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대파 아니라 대만이 핵심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2024. 4. 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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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마쭈 열도 해저케이블 파손
경제·사이버에선 이미 침공 시작
세계 교역량 50% 대만해협 통과
무력 충돌 여파 상상 어려워
국운 좌우할 국제 정세가
대파 따위와 비교되겠나
지정학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그들은 대파나 흔들고 있다

“제가 오늘 참 해괴한 얘기를 들었는데, 대파를 가지고 선거 투표소 들어가면 안 된다고 그랬대요.” 지난 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말이다. 사전 투표소에 대파를 가지고 갈 수 없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방침을 비판한 것이다.

투표소에 대파를 들고 가려는 이유는 뻔하다. 정부 심판 여론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4월 둘째 주 현재 시중 대파 가격이 한 단에 2000원 선으로 내려왔건 말건,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물가 상승이 코로나 지원금 살포와 최저임금 폭등 때문이건 말건, 대파를 ‘밈’으로 삼고 여세를 몰아 선거를 치를 요량이다.

‘대파 문제’를 허투루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재명의 민주당이나 초록은 동색일 뿐인 소위 ‘민주개혁진보’ 세력이 ‘대파 문제’를 앞세워 현 정부를 심판하려 드는 모습은, 이 대표의 말마따나 해괴하기 짝이 없다. 이번 총선의 핵심 쟁점은 ‘대파’가 아니라 ‘대만’이기 때문이다.

2024년 4월 현재, 세계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감돌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만이 아니다. 푸틴은 구소련이었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국가를 ‘수복해야 할 영토’로 간주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러시아는 에스토니아를 향해 대대적인 사이버 공격을 가한 바 있다. 그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독일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해군력을 강화하는 이유다.

대만해협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도 많은 한국인이 대만 여행을 하고, 대만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누린다. 하지만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가 북한의 도발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과 유사한 현상일 뿐이다.

대만의 마쭈 열도는 연평도처럼 대만보다 중국 본토에 더 가까운 최전방이다. 2023년, 마쭈 열도와 대만을 잇는 인터넷 해저케이블 두 개가 파손되었다. 주민들은 한동안 느리고 불안정한 무선 인터넷으로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었다.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대만 정부는 중국의 소행을 의심하고 있다. ‘물 밑’에서는 전쟁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

CNN의 앵커 겸 수석안보분석가인 짐 슈토(Jim Sciutto)는 미국과 전 세계를 넘나들며 안보 전문가와 군인을 만났다. 그가 신간 ‘강대국의 귀환(The Return of Great Powers)’에서 보여주는 섬뜩한 현실. 공화당 하원 의원인 마이크 갤러거는 2023년 8월 슈토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경제나 사이버 공격 같은 의미라면, 대만 침공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을 염두에 두고 이재명 대표가 지난 3월 22일 충남 당진시 당진시장에서 내놓은 이른바 ‘셰셰 발언’을 떠올려 보자.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그냥 셰셰(고맙습니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 뭐 자꾸 여기저기 집적거리고 무슨 양안 문제 우리가 왜 개입합니까? 대만해협이 뭐 어떻게 되든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무슨 상관 있어요?”

일단 눈에 걸리는 대목.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라니? 대만을 향한 중국의 위협을 ‘국내 문제’로 일축하는 것은 중국의 입장이지 국제사회의 합의된 견해가 아니다. 만약 호주처럼 중국의 개입에 민감한 나라였다면 정치생명을 위협했을 발언이다.

더 의아한 건 그 바닥에 깔린 현실 인식이다. 대만해협은 매일 전 세계 상업 교역량의 50%가 지나다니는 경로로, 우리의 생명줄과도 같다. 그곳에서 발생할 무력 충돌의 여파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우리는 미국과 군사 동맹이다. 대만을 지키려고 미국이 중국과 맞선다면 그 전쟁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농산물의 가격은 날씨와 작황, 심지어 유통과 경매 현황에 따라 바뀌는 단기적 사안일 뿐이다. 반면 국제 정세와 지정학적 변화는 훨씬 크고 심각한 일이다.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의 국운을 좌우한다. 먹고사는 일, 나아가 국민의 생존을 좌우하는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그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 듯하다. 대만해협에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대파나 흔들고 있다. 반미를 외치며 자식 미국 유학 보내는 자들이 또 국회에 들어가려 한다. ‘작은 나라지만 중국몽에 동참’한다던 전직 대통령은 무슨 염치로 선거에 끼어드나. 심판받아야 할 사람들이 심판하겠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 희비극을 끝낼 수 있는 건 유권자의 선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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