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보다 베트남어 많이 들리는 ‘이 동네’…보험설계사도 가입자도 외국인

박나은 기자(nasilver@mk.co.kr), 양세호 기자(yang.seiho@mk.co.kr) 2024. 4. 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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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픽사베이]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한화생명금융서비스 강일지점. 이곳에선 한국어만큼이나 베트남어가 많이 들린다. 고객과 소통하는 설계사들도 베트남어로 대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속 설계사 66명 중 60명이 베트남 출신이면서, 보험계약건의 95%가 외국인인 ‘외국인 특화 영업점’이기 때문이다. 한화생명이 이처럼 독특한 영업점을 낸 것은 작년 1월. 원래 경기도 가평 지점에서 팀 차원의 영업을 했지만, 실적이 점점 늘어나자 교통이 편리해 접근성이 좋은 하남시에 아예 별도의 점포를 냈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급등하면서 금융권에도 이주 외국인 바람이 불고 있다. 외국인을 겨냥한 금융 상품과 서비스가 나오고 있고, 외국인이 업권에서 활동하는 등 금융권 내 외국인 비율이 증가하는 중이다. 한화생명금융서비스의 경우처럼 보험업권에서는 외국인 가입자와 설계사 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가 감지된다.

5일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보험사 상품에 가입한 외국인은 84만511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년 전인 2018년 47만3205명 대비 78% 늘어난 수치다. 국내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된 금융상품에도 외국인 가입자가 늘어난 셈이다. 특히 일상 속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장기 보험상품에 대한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다.

보험사들은 외국인 특화 지점을 만들어 외국인 보험설계사를 양성해 이들을 통해 적극적인 영업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외국인의 경우 내국인과 달리 기존에 가입한 상품이 없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신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고,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이들의 자녀까지 새로운 고객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장 성장세를 견인하는 외국인 보험설계사들 대다수가 이주 여성들로 구성되면서,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수단으로도 작용하는 중이다.

보험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매년 외국인 가입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고, 이들 대상으로 영업하는 설계사들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며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외국인 영업 특화 점포를 만들거나 전담 조직을 만드는 등 틈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생명금융서비스 강일지점은 이같은 트렌드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베트남 출신 귀화자인 김경아(34)씨는 해당 지점 산 증인이다. 김 씨는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이 많지만 보험에 가입한 이들은 적어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며 지점 설립을 이끌었다. 지금 김씨는 팀원 60명을 총괄하는 베테랑 팀장 설계사지만, 원래부터 ‘보험의 달인’은 아니었다. 베트남인으로 한국에 온 김씨는 남편이 아팠을 때 치료받을 보험이 없어 어려움을 겪다가 보험에 관심을 갖게 됐고, 보험설계사로 있던 남편 친척의 소개와 도움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초기 다른 보험사에서도 비슷한 영업을 하던 김 씨는 베트남 법인이 있고 외국인 영업에 적극적이던 한화생명에 정착했다. 해당 지점을 운영하는 박재우 지점장은 “내국인의 경우 이미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 대다수라 기존에 있는 상품을 재구성하거나 추가 담보를 더하는 등의 방식으로 영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외국인들은 아예 보험이 없어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 많다”며 “외국인들에게는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보니 새로운 시장이라고 보고 영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김경아씨는 한화생명금융서비스 소속 설계사 중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액 연봉자다. 실적 최상위권을 기록하는 설계사일 뿐 아니라 외국인 설계사 육성 작업까지 하고 있다.

한화생명 뿐 아니라 국내 보험사들도 이 시장을 ‘블루오션’으로 보고 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주요 15개사의 외국인 생명보험 가입자 수는 2018년 5만5348명에서 2023년 9만2672명으로 늘었고, 전체 가입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에서 2.3%까지 올랐다. 주력 상품이 장기보험이고 손해보험과는 달리 인적 담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증가세가 적지 않은 셈이다.

손해보험 가입자 수도 크게 늘어 손해보험협회가 주요 7개사의 고객 수를 조사한 결과 같은 기간 41만7857명에서 75만2442명으로 80% 증가했다. 전체 가입자 중 2.1%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에 맞춰 보험회사들도 외국인 보험설계사 숫자를 늘리고 있다.올해 2월 기준 대형 4개 생명보험사(삼성생명•교보생명•신한라이프•농협생명)의 외국인 전속설계사는 788명으로 전속설계사 조직을 분리한 한화생명의 판매자회사(GA) 한화생명금융서비스 외국인 설계사 1140명까지 포함하면 약 2000명에 달한다. 대형 5개 손해보험사(메리츠화재•한화손보•삼성화재•현대해상•KB손보) 외국인 설계사도 951명이다. 전국에서 최소 2000명 이상의 외국인 보험설계사가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이들 커뮤니티가 전지역에 넓게 형성돼 있기에 지역적 한계에서도 자유롭다. 실제 한화생명금융서비스 강일지점 베트남 출신 설계사들은 전국 단위로 고객을 관리하고 있었다.

보험사들은 외국인 설계사 조직이 확대되고 관련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조직 관리에도 힘쓰고 있다.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외국인 설계사 관리를 위해 기존에 국적으로만 관리하던 시스템에서 벗어나 출생지 조사를 시작했다. 국적으로만 관리하면 귀화자 구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보험사 중 유일하게 외국인 전담조직인 글로벌영업단을 2022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올해 2월 기준 149명의 컨설턴트가 일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영등포•광명•안산 등 지역은 설계사가 외국 출신이 많아 지점 고객도 외국인이 대다수라 이런 지역들 위주로 지점을 분리해 외국인 특화 지점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보험사 중심으로 외국어 상담서비스도 시행 중이다. 지난 2019년 생명보험업계 최초로 신계약 모니터링 외국어 상담서비스를 시작한 교보생명을 필두로 삼성생명•화재, 한화생명 등에서 영어와 중국어 러시아어 등 상담이 가능한 전문 상담원을 배치해 외국어 서비스를 지원 중이다. 현대해상은 인공지능(AI)를 활용한 통역콜 서비스로 외국인 고객과의 접점을 늘릴 계획이다.

다만 대다수 보험사들이 기존 상품을 판매하고, 외국어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외국인 특화 상품이나 보험 관련 서비스 등이 아직 부족하다. 또 불완전판매 위험성이나 불법체류자에게도 보험 판매가 이뤄졌다는 점 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외국인 인구도 고령화될 수 있고 지역적 분포 및 체류목적이 다양화될 것에 대비해 다양한 특화 상품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보험사는 외국인 대상 보험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의 보장공백과 소비자 보호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분석했다. 박나은·양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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