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재난 조사’ 대행…세월호 진상규명 어려웠던 이유

정환봉 기자 2024. 4. 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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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주기-잊지 않았습니다
2. 진실 ②10년 허우적댄 ‘규명의 늪’
2022년 6월9일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문호승 위원장(가운데)이 가습기살균제와 세월호 참사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 여러 질문을 남겼다. 그중 하나는 재난조사 방법론이다. 참사 이후에는 크게 두가지 방향의 조사가 요구된다. ‘재난의 책임자가 누구인가’와 ‘재난의 원인은 무엇인가’이다. 이 두가지 요구는 서로 겹치면서도, 경계를 가진다. 전자는 ‘수사’의 몫이며, 후자는 ‘조사’의 과제다. 하지만 과거 한국 사회의 대형 재난조사는 대부분 수사에 의존해왔다. 조사기관을 꾸린 경험은 드물다.

세월호 10주기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관으로 참여했던 박상은 플랫폼씨(C) 활동가는 2021년 학술지 ‘과학기술학연구’에 실은 ‘왜 세월호 참사 조사는 종결되지 못하는가?’(논문)에서 “한국에서는 서해훼리호 침몰이나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와 같은 1990년대~2000년대 대형사고의 조사를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대신해 왔다”며 “구조적 원인 규명 요구는 (조사가 아닌) 현행법의 적극적 해석을 통해 처벌의 범위를 최대한 넓힘으로써 (수사가) 흡수”했다고 평가했다.

‘검찰의 재난조사 대행’은 여러 결함을 가진다. 우선 정부가 책임 회피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 수사가 대표적이다. 김진태 당시 검찰총장은 세월호 참사 직후 한 회의에서 “이런 사건에서는 돼지머리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사상에 올리는 ‘돼지머리’와 같이 국민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실제로 당시 도피한 유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국민의 분노가 분산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반면 해경 지휘부 등 국가 책임에 대한 수사는 외면받다가 정권이 바뀐 2019년에야 제대로 이뤄졌다.

개개인 처벌을 중심으로 삼게 돼 재난의 구조적·사회적 문제를 은폐할 우려도 있다. 소냐 슈미트 미국 버지니아공대 교수는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이 2017년 6월 개최한 국제워크숍에서 “개인의 책임만을 묻는 재난조사는 우리가 물을 수 있는 질문의 범위를 축소한다”며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사례를 들었다. 당시 소련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사고 원인을 ‘작업자 실수’로 보고했다. 원전 책임자인 빅토르 브류하노프 등은 10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붕괴 뒤 체르노빌 원자로의 제어봉 설계에 결함이 있었고, 이런 문제가 경제 논리 때문에 조직적으로 은폐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상은은 논문에서 이런 경향을 ‘사법주의’로 정의하며 한국 사회가 “법적 과실 인정 여부를 재난의 인과 관계와 동일시하고, 더 강력한 법적 처벌이 재난의 재발을 막을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특조위 등에서도 ‘사법주의’ 경향이 두드러졌다.

물론 이런 경향에는 노골적으로 조사를 방해하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정부 책임이 크다. 진상규명의 의지가 없어 보이는 정부 아래에서 특조위 등은 조사뿐 아니라 책임자 처벌의 근거도 마련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런 압박이 ‘더 큰 범죄’ 혹은 ‘더 큰 의혹’을 찾도록 ‘조사’의 무게중심을 이동시킬 때 발생한다. 세월호 참사 조사가 끝까지 항적(AIS)과 시시티브이(CCTV) 조작, 외력설 등에 이끌렸던 것 역시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갈등은 한국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다. 재난조사의 목적을 ‘사회적 학습을 통한 사고 예방’에 두는 영미권의 전통을 받아들인 일본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위크숍에 참가했던 주라쿠 고타 도쿄전기대학 교수는 탈선 사고로 107명이 숨지고 562명이 다친 2005년 일본 후쿠치야마선 열차 탈선 사고 사례를 들었다. 당시 사고 조사 결과 철도회사의 과도한 노선 경쟁이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철도회사 관계자에게 모두 무죄가 선고되자 시민들은 분노했다. 주라쿠 교수는 “시스템에 의한 사고의 성격이 컸지만, 일본 여론은 책임자 개인에 대한 강력한 징벌을 원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사의 목적과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재난조사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국내·외 재난조사기구 현황과 시사점’(보고서)에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담겼다. 보고서는 “(원인 규명을 위한) 기술적 조사와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한 사법적 조사가 혼재되어 있을 경우, 사고와 관련된 피조사자들이 민형사상 책임의 부담으로 인하여 솔직한 진술을 기피하게 되어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기술적 조사’와 ‘사법적 조사’의 분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한 전제는 독립성 확보다. 권력에 좌우되는 조직은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재난조사기구를 관계 기관이나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최대한 독립시키고, 인사와 예산의 독립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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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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