성전 승패와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이재명 당대표의 대리전 성적표로 직결된다.

반도체 벨트의 시작점, 수원정

수원정에서는 삼성이라는 존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수원병의 구심점이 수원화성이라면, 수원정의 구심점은 삼성 사업장이다. 1970년 삼성전자 사업장이 수원정(매탄)에 자리를 잡은 이후 수원 인근 도시인 화성·오산·용인 등에 산업·생활권 공유 측면에서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 수원정에 위치한 삼성 사업장 주변 25㎞ 반경에만 반도체, 전자부품, 컴퓨터 등과 관련된 업체가 3500여 개 있다. 25㎞ 반경 바로 바깥에 있는 반월·남동·시화공단을 전부 제외한 규모다. 이번 총선의 주요 격전지로 꼽히는 경기 남부권 ‘반도체 벨트’가 바로 이곳, 수원정에서부터 출발한다.

수원정은 최근 20년간 민주당의 텃밭이었다. 수원무 선거구가 분구된 이후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17대부터 제19대까지 3차례 연속 당선됐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김 의장이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했고 박광온 민주당 의원이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직을 이어받았다. 박 의원은 이후 제21대 의원까지 내리 3선을 지냈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경선을 통해 김준혁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를 공천했다. 김 후보는 수원화성과 정조대왕의 역사적 가치를 연구해온 학자 출신이다. 수원에서 나고 자랐다. 2년 전 수원시장 후보로 나서 정치권에 얼굴을 알렸다. 친명계로 분류된다. 공천 이후에는 박광온 의원도 지지를 표명하면서 중진의 조직력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은 이수정 경기대 교수를 단수공천했다. 범죄심리학 전문가인 이 후보는 미디어를 통해 얼굴을 알린 ‘전국구’ 인사다. 경기대 교수로 20년 넘게 재직하면서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수원병 방문규 후보와 함께 국민의힘이 1호 영입 인재로 이 후보를 선택했다.

수원정에서 맞붙는 두 후보는 과거 발언과 설화 논란으로도 홍역을 치렀다. 김준혁 후보는 2022년 한 유튜브 채널에서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총장이) 미군정 시기에 미군 장교들에게 이화여대생들을 성 상납시켰다”라는 말을 남겨 사퇴 요구를 받았다. 2023년 한 유튜브 채널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을 연산군에 비유하면서 성적 행위를 거론해 비판받기도 했다. 이수정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에 대해 “대파 한 단이 아닌 한 뿌리를 말한 것”이라고 옹호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사과했다.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원 병·정 인구 구성은

〈시사IN〉은 각 선거구의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확인하기 위해 인구 구간을 5단계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각각 ①미성년(0~19세) ②청년(20~34세) ③청·중년(35~49세) ④장·노년(50~64세) ⑤은퇴 고령층(65세 이상)이다. 이 다섯 개 인구 구간이 각 투표구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확인한 후, 네 가지 유형으로 각 투표구를 분류했다.

각 유형은 50대 이상 인구가 많은 지역(베이지색), 미성년 인구와 35~49세 인구가 많은 지역(녹색), 35~64세 중·장년 인구가 많은 지역(흰색), 청년(20~34세) 인구가 많은 지역(회색)으로 나뉜다. 이 기준으로 수원병·정 선거구를 투표구별로 미세하게 분석한 결과가 아래 〈그림 1〉이다.

<그림 1> 투표구별로 분석한 수원병·정 인구 구성.

수원병은 대다수 투표구가 베이지색이다. 베이지색은 장·노년 세대(50~65세)와 은퇴 고령층(65세 이상)의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50대 이상 유권자의 표심이 크게 반영되는 투표구라는 뜻이다. 이 연령 구간은 전국적으로도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투표율도 높다. 그래서 한국 정치의 ‘주류 연령층’으로도 불린다. 지난 8년간 수원병은 민주당 후보 측에 손을 들어줬다. 다만 지난 대선에서는 이재명 당시 후보가 48.20%, 윤석열 후보가 48%를 받았다.

수원정은 수원 영통구 일대를 포괄한다. 수인분당선과 신분당선이 관할을 지난다. 지역구 안에 삼성 사업장과 아주대학교가 구심점 구실을 한다. 수원병으로부터 이어져온 구도심 성격을 유지하는 곳과 경기도에서 소득과 생활수준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광교신도시가 공존한다.

인구 구성은 수원병보다 다채롭다. 수원정은 큰 틀에서 녹색, 흰색, 회색 구간으로 나뉜다. 상대적으로 젊은 도시다. 녹색은 미성년(0~19세) 인구와 청·중년(35~49세) 인구 비중이 높은 곳이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들이 많은 곳으로 볼 수 있다. 흰색은 중·장년(35~64세) 인구 비중이 높다. 주로 성인이 된 자녀들과 함께 사는 부모 세대들이 이 지역에 포함된다. 회색은 청년 세대(20~34세)들이 많이 모인 곳이다. 삼성 사업장과 아주대를 축으로 회색 밀집 지역들이 확인된다.

영통구(수원정)는 그동안 민주당 텃밭으로 분류되어 왔지만,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는 오히려 보수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비율이 수원 전체에서 가장 높았다. 당시 영통구에서 이재명 후보는 불과 166표 차이로 윤석열 후보에게 신승을 거뒀다. 이재명 후보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난 나머지 3개 구(장안·팔달·권선)와는 차이를 보였다. 소득·자산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아파트가 밀집한 광교신도시 표심이 변수로 평가된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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