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재벌’ 등장할 수밖에 없는 ‘눈물의 여왕’ 박지은 월드의 ‘사각지대’[스경연예연구소]

하경헌 기자 2024. 4. 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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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주말극 ‘눈물의 여왕’ 포스터. 사진 tvN



tvN 주말극 ‘눈물의 여왕’ 열기가 뜨겁다. 닐슨 코리아 유료가구 기준으로 5~6%대로 시작한 작품은 불과 한 달 만에 16~17%대를 기록하며 20% 기록을 턱밑에 둔 레이스를 선보이고 있다.

결혼 3년 차 부부에게 새로 움트는 사랑을 역발상의 형식으로 로맨틱 코미디에 수혈했으며 마치 ‘별에서 온 그대’처럼 모든 것이 완벽한 김수현의 마법이 다시 한번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박지은 작가의 재기 넘치는 대사와 설정만큼 변하지 않는 맹점도 존재한다.

최근 방송된 8회에서는 극 중 배경이 되는 퀸즈가가 급격하게 몰락하고 홍해인(김지원)의 가족들이 모두 집밖으로 내몰리는 과정을 담았다. 국내 굴지의 유통기업으로 설정된 퀸즈그룹이 윤은성(박성훈) 단 한 명(정확하게 말하면 윤은성과 이미숙의 모슬희, 이주빈의 다혜 세 명일 수 있지만)의 계략으로 무너지는 과정은 다소 난센스였다.

이러한 전개는 결국 백현우(김수현)의 고향 집으로 숨어든 백현우-홍해인 커플이 좀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오만하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퀸즈가 사람들이 좀 더 넓은 사람이 되는 기회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멍청한 재벌’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일차원적이고 도식적인 설정은 박지은 작가 세계관의 특징으로 이제는 그 패턴이 읽히는 상황이다.

tvN 주말극 ‘눈물의 여왕’ 주요장면. 사진 tvN



박지은 작가의 작품은 코믹한 설정에서 나오는 코미디가 극의 큰 줄기를 잡는다. 고아와 결혼하고 싶어 교포와 결혼했지만 알고 보니 ‘시월드’의 사람들이 넝쿨째 쏟아져 나오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 별에서 왔지만 세상물정은 여전히 잘 몰라서 전지전능한 만큼 빈틈이 많은 도민준이 등장하는 ‘별에서 온 그대’, 레포츠를 하다 바람을 잘못 받아 북한으로 넘어가는 윤세리가 등장하는 ‘사랑의 불시착’ 등은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머무른 주인공의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재미를 준다.

이러한 코미디 설정의 중심은 철저히 인물들이 도식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쁜 사람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나빠야 하고, 착한 인물들은 세상 착해야 한다. 그리고 사건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굴지의 재벌이 경영권 방어도 제대로 못 하면서 한 사람의 기업가에게 뒤집히기도 해야 한다.

이러한 박지은 작가 특유의 세계관에서는 입체적인 인물이나 복합적인 인물이 자리 잡기 힘들다. 눈치가 없는 홍해인의 엄마 김선화(나영희)는 길바닥에 나앉아도 눈치가 없고, 세상물정이 없는 기업가의 회장 홍범준(정진영)은 길바닥에 나앉아도 물정을 모른다. 반면에 타고난 사이코패스로 설정된 윤은성은 홍해인의 시한부 상황을 들은 후 잘못을 뉘우치기보다 더욱 뜨거운 욕망에 사로잡힌다.

tvN 주말극 ‘눈물의 여왕’ 주요장면. 사진 tvN



박지은 작가의 작품이 국내에서는 다소 진부한 전개라는 평을 듣지만, 해외에서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렇게 도식적인 인물설정으로 명확한 선악을 구분한 후 통쾌하게 이 같은 상황이 뒤집히는 ‘권선징악’ 코드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방송 트렌드는 갈수록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인물을 선호하며, 그들의 상황 역시 모 아니면 도식으로 단순하지 않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오징어게임’의 성기훈이 이해를 받는 이유는 그가 게임이 싫어 탈출했다 결국 게임 속보다 더 지옥 같은 현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캐릭터의 매력과 유쾌한 전개 그리고 명확한 선악구도로 박지은 작가의 작품은 다시금 흥행의 키를 잡았다. 하지만 그 알맹이의 맹점 역시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복잡한 현재 드라마 설정의 구조와 점점 멀어지는 박지은 작가의 작품들에 또 ‘멍청한 재벌’ 같은 현실성 없는 설정이 또 나올 가능성은 적지 않다. 박 작가는 자신의 장기와 현재의 유행 간극을 메워야 하는 숙제를 안을 공산이 크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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