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일타강사’ 정성욱, ‘숫자를 버리고 나무를 벼리다’…우드슬랩 아티스트로 ‘일타작가’ 변신[이사람]

강석봉 기자 2024. 4. 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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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경계선에도 예술이 있다. 수학적 판별식으로 포지셔닝의 포함 관계를 규정할 수 없는 상황. 창작한 이가 있고 보고 감탄하는 이 있는 공간에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예술혼은 피어난다.

기다림은 관객에게 앞서 예술가에게도 주어진 숙제다. 그 극한의 간에 세계 최초의 우드슬랩아트 작품전이 아프락사스의 새처럼 알에서 깨어났다. 우드슬랩 아티스트 정성욱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 리서울갤러리(메세나폴리스몰178호)에서 지난 3월 개인전을 열었다.

정성욱 작가는 “예술의 언저리에는 뚜렷한 생업도 없이 예술史에 대해 한 줄 말하지 못하면서 예술가를 자처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예술이 논평으로써 논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동네 변두리에 빌붙어서 예술이라고 전시하는 모습에 예술가와 사기꾼의 경계에 서 있다고 웃을지도 모를 일이다”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는 우드슬랩 아티스트라는 말에 앞서 ‘나무 예슬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의 겸손함이다. 최근 그의 작품 하나가 1000만 원에 팔렸다. 부끄러움 가득한 작가지만, 감동한 관객은 지갑을 열었다. 전업 예술가, 맞다.

전시 작가란 타이틀도 우연히 얻었다.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는데, 결국 예술가가 됐다. 주장한 게 아니라 추앙됐다. 지인과의 술자리를 즐기던 중 지인의 인스타에 올려진 정성욱 작가의 작품 사진에 뜬금포 전시 요청이 들어와 오늘에 이르렀다.

정성욱은 자신이 작가로 불리는 것에 대해 여전히 낯설고 민망하다. 그의 전직은 학원 강사다. 강남의 잘 나가는 수학학원 원장이었지만 일찌감치 은퇴해 나무를 만지기 시작했다. 대치동 일타강사는 그렇게 숫자와 등을 졌다.

​그는 이후 강남의 한복판에서 ‘강남목공소’를 운영했다. 5년 동안 돈을 받고 물건을 판 적이 없으니, 운영이라는 말도 무색하다. 주로 술과 고기 혹은 먹을 것들과 자신이 만든 나무 도마나 작은 테이블 혹은 일상용품들과 물물교환해 왔다.



그 시간이 장사꾼에서 예술가로 트랜스포머되는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어떤 작품은 7년을 기다려야 했다. 돈을 받고 팔 생각이 없으니 작품에 작가 만의 생각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가 만지는 나무는 구하기 힘든, 무늬가 특별한 나무들이다. 정성욱 작가의 말대로 남는 게 시간이니 그런 나무들의 무늬를 극한까지 끌어내 작품을 만든다.

보통 한 번이면 끝낼 일을 몇 번씩 반복해 숨겨진 나무의 세월과 형태를 찾아낸다. 사람들이 “정 작가는 돈으로 작품을 만든다라고 타박할 정도다. 그는 그런 나무를 구하기 위해서 발품도 적지 않게 팔아야 했다. 발이 한가해지면 그다음은 손이 쉴 틈이 없다.

그는 엄청난 무늬를 가진 나무들을 얇게 켜서 덧대어 작품을 만든다. 한 장을 붙이고 그 위에 또 한 장을 덧댄다. 그렇게 켜켜이 쌓는다. 생각이 쌓이고 땀도 쌓일 거다. 그의 작품은 그렇게 나무와 싸우고 시간과 싸워 만들어진다. ​​그런데 돌아보면 결국 자신과 싸움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의 제목은 ‘미완성’이다​. 정성욱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말하다가 완성은 했지만 언제라도 작품에 어울리는 더 좋은 나무가 생기면 덧붙일 것이기에 완성된 ‘미완성’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정성욱 작가는 “작품은 최소한 내가 쓴 엄청난 나무들에 대한 ‘예의’이자 ‘경의를 갖추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에 쓰인 나무들이 생장해온 긴 세월에 대해 경외이자 배려인 셈이다.

정성욱 작가는 악기의 주요 재료로 사용되는 소프트메이플의 한 종류인 퍼시픽메이플의 벌(buri) 과 퀼티드(quilted) 스팔티드(spalted) 무늬를 원목 상태에서 가르고 발라내고 다듬는다. 벌목된 원목들이 수년간 극한의 상태에서 스팔팅(spalting) 소재를 다양하게 숙성하기를 기다린다. 자연이 시간의 흐름 속에 만들어낸 하나의 그림을 우물정(井) 프레임 액자 안에 담아내는 작업을 한다.

그 우물에서 퍼 올려질 그의 신산한 작품에 사람들의 갈증은 멈춰질까?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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