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파묘’의 역사의식

경기일보 2024. 4.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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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민 경인여대 영상방송학과 교수

한식(寒食)은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로 양력으로는 4월5일 무렵이다.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로, 일정 기간 불의 사용을 금하며 찬 음식을 먹는 고대 풍습에서 유래됐다. 전통적으로 한식에는 조상의 묘소를 찾아 차례를 지내고 벌초를 하거나 무덤의 잔디를 새로 입히기도 한다.

이 한식을 앞두고서 ‘묘를 다시 파는’ 영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과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파묘’(破墓•묘를 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해 무덤을 파내는 것을 의미)라는 신선한 소재와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배우의 신들린 열연, 오컬트(초자연적인 현상, 악마, 악령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심령영화, 공포영화) 장르에 몰두해 온 장재현 감독의 공들인 연출 등이 합력해 빚은 결과로 평가된다.

파묘는 거대한 부를 축적한 가문의 장손 집안이 신병을 앓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름난 무당과 풍수사, 그리고 장의사가 힘을 합쳐 한 기괴한 무덤과 관련된 심령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다.

파묘는 한국인의 전통사상인 묫자리 및 풍수지리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거기에 한국식 무속 샤머니즘과 일본 신토의 애니미즘(정령신앙)이 서로 대결을 벌이면서, 일제강점기 시절 자행된 침략 역사와 고위 친일파들에 의한 매국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특히 일제가 우리 민족의 혈맥과 기운을 누르기 위해 명산에 쇠말뚝을 꽂았다는 소위 ‘풍수 침략’이 언급되곤 하는데, 풍수 침략과 쇠말뚝은 이 영화에서 서사와 분위기를 반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일본 주술사가 태백산맥에 쇠말뚝으로서 ‘오니’(요괴로 여겨지는 일본의 전설상의 존재)를 심어 두었다는 설정과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실제 존재했던 독립운동가들을 연상케 하고, 영화 전반부 의뢰인의 친일 행적 등이 이 영화의 항일 테마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파묘는 일제강점기 역사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이 땅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메시지를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야기 자체의 흥미, 대중적 재미도 한몫하지만 우리 시대가 원하는 이야기를 새롭게 발굴했다는 측면에서 더욱 신선하다.

파묘는 오컬트 영화의 장르적 매력을 신선한 내용과 구성, 빼어난 연출과 연기를 통해 대중 친화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더욱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함께 호흡하며 우리가 놓치기 쉬웠던, 혹은 간과하고 있던 역사의식을 한식 절기에 즈음해 새삼 돌아보게 하는 기회도 제공해주고 있다. 마치 잠들어 있던 우리 의식을 새롭게 ‘파묘’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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